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본당 공동체 안에서
어떤 하느님을 체험했나요?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내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세 12,1-2)
아브람이 부르심을 받는 과정엔 아무런 설명이 없다. 갑자기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로 부르심의 과정을 대신했다.
학창 시절 처음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할 때도 그랬고, 첫 영성체반 어머니 교리교사를 시작할 때도 그랬다. 천천히 계획을 세워 준비한 과정이 아니라 미사 중에 갑자기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불쑥 들어 그렇게 시작했었다. 나조차 ‘뭐지?’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그렇게 미사가 끝나자마자 신부님을 찾아뵙고 활동을 시작했었다.
오랜 시간 이것이 내 의지로 이루어진 일인 줄 알았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내 기특한 의지 인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를 초대해주심을 알게 되었다. 정신이 번뜩 드는 것 같았다. 내 신앙이 뛰어나서, 내 능력이 뛰어나서 나를 부르신 게 아니라, 내 부족함을 알고 배우고 그 안에서 성장하라 부르신 걸 알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 내 고향, 친족, 아버지의 집에서의 내 모습을 떠나는 연습을 했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세상의 가치와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이었다. 교리교사도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처럼 공부하고, 행사 준비하며 산더미 같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더구나 학교처럼 시험을 통해 뽑은 선생님들이 아닌 봉사의 마음으로 함께 한 자리였다. 능력과 효율성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잘하는 분은 잘하는 대로, 힘든 분은 힘든 대로 어우러지기 쉽지 않은 자리였다. 대놓고 화내는 사람은 없었지만 서로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끝내고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받던 날,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했다. 수많은 삐걱거림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흐트러짐 없이 긴 시간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하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이는 주님의 은총과 기적이 없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결실이었다. 해마다 신부님, 수녀님이 바뀌고, 교사들이 바뀌어도, 코로나 19로 힘들 때도 천사 같은 아이들의 첫 영성체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 덕분임을 안다.
본당 공동체에서 만나는 사람들, 행하는 일들은 세상 속 사람들,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는 우리 의지로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초대를 받아, 주님의 뜻대로,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특별하다. 주님께서는 내가 특별히 의로운 사람이어서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약한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주님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믿음의 가능성을 보고 불러주신 것임을 이제는 조금 안다.
주님을 가리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가락 끝을 보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비춰주시는 주님의 빛, 진리의 빛을 가슴에 담을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