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또 그 아이가 나타났다.
아침 햇살이 슬그머니 들이치던 골목 끝,
텃밭 옆 허름한 마대 더미 위에
조용히 앉아 사람 눈치를 살피는 그 아이.
작은 체구에 흰 털이 살짝 섞인 까만 아이.
내가 이 동네에서 지켜본
수많은 길냥이 중 하나였지만,
그 애는 유난히 내 눈에 오래 남았다.
그 길냥이는 부모님이 사시는
시골집 근처에 자주 나타났다.
마당 한켠 텃밭 옆에서
슬그머니 앉아 있다가,
누가 나오면 잽싸게 숨곤 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동안 뜸하더니,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날.
뭔가 이상했다.
예전보다 더 야윈 듯했지만
배는 둥글게 불러 있었다.
처음엔 밥이 부족해서
배가 부은 줄 알았지만,
몇 번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아이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우리 집 텃밭 창고 옆,
쌓아둔 박스와 천 조각 사이를 집 삼아
새끼고양이들을 낳은 것이다.
처음엔 내가 거길 기웃대는 게 싫은지
하악 소리로 날 쫓아내기도 했지만,
며칠 지나니 익숙해졌는지
경계가 조금 누그러졌다.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숨도 가빠 보이고,
하루 종일 여기저기 뒤지며
먹을 걸 찾아다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곳은 마트 하나 없이
논밭뿐인 동네라,
먹을 것 찾는 일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닭고기 조각이나 생선살을
조금씩 챙겨서 마당 끝에 놔두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아이는 그걸
입에도 대지 않고 재빨리 물고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는 거다.
자기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말이다.
고작 3~4kg 남짓한 작은 몸뚱이로
새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절절하게 다가왔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
뜻밖의 존재가 등장했다.
힘이 세 보이는 수컷 고양이 한 마리가
창고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단순한 영역 다툼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컷은 새끼를 막 낳은 암컷에게
계속 접근했다.
아직 젖도 떼지 못한
아이들을 둔 엄마 고양이는
그 수컷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한밤중 골목에서 들리던
울음 섞인 울부짖음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단순히 동물의 소리가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절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조그만 몸에서,
세상을 향한 모든 저항과 절망이
스며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예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길냥이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포식자도, 구조자도 없는 거리에서
그저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남아야만 한다.
나는 그저 작은 물 한 그릇과,
닭고기 몇 조각을 놓아줄 뿐인데도
그 아이는 매번 경계하면서도
끝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두려움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먹이를 위해선 용기 내어 발을 내딛는다.
그 행동 하나하나에서 삶의 처절함과,
동시에 희망을 읽는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생의 의지를 말이다.
요즘도 그 아이는 가끔 집 앞에 온다.
이젠 새끼고양이들도 조금씩
텃밭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작은 세상을 배워간다.
누군가는 말한다.
“길냥이는 괴롭히지 않으면 됐지,
챙겨줄 필요까지 있나?”라고.
하지만 그런 말은,
그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매일 사는 게 투쟁인 작은 생명에게
밥 한 끼 건네는 일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다시 엄마가 될지,
어떤 미래를 맞을진 모르지만
이 따뜻한 작은 선택들이
언젠가 길냥이의 삶에
진짜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