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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앤 Jul 04. 2022

집없음 경력없음 돈없음

2020년 코로나 벼락거지 신세


2020년 코로나로 등교와 출근이 모두 재택으로 바뀌었다.

세식구가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자연적으로 많아졌다.

다행히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와서 서로의 여유공간이 있는게 다행이라 안심하던 날들이었다.


하루하루 끼니 때우기와 아이와 노는 것에만 몰두하던 어느날.

큰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 앉아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애 태우더니 언제 저렇게 컸을까. 

내 손가락 한마디에 아이 다섯손가락이 꽉 찼었는데.

어느새 제법 아기티를 벗은 얼굴, 길쭉해진 손가락 하나하나 뜯어보며 옛 기억을 더듬던 차였다.


'우리 얘도 내후년이면 벌써 10살 소녀가 되겠네.

그 전에 근사하게 아이만의 방도 꾸며줘야겠고 ...

가만있자 2년뒤면 열살인데 그때도 이집에 살고 있을까?

집주인하고 전세금 협의가 안되면 이사를 또 가야하는건 아닐까?'

평화로운 아이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의 10살 모습이 오버랩이 되었다.


돈걱정없이 갖고 싶은 것을 다 누리며 살다가 

한순간에 변화를 맞이했던 나의 10살.

아빠의 일이 잘못되며 급격하게 어려워졌었다. 


어느 여름날, 아빠가 잠들기 전에 말씀하셨다.

"우리 내일 이사가. 지금보다 작은 집으로 갈거야."

"그래? 그러면 숨바꼭질할때 더 빨리 찾을 수 있으니 재미있겠다". 

그때 나눈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사를 가고나서 알았다. 정말 우리집이 작아졌네.

어린 나이였지만 이 모든 것이 돈과 연관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부모님 모두 나에게 상황변화에 대한 이유와 구체적인 설명은 없으셨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앞으로 하고 싶은것을 하면 안되는구나, 갖고 싶은걸 갖고싶다고 쉽게 말하면 안되겠다.'


2년뒤 전세만기 시점이 아이의 열살이었다. 

아이의 열살이 나의 열살처럼 되어버리는건 아닐까,

지금의 이 눈부신 모습이 눈물로 바뀌는건 아닐까 순간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아이도 너처럼 살게 할거야? 정신차려!"

누군가가 머릿채를 잡고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당장 집을 사고 돈을 벌러 나가야할것같았다.



© alexandermils, 출처 Unsplash


그 다음날 바로 집앞의 부동산을 찾아갔다.

때마침 부동산 시장이 급등하던 시기로 하루가 다르게 매매가가 바뀌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이 동네로 오며 매매를 할까 전세를 할까 고민하던 시기보다 

벌써 2-3억이상 가격이 오르는 추세였다. 어제 고민했던 집이 오늘 가격이 더 오르는 시기였다.

대출을 무리하게 받으면 살 집은 마련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출을 갚아나가는 게 너무 부담이 컸다. 대출을 어떻게 활용하면 될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가진 자본으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우린 언론에서 보도하던 내 집하나 갖지못한 

이른바 '코로나 벼락거지'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발빠른 부자들은 일찌감치 시장의 흐름을 읽으며 달려나가고 있었는데 

심봉사처럼 눈 앞의 세상 아무것도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허탈한 웃음 조차도 안나올정도로 몸이 바닥으로 축 가라앉는것 같았다. 


이른둥이 아이를 케어하며 모든 일도 내려놓고 열심히 가정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은것은 몇 푼 안되는 자산과 경력단절 엄마라는 꼬리표 뿐이었다.

돈없음+경력없음+집없음의 3박자가 가슴을 쿵쿵 쳤다.

아이의 열살이 나의 열살처럼 되지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엄마가 너는 더 나은 생활을 하게 해줄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삶의 목표를 명확하게 그릴 필요가 있었다. 

내가 달라져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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