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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ind May 28. 2021

위대한 개츠비

사랑하기에 위대한 개츠비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을 봤다. 화려한 저택 한가운데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술잔을 위로 들어 올리는 파티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자연스레 호화로운 상류 생활, 파티와 향락, 사치스러움과 욕망을 연상시켰고, 호기심에 책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개츠비라는 남자가 데이지라는 한 여자를 사랑하여 자신의 일생을 건 사랑이야기다. 혹자는 20세기 미국의 시대상과 각 인물들이 가진 상징성을 로맨스로 축소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로맨스 또한 분명한 삶의 진실이다.


오로지 데이지와의 재회를 꿈꾸며 성공을 향해 달려온 개츠비

책은 서술자인 닉이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된 개츠비를 추억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시작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밀주업자와 갱단이 판을 치고 사치와 향락이 난무하던 미국. 증권업을 배우러 웨스트에그에 자리 잡은 닉은 이스트에그에 살고 있는 친척 데이지의 초대를 받는다. 그곳에서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 톰, 유명한 골프선수 베이커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상류사회의 사람들이자 유흥을 일삼는 이들이었다. 닉은 그들이 삶에 대해 진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곳에서 닉은 이웃에 새로 이사 온 개츠비라는 신흥부자의 이야기와 톰에게 정부가 있다는 사실, 데이지의 혼란스러운 결혼 생활 등을 듣게 된다. 닉은 불안정한 데이지를 보며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는데, 저 멀리 어둠 속에 서 있는 개츠비와 인상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다. 그는 부두의 맨 끝자락에 조그맣게 반짝이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손을 내밀어 다가가려 애썼던 초록불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개츠비의 모습은 닉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는 곧 이웃 저택에 사는 개츠비와 친구가 되었고, 출처 모를 막대한 부를 소유한 개츠비는 호화 파티를 벌이면서 이것이 데이지와의 재회 수단이라고 고백한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개츠비가 전쟁에 나가면서 이별하게 되었고 데이지는 곧 조건 좋은 톰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다.


사랑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드디어 닉의 도움으로 개츠비는 데이지와 5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기 직전 극도로 흥분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개츠비에게 있어 데이지와의 재회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장하며 기다려왔던 꿈만 같은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당신 집이 있는 곳, 그곳의 부두 끝에는 항상 초록빛 불이 켜져 있다.”면서 그녀를 향한 여전한 사랑과 순수한 마음을 고백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초대해 자신의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집을 보여주며 그녀의 마음을 사려 애썼고, 데이지는 개츠비의 막대한 부에 취한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과 헤어져 5년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자신과 사랑했던 과거를 반복하길 바란다.


잘못된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도 진정한 사랑일까.

  그러나 곧 개츠비의 삶의 진실이 밝혀진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를 눈치 챈 톰이 개츠비가 밀주업으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과 그가 저질러온 부정과 비리를 폭로한 것이다. 사랑이란 목적을 위해 사회정의와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한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개츠비의 사랑은 데이지를 처음 사랑했던 순간 그대로이다. 이 사랑은 비현실적이며 이상적이라는 점에서 순수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은 이제 없다.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던 데이지는 차에 뛰어든 톰의 정부 머틀을 치어 죽이게 된다. 이 사건 직후 개츠비는 닉에게 데이지가 아닌 자기가 운전한 것으로 거짓 증언할 것이며 곧 데이지와 함께 떠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내 머틀의 죽음에 광분한 윌슨은 톰의 농간에 속아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이 개츠비라고 오해한다. 그리고 개츠비의 집으로 가 수영장에서 쉬고 있던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개츠비는 자신이 오래 품어온 그 사랑의 대가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개츠비의 장례식 날, 결국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으며 데이지는 방문은커녕 전화조차 없었다.


사랑하기에 위대한 개츠비

  한 평생을 오직 사랑만 바라보다 서글프게 죽은 그였기에 ‘불쌍한 개츠비’일 수도 있었다. ‘위대한’이라는 표현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오로지 사랑 때문에 물질적 성공에 집착하고 또 그 사랑 때문에 비참한 종말을 맞는 개츠비의 인생역정은 누구나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츠비의 순수함이 강조되는데 이는 그의 치부를 덮을 만큼 진실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혹자는 20세기 미국의 시대상과 각 인물들이 가진 상징성을 로맨스로 축소시키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순수를 둘러싼 개츠비, 데이지, 닉과 톰은 당시 아메리칸 드림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1차 세계대전 후 정신적인 공황 속에서 존재 의미를 읽고 환멸에 빠져 있던 *잃어버린 세대의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의 순수한 초심을, 데이지는 아메리칸 드림이 타락해가는 모습을, 닉은 아메리칸 드림의 순수를 신뢰하는 정신을, 톰은 꿈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쾌락에 탐닉하는 미국을 상징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순수한 초심은 점차 퇴락해가고 결국은 물질과 향락에 찌든 미국의 모습으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개츠비는 물질적 향락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사랑만을 향해 줄곧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닉은 개츠비의 집을 바라보며 그를 추억한다. 개츠비가 데이지의 초록색 불빛을 처음 찾아냈을 때의 경이를 생각하고 그 꿈을 향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을 개츠비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초록색 불빛을 지난날의 사랑을 그대로 간직한 미래라고 믿었던 개츠비의 순수를 기억한다. 이런 그의 순수한 ‘사랑’과 그것을 성취하려는 ‘노력’ 그리고 힘든 상황에도 끝까지 잃지 않았던 ‘희망’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도 개츠비가 우리 가슴 속에 ‘The Great Gatsby’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읽어버린 세대 :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후 기존의 모든 가치와 신념, 그리고 이상을 읽어버리고 환멸만 갖게 된 미국의 젊은 세대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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