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샵 사장님들과 2년간 일하며 배운 것들
"사장님,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는데 사용해보시겠어요?"
"아이고, 또 바뀐 거예요? 익숙해질 만하면 계속 바뀌네요."
K사에서 2년간 가장 많이 들었던 대화다. 미용실 사장님들과 일하면서 깨달은 건,
기획자가 생각하는 '좋은 기능'과 실제 사용자가 원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이었다.
2023년 9월, 솔루션기획팀으로 이동한 후 첫 번째로 맡은 대형 프로젝트가 'CRM 백오피스 개선'이었다. 당시 고객사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었다.
기존 백오피스는 정말 비효율적이었다. 한 고객의 정보를 확인하려면 5개의 서로 다른 페이지를 돌아다녀야 했다. CS팀에서는 고객 문의에 답변하는 데만 평균 20분이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시스템이 복잡한 것도 문제지만, 미용실 사장님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정보와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가 달랐다.
프로젝트 시작 전, 20명의 미용실 사장님들과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때 들은 이야기들이 내 PM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매출 통계요? 그런 거 안 봐요. 그보다 오늘 취소된 예약이 몇 개인지, 내일 직원이 몇 명 나와야 하는지가 더 중요해요."
40대 여성 미용실 사장님의 말이었다. 우리는 한 달 단위 매출 분석 기능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일일 운영에 필요한 기본 정보가 부족했던 것이다.
또 다른 사장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객 관리 기능이 좋긴 한데, 정작 중요한 건 고객의 '기분'이에요.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거든요. 그런 건 시스템으로 어떻게 관리해요?"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만드는 CRM은 단순히 고객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용실의 일상적인 업무 플로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건, 미용실 사장님들이 원하는 건 복잡한 분석 기능이 아니라 단순한 편의성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전화로 예약을 변경 요청했을 때, 기존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고객 검색
기존 예약 찾기
예약 취소
새 예약 생성
고객에게 확인 연락
이 과정을 하나의 화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기술적으로는 단순한 UI 개선이었지만, 사장님들에게는 엄청난 시간 절약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정보를 한 화면에 보여주는 통합 대시보드를 만들려고 했다. 매출, 예약 현황, 고객 정보, 직원 스케줄까지 모든 걸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베타 테스트 결과는 참담했다.
"화면이 너무 복잡해요. 뭘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결국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한 화면에는 한 가지 정보만 명확하게 보여주되, 화면 간 이동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첫 번째 교훈: 그들의 언어로 말하기
초기에 가장 큰 실수는 기술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API 연동을 통해 실시간 동기화가 가능합니다"라고 설명하면, 사장님들은 당황스러워하셨다.
대신 이렇게 바꿨다. "예약이 들어오면 바로 알림이 가서, 놓치는 일이 없어요."
같은 기능을 설명하는 것이지만, 전달되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두 번째 교훈: 구체적인 상황으로 설명하기
추상적인 기능 설명보다는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드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고객 관리 기능이 향상되었습니다" (X) "김민정 고객이 6개월 만에 다시 오셨을 때, 지난번에 어떤 시술을 받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O)
후자가 훨씬 와 닿는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세 번째 교훈: 직접 보여주기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기 어려워하시는 사장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직접 방문해서 시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한 달에 2-3번은 미용실을 직접 방문해서 새 기능을 시연하고, 현장에서 바로 피드백을 받았다. 이때 발견한 사용성 문제들이 정말 많았다.
예를 들어, 테블릿으로 예약을 받는 미용실에서는 버튼이 너무 작다고 하셨다. 파마를 하다가 젖은 손으로 터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버튼이 작으면 잘못 터치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미용실 사장님들의 피드백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감정적인 표현과 실제 기능 요구사항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 너무 어려워요!"라는 피드백을 받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대부분의 경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음 중 하나였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 사용
너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함
기대했던 위치에 기능이 없음
에러 메시지가 불친절함
피드백을 받는 타이밍도 중요했다. 바쁜 영업시간에 연락하면 짜증스러워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화요일 오전이나 일요일 오후처럼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간을 골라서 연락했다. 이때는 훨씬 자세하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B2C 제품과 달리 B2B 제품에서는 한 번의 오류도 치명적이다. 개인이 사용하는 앱이 오류를 일으키면 짜증나지만, 비즈니스에 사용하는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면 매출에 직접 타격을 준다.
실제로 예약 시스템 오류로 고객 예약이 누락된 사건이 있었다. 해당 미용실은 그날 하루 매출이 30% 감소했고, 우리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 이후로는 모든 기능을 출시하기 전에 최소 3번의 QA 테스트를 거치도록 프로세스를 변경했다.
또 한 번은 서버 이슈로 일부 고객 데이터가 손실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백업으로 복구했지만, 해당 미용실에서는 "고객 정보가 날아갔다"며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때 깨달은 건, B2B 고객들에게는 데이터 안정성이 어떤 기능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미용실 사장님들의 하루 일과를 자세히 관찰해봤다.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 예약 현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직원들과 오늘의 스케줄을 공유했다.
이런 실제 업무 플로우에 맞춰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로그인하자마자 보이는 첫 화면은 복잡한 대시보드가 아니라 '오늘의 예약 현황'이어야 했다.
미용실은 고객이 계속 오가는 공간이다. 시스템을 사용하다가 고객이 오면 즉시 중단하고 응대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작업을 저장/불러오기 기능을 강화했다. 예약을 입력하다가 중단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이어서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무리 좋은 기능을 만들어도, 사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특히 IT에 익숙하지 않은 사장님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육과 지원이 정말 중요했다.
매월 온라인 교육 세션을 열었다. 새로운 기능 소개뿐만 아니라, 기존 기능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알려드렸다.
B2B는 한 번 계약하면 끝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분기마다 고객 만족도 조사를 했고, 불만사항이 있으면 즉시 대응했다. 또한 생일이나 개업 기념일에는 간단한 인사말을 보내는 등 인간적인 터치도 놓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기능보다는 사용자가 정말 필요로 하는 기본 기능이 중요했다. 복잡한 분석 툴보다는 직관적인 예약 관리 시스템이 더 사랑받았다.
미용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능을 만들어도 실패한다. 현장을 자주 방문하고, 사용자의 실제 업무 환경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했다.
B2B에서는 제품의 기능보다도 공급업체와의 신뢰 관계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장기적인 성공의 열쇠였다.
2년간 미용실 사장님들과 일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PM이 단순히 기능을 기획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용자의 업무와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편: "광고 플랫폼을 만들다: 헤어짱 파트너 이벤트 론칭기"에서는 제휴사 전용 페이지를 기획하고 마케팅 캠페인까지 직접 운영했던 경험을 들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