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일이 좋은 사람도 있고 곤혹스러운 사람도 있다. 나는 주로 후자에 속한다. 한 잔이라도 마시면 대번에 얼굴이 붉어지고 속이 편치 않아서 화장실로 직행해야 한다. 억지로 마시다가는 병이 난다. 언젠가 객기로 소주 한 병을 마신 일이 있었는데, 거짓말을 좀 보태면 이틀을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친구 중에는 아무리 마셔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친구가 있는데, “음주 단속 경찰관의 단속에서 차 안에 술 냄새는 가득한데 측정기에서는 반응이 없었다.”라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물론 그가 부럽다는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만 마시면 좋겠다. 조선시대 영조 임금은 금주령을 시행하기로 유명한 임금이었다.
『계서야담』에 금주령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영조 임금이 금주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윤구연이 술을 마시자, 그를 참수하였다. 현재로 치자면 제주도를 총괄하는 도지사 격인 제주목사까지 지낸 사람이었는데 그만 임금의 눈 밖에 나서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셨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 후 임금은 또 어디선가 누군가 술을 먹었다는 고변을 듣고는 암행어사를 파견했다. 하지만 술을 만든 사람이 가난한 서생이었고 그의 아내와 어머니가 한사코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통에 암행어사는 그 가족을 살려주고는 임금에게 그런 사람이 없다고 거짓으로 고했다. 후일 그 서생이 관찰사가 되었고 암행어사를 지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윤구연은 금주령이 내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다가 죽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겠다. 심지어 술을 빚어 생계를 꾸렸던 서생은 단속반을 잘 만나서 후일 관찰사까지 되었으니, 결국 나라의 지엄한 법이 있어도 사람에 따라 달리 처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윤구연에 관한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찾아보면, 영조 임금은 “남행 선전관(南行宣傳官) 윤구연(尹九淵)이 유엽전(柳葉箭) 10순(巡)에서 수석을 차지하였으니, 전시(殿試)에 곧바로 응시할 자격을 주라.”라고 했다. ‘유엽전’은 버들잎을 닮은 화살촉을 일컫는 말이고 ‘10순’은 10번 돌아가며 쏘았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윤구연은 수석을 차지했다. 그러므로 그의 무예가 대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주목사 시절에는 관청을 단속해 업무 기강을 바로잡았다는 기록도 있으니, 그가 술을 마셨다고 해서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겠다. 결국 술이 사람을 먹은 셈이다. 영조 임금도 그 사실을 잘 알았지만 그를 참수했을 때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윤구연은 시절을 잘못 타고났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윤구연뿐만 아니라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신 일화들이 많다. 중국에서는 금주령이 내리자, 청주를 성인(聖人), 탁주를 현인(賢人)에 빗대어 빚어 마시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 이유는 한쪽에서는 쌀이 없어서 굶어 죽는 판국에 다른 쪽에서는 쌀로 술을 빚어서 취하는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왕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알겠다.
다행히 술을 마시지 않으니, 금주령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한 잔이라도 마시면 온몸이 반응하니 "네가 술을 다 먹었냐?"면서 놀리는 친구도 있는데, 술을 못 먹어서 낭패 본 일은 없다.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모임이 끝나면 술이 거나한 친구들을 집까지 태워주는 일이 종종 있다. 아예 "네가 술을 못 마시니까 나중에 태워줘."라고 하는 친구도 있다. 덕분에 귀가 시간이 제일 늦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다음날엔 꼭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다. 영조 시대에 태어났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만하면 시절은 잘 타고났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