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쟁이 짱쓸 Feb 06. 2016

#12.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나의 정신적 후원자


2008년, 몇년간 길렀던 긴 머리카락을 단발로 싹둑 잘랐다. 난 아카데미에서 방송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초교육을 받았고, 6개월간의 과정을 마치고 수료한 뒤, 운 좋게도 한 인터넷방송국 취업에 성공했다.


그 해에는 모든 것이 잘 풀렸다. 졸업 전 취업이라 재직증명서를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교수님께서는 축하의 말을 전하시며 흔쾌히 허락하셨다. 남들보다 6개월 빠른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서툴지만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리포팅은 즐거웠다. 그 역시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줬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그는 나의 성장을 축하하며 더 애틋하게 챙겨줬다.


당시 싸이월드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을 때, (우리 세대들은 기억할수도) 투데이멤버라는 이슈멤버로 선정됐다. 일명 '투멤녀'라고 불렸다. 방송인의 꿈을 갖고 노력하는 소녀, 이 타이틀로 난 싸이월드 메인에 올랐고 매일 방문자수는 수만명이 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꿈을 응원했다. 난 더 기쁜마음으로 일했다.


하지만 방송 일은 쉽지않았다. 리포터,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당시 공중파나 케이블이라는 벽은 넘기가 쉽지 않았고, 내가 근무했던 작은 방송사에서는 급여가 나오지 않았다. 밀린 월급을 퇴사 후 2개월이 지난 후에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첫 시작이 의외로  잘 풀렸던 것과는 달리 사회는 냉정했다. 백만원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난 결국 몇개월 버티지 못한 채 퇴사했다.


졸업 전 까지는 프리랜서 리포터로 이곳저곳 다니며 활동했다. 열심히 노력했으나, 난 아직 서툰 사회초년생이었으며 실력 또한 배테랑이 되기엔 아주 많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진 않았다. 이력서를 한 백개쯤 넣어봤고, 카메라 테스트와 오디션을 한 백번쯤 봤다.(실제로 백번이 넘었던 것 같다) 그나마 받은 급여는 프로필 사진 촬영에 투자해 이곳 저곳 열심히 문을 두드렸다.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방송 프로그램 엑스트라, 단역 등 방송과 관련된 모든 일을 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욕심이 많았으나 그 욕심을 모두 채우기엔 난 너무 부족했고 난 너무 어렸다. 계속해서 부딪혔고 계속해서 넘어졌다.


그럴때 마다 그는 조용히 내 옆에 있어줬다. 나의 실패에 대해 그 어떤 충고조차 하지 않았다. 나보다 세살이 많았던 그에게는 나의 실패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나의 도전이 멋지게만 보였다,고 한다.


지금 다시 꺼내어보면 너무나 창피한 내 과거 방송들, 당시 그는 마냥 기뻐해줬고 그저 이뻐해줬다. 볼품없던 내 첫 리포팅에도 그는 열광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 그 당시 주변에 누가 있었냐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는 내 부모이자, 친구이자, 애인이자, 가족이었다. 밖에서는 초라한 사회초년생이었지만 그의 응원 속에 난 세상 가장 멋진 여자로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의 응원 속에 난 2009년 1월, 대학 졸업 한 달전에 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됐고, 원래 꿈꿨던 방송인은 아니지만 말 대신 펜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언론인이 되어 있다.


그는 당시에도, 지금도, 나의 가장 큰 정신적 후원자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