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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조용히 활을 배우는 마음으로

by 정성현

에필로그

조용히 활을 배우는 마음으로


활쏘기를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활쏘기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활 앞에 선 시간이 내 삶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암정에 처음 입문했을 때, 몸이 따라주지 않아 금방 포기할 것 같았습니다.

팔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화살이 손에 익지도 않았습니다.

6개월이 넘도록 월 회비만 내고 활터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론 죄송했고, 한편으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에는 조용한 질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러다 어느 날, 처음 입문할 때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100세 할아버지도 활을 쏘시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단정하고 고요한 자세로,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활을 당길 수 있을까?

그렇게 다시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부끄러워도 괜찮다 다독이며 활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다시 용기를 낸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처음보다 활이 무겁지 않게 느껴지고, 자세도 아주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활쏘기가 주는 그 조용한 힘과 매력을 이제는 압니다.


활쏘기는 참 묘합니다.

힘이 세다고 잘 쏘는 것도 아니고, 기술만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고르게 써야 하고, 생각보다 더 많은 인내와 집중이 필요합니다.

가장 깊은 고요 속에서, 가장 정확한 움직임을 해야 하니까요.


요즘은 활터에 가는 길이 설렙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나는 활을 들고 우암정으로 향합니다.

혼자만의 싸움 같지만, 사실은 나를 다독이는 시간입니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오늘은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활쏘기를 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당긴 만큼, 놓아야 한다.”

너무 오래 쥐고 있으면, 팔도 마음도 다치기 마련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까지 쥐고 있었다는 걸,

활을 놓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활처럼 살아야 한다는 걸요.

불안은 조준으로, 후회는 호흡으로 바꾸며,

오늘도 조용히, 천천히, 내 삶의 중심을 찾아갑니다.

12편의 짧은 글을 쓰며, 나는 매일 활을 닦듯 나를 닦았습니다.

화살은 멀리 날아가기도 했고, 빗나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이 글은 국궁 초보자의 조용한 고백입니다.

건방지게 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국궁을 처음 시작해 보려는 분들,

혹은 중간에 멈춰 선 채 망설이고 있는 분들께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고요는 멈춤이 아니라, 방향을 찾은 움직임입니다.

나는 내 안의 과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일도 활을 당깁니다.

그리고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한 자세로 사대에 설 것입니다.


아무리 초보라도, 꾸준히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중심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활 배웁니다.”

오늘도 그 인사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고요한 나의 연습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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