새벽에 마시는 커피의 맛은

<런던에서 가이드로 먹고살기> 1화

by 걸어가는

축축한 머리를 스웨터 깊숙이 밀어 넣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커피 고프네.'

나와 커피의 인연은 참으로 길고도 질기다. 고3 수험생 시절, 엄마는 매일 아침 검은색 텀블러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담아주셨다. 호호 불어 마시던 그 커피는, 수능날 낙엽이 지던 공기의 쓸쓸함을 포근하게 덮어주었었지. 학교가 끝나면 친구와 파란색 간판의 알파벳 E로 시작하는 카페에 가곤 했다. 그 친구는 종종 말했다.

“나 너만 보면 그때 그 카페 생각나. 그날 커피 처음 마셨거든.”

- Hot black Americano in here, please.

이제는 익숙하게, 베이지색 텀블러를 내밀며 말한다. 뜨겁고, 블랙인 아메리카노 주세요. 처음 영국에 왔을 땐 그냥 아메리카노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젠 '블랙'을 붙이지 않으면 어색하다.

영국의 아메리카노는 두 가지다 - 블랙 아메리카노와 화이트 아메리카노. 화이트는 우유가 들어간 버전이다. 처음 화이트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땐 정말 묘했다. 손님이 커피를 사주시고 건네주셨는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알아차렸다.

'아, 이건 화이트구나.'

영국인들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화이트라고 생각한다. 홍차에도 우유를 넣는 나라답게, 블랙 아메리카노는 위장을 상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유를 넣은 화이트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속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맛은 마치, 스틱 커피에서 설탕을 빼고 프림만 넣은 듯하다. 나쁘지 않지만, 어딘가 낯설다. 잘 모르겠다면, 영국에 온다면 한 번쯤 '화이트 아메리카노'를 시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묘하게 그 나라의 입맛이 느껴질 테니까.

- Here you are. Have a nice day.

웃음기 없는 직원의 목소리이지만, 묘한 친절이 배어 있다. 쿠폰을 알뜰살뜰하게 찍고, 뜨거운 텀블러에 입을 갖다 댔다. 이렇게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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