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꾸준히 하는 사람들. 그게 운동이 될 수도 있고, 독서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매일 새벽에 일어나 걷는 산책이나, 매일 성경의 한 페이지씩 필사하는 다짐이 될 수도 있다. 생활을 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습관이 아닌,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감내하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꾸준히 행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귀찮음과 핑계, 게으름과 바쁨을 이겨내고 그 일을 한다. 예전 김연아나 박태환 선수의 인터뷰에서 무슨 생각을 가지고 훈련을 하는지 물었을 때,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한다. 그냥 한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그냥'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일반인 들은 일종의 비장한 각오와 무언가를 얻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귀찮음을 이겨내고자 한다. - 보통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지만...- 사실 무슨 생각과 태도로 임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 내겐 그것이 멋있고 존경스럽다. 그냥 하든 소명의식을 갖고 하든 일관된 자세로 무언가를 감내하고 행위하는 자체가 그들을 빛나게 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입 속에 뱀이 들어가 목구멍을 물어 버린 양치기의 이야기를 전한다. 양치기는 컥컥 거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차라투스트라가 이리저리 당겨보지만 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양치기는 고통스러워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과 역겨움, 증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책 내용을 그대로 빌리자면 '핏기 잃은 공포의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워져있었다. 양치기는 그렇게 평생을 뱀에게 목을 물린 채 그저 순응하며 일생을 살아갈 것이었다. 그때, 차라투스트라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가리를 물어뜯어라! 물어뜯어라!" 그러자 양치기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차라투스트라가 분부한 대로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었다. 그리고 멀리 뱉어버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웃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가 이전의 양치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변화된 자, 빛에 감싸인 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웃음을 동경했다.
우리는 반복된 일상을 살아간다. 그 일상은 심심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내 맘대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하다. 일이나 관계, 환경이나 사회, 사상이나 종교 등 내가 살아가는 모든 종류의 부분에서 빈번하든 크든 트러블과 사고가 발생한다. 우리는 그런 문제에 자주 흉터를 입지만 보통은 그저 순응하며 살아간다. 가끔 그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하려고 또는 회복하려고 공부나 운동이나 취미 등을 하긴 하지만 꾸준히 하기는 쉽지 않다. 고단한 일상의 루틴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가 사실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귀찮음과 게으름을 이겨야 하고, 시간과 비용도 부담해야 하며, 야근이나 회식과 같이 그 행위를 방해하는 것들을 극복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벽들에 자주 좌절했다. 목구멍에 뱀이 들어와 있지만 그냥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는 게 더 편했다. 하지만 무엇인지 모를 불편함이 내 마음속에 항상 들어와 있었다.
올해 가을, 나는 그 일상을 깨는 행위를 '글쓰기'로 마음먹었었다.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겁내지만, 무언가를 표현하고 배출하는 행위 자체를 하고 싶었다. 그것도 꾸준히. 그래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다. 블로그나 SNS도 있었지만, 광고로 도배된 곳보다는 각 잡고 쓸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고, 특히 모든 디바이스에서 자유로운 부분이 중요했다. 또,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심사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심사에 한번 미끄덩했지만, 쓰고 싶은 내용과 꾸준히 쓰겠다는 결심을 어필했더니 순조롭게 패스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나 시, 아니면 수필이든, 감성 잔뜩 묻은 글을 계속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제8회 브런치 북 공모전을 보고 3화 정도까지 썼던 소설을 단 며칠 만에 10편까지 작성했고, 제출까지 완료했다. 그 수준이 어떠하든 약 5만 자에 달하는 글을 작성했고, 시간까지 지켜냈다는 팩트에 적잖이 보람찼고 벅차올랐다. 그래, 나도 뱀의 대가리를 뜯어냈고, 이제 차라투스트를 보며 웃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에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쓰지 않았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열을 낸 까닭일까. 처음에 다짐했던 목표와 의식들이 희미해져 갔고, 귀찮음에 순응해버렸다. 머릿속에는 '이런 내용을 쓰면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브런치를 켜도 글을 쓰지 않았다. 부담스러웠다. -글은 쉽게 쉽게 쓰는 게 미덕인데- 갑자기 글이 어려워졌다. 글을 쓰지 않는 내가 더욱 익숙해져 버렸다. 목구멍이 따끔했다.
뱀을 뱉어버린 다음날, 다시 뱀에 물린 바보 같은 양치기가 있다. 그게 나다. 니체까지 언급하며 엄청 거창하게 남겼지만, 이 글은 다시 한번 내 다짐을 위한 시시한 글이다. 빈번하게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매일 또는 매주는 못 쓰더라도, 매월 몇 편의 글을 브런치에 남기자는 다짐을 거창하게 남겨본다. 나는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변화된 사람, 빛나는 사람, 나의 웃음을 스스로 동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