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가는 길, 새해의 시작
새해를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길은 늘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고르면서도 솔직히 내 입맛을 더 먼저 생각했다.
달걀, 두부, 콩나물, 그리고 여러 가지 과일을 고르는 내 손길에는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식빵에 바나나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소풍 가는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시골길을 달렸다.
휴대폰에 갇혀있던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빽빽한 도시의 골목을 벗어나,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깨에 무거운 짐들이 흘러내리는 듯했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깨닫는다.
시골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식탁을 가득 채워 맞아주셨다. 직접 담근 달콤한 단술, 제철 과일까지. 우리가 가져간 것보다 몇 배나 풍성한 사랑으로 맞이해 주셨다.
어머니는 늘 그러셨다. "별로 차려줄 게 없다" 하시면서도, 손수 준비한 한 상 가득한 음식들이 나왔다. 배가 불러 더는 못 먹겠다 싶었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젓가락을 놓을 수 없었다.
배를 꺼트릴 겸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볼을 스치자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길가의 고양이들은 여전했다. 어떤 아이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고, 또 어떤 아이는 살가운 소리를 내며 다리에 몸을 비볐다.
추운 겨울, 어떻게 버티고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을 견디고 있었다. 작은 생명들이 혹독한 겨울을 잘 견뎌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길 바라본다.
어느새 바닷가에 닿았다. 겨울 바다는 왠지 모르게 더 깊고 고요해 보였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쉼 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생동감이 넘쳤다. 바다를 바라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평온함이 찾아왔다.
저녁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동태전이 올랐다. 직접 말린 생선에 감자 전분과 계란 옷을 입혀 부친 동태전은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달큼한 시금치무침, 바삭한 멸치볶음까지 하나같이 정성이 깃든 맛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하나둘 꺼내오시며 맛있게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입이 호강한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거실 한편, 꽃기린이 붉은 꽃을 피웠다. 햇빛을 덜 받으면 꽃잎이 하얗게 변한다고 했다. 붉게 물든 꽃과 하얀 꽃잎이 조화롭게 피어 있었다. 모습을 달리해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우리의 삶도 소소한 변화 속에서도 저마다의 모습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새해를 맞는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맛있는 밥 한 끼, 바닷바람을 맞는 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순간들. 그저 평범한 일상이 쌓여 행복이 되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주름진 손길, 달디단 단술 한 잔, 차가운 바닷바람, 길고양이들의 애교 섞인 울음소리까지.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새해의 시작을 만들어주었다.
새해 덕담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올해도 우리 모두 소소한 행복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기를.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 못했던 고향집이지만, 이제는 좀 더 자주 내려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 행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