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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윤여재 May 03. 2021

Day 27  하느님의 사랑

<주제>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내가 참여하며

그분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립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내어드릴 수 있는지 돌아봅니다.     





             <아이야, 일어나거라 - 김옥순 수녀>


글쓰기의 긴 여정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많은 글을 쓴 것 같은데 돌아보면 늘 같은 글을 쓴 것 같다. 이는 ‘내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이 결국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바람은 숨 쉬듯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고 이를 위해 여러 방법들을 생각하고 실천하 고 성찰해보았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머리로 아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울까? 교육을 나가면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다. ‘에이, 몰라서 못하나요? “ 그렇다면 아는 데 왜 행하지 못할까? 혹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건 아닐까? 오랜 시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결론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판단과 기준에서 오는 착각일 뿐 결코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부모교육이 그랬다. 자식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아이의 아주 일부분만을 알고 그것이 다인 줄 알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아이를 비난한다. 아이들이 화가 나면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엄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뭘 안다고 그렇게 함부로 말해? “라는 것이다. 자신이 낳아 기른 사랑하는 아이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반성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많은 부모들은 ”모르긴 뭘 몰라? 너 자꾸 헛소리 할래? “하고 거듭 화를 낸다. 안다는 것에 대해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안다.’는 말의 무게가 이렇게 깊다.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뜻을 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바오로 사도 같은 회심의 순간이 살면서 한 번쯤 모두에게 찾아오면 좋으련만, 이 또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더욱 알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은 끝 날까지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알기 위해’ 애를 쓰는 일이다. ‘이제는 다 알았다. 혹은 이 정도면 됐다.’라는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애써야 한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이 객관적 지표로 평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 어렵다.      


‘하늘이 저렇게 푸른 것은 저 하늘의 본래의 빛인가? 너무 멀어서 끝이 없는 까닭인가?

저 위에서 이 지상을 굽어보아도 또한 이러할 뿐이다.’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가 지금처럼 땅에 발을 디디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현세적 삶의 기준에 맞춰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차별과 분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는 대립적 가치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는 모두 나 중심적, 나의 기준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크고 작음은 있으나 큰 것은 가치 있고, 작은 것은 보잘것없음이 아니라 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땅에 서서 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님을 배운다.

나를 고집하며 좁은 틀을 깨려고 애쓰지 않으면 그저 일상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배운다.


하느님과 이루는 일치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내가 참여하며 그분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라 하셨다.


내가 참여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들로 나를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비움'으로써만

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 가능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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