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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Feb 07. 2016

#13.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오감이 교차하는 버스터미널


나는 버스터미널을 싫어한다.


차가 없던 나는 주말에 아버지를 뵈러, 어머니를 뵈러 종종 지방을 다녔다. 홀로 계셨던 아버지는 제천에, 어머니는 천안에 계셔 주말 시외버스를 종종 이용했다.


첫 자취를 시작한 청춘들에게 부모라는 이름은 그립다. 나 역시 그랬고, 특히나 헤어져 계신 부모님을 따로따로 뵙는 일은 썩 흥미롭지 않았다.


2주에 한 번씩은 제천에 내려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고 밀린 빨래와 청소를 했다. 가끔은 어머니를 찾아 맛있는 집밥을 먹고 왔다.


일요일 오후 4시버스. 난 항상 이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다. 잠에서 깨 발을 내딛는 동서울터미널에는 오감이 교차한다.


차가운 공기가 매섭고, 어두컴컴한 터미널은 다시 시작되는 냉정한 사회의 시작을 알린다. 글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텁텁한 감정때문인지 난 지금도 버스터미널의 그 기운을 싫어한다.


어느새부턴가 내가 도착하는 오후 6~7시께 그는 터미널에서 날 기다렸다. 당시 그는 바이크를 타고 있었고, 차가 밀려 도착이 늦을때에는 30분 이상 터미널 앞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기다렸다.


버스에서 내릴 때의 텁텁했던 감정은 그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바뀌어 갔다. 그는 언제든 날 기다리고 있었고, 터미널에서 또 다시 집으로 가는 쓸쓸했던 1시간은 그와 함께 했던 행복한 1시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어린아이였다. 그동안 느꼈던 그 감정들은 터미널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모두 입밖으로 쏟아져나왔다. 그는 몇년동안 반복된 나의 투정들을 모두 받아줬다. 그리고 이해했다.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주신 반찬 등의 짐은 모두 그가 건네받아 들어줬다. 보이는 짐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짐도 그가 건네받았다. 난 버스터미널에 도착함과 동시에 홀가분해졌다.


단순히 보고싶은 맘에 행해졌던 그의 마중은 나의 많은 것을 바꿔줬다. 조금이라도 빨리 터미널의 그를 만나고 싶어졌고,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그 버스를 같이 타기도 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버스터미널, 지금도 당시의 텁텁함이 남아있어 굳이 찾고 싶진 않지만 나의 쓸쓸함과, 그리고 설렘이 진하게 묻어있는 그 터미널이 가끔은 그립다.


동서울터미널 앞 김밥천국에 들어가 그와 함께 라볶이를 먹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한다.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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