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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Feb 02. 2016

#1.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코드(code)는 분명히 존재한다


평범한 21살 여대생이었다. 기대보다 별로였던 대학생활 1년에 지쳐있었고, 전공서적 사는 돈이 아까워 복사로 대신하고 옷을 하나 더 사입었다.


술도 많이 마시고 옆 학교 남학생들과 미팅도 하고, 또 '헌팅의 메카'로 불리는 술집에서 처음 본 남학생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공부는 이미 고3  이후로 끝났다. 라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20대 초반 여대생이었다.


열아홉에 만나 1년간 연애했던 내 남자친구는 몸이 멀어지면서 마음도 멀어졌다. 누구나 그랬듯이. 서울에 있는 학교 앞 고시원에 지내면서 많이 외로웠고, 또 그렇게 익숙해져 갔다.


내 스무살은 나의 인생 중 가장 도려내고 싶은 부분이다. 19년을 지내왔던 고향에서 처음 떠나 홀로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당시 부모님은 이혼을 했으며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던 남자친구와는 헤어졌다.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찾아 헤맸지만 적응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성장통을 겪었던 내 스무살은 그저 아프기만 했다.


스무살의 자취생이 모두 그렇진 않았겠지만, 나는 밤이 가장 어려웠다. 온갖 외로움과 슬픔 등 복잡한 감정이 몰려드는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싸이월드(2005년 당시에는 최고의 sns였다는)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을 무한반복으로 재생한 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관자가 되어 갔다.


외로움은 결국 사람을 쫓게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했다. 스무살의 사랑은 쉽고도 어렵다. 쉬었던 만큼 한달에 한번 꼴로 남자친구가 바뀌었고 마음도 금새 바뀌었다. (현재는 흔히들 금사빠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은 너무나 다양했다. 결별에 대한 이유로 사람들은 흔히 '성격차이'를 거론한다. 맞다. 성격차이는 좁히기 쉽지않다.


너와 내가 20년간 살아온 세월이 다른데 그 긴 기간동안 정립돼 온 각각의 성격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맞을 수 있을까. 내가 준 사랑을 네가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그 때문에 바람을 피웠던 것도, 전부다 성격차이다. 맞지 않았고, 맞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더 이상 맞춰가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성격차이다. 사랑은 차이를 좁히지 않으면 이어나갈 수 없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던 평범했던 스무살이 지나고, 그래도 조금은 괜찮겠다라고 생각했던 스물 한살때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펴 떠나갔을 때, 역시나 난 사랑받기엔, 그리고 사랑하기엔 아직 부족한 존재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의 주인공을 만났다.


"자기야, 우린 정말 코드가 잘 맞는 것 같아. 그치?"


그는 10년 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고, 10년 후인 현재도 이 말을 하고 있다.


코드란 분명히 존재한다. 가족간에도 코드가 존재하고,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코드가 존재한다. 물론 DNA 유전자를 복제하지 않는 이상(혹여 복제했더라도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100%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코드라는 것을 우리는 '맞다'라는 가정 하에 열심히 맞춰나갔고, 하나하나 맞아떨어질 때마다 "역시 맞았어"라는 일종의 성과에 대한 희열로 10년을 지내왔다.


그것이 내가 10년간 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었고, 또 그가 날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코드를 맞춰나간다는 것, 그것도 사랑이다.


10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쭉 이어져갈 이 코드는 2006년 모 여대 앞 커피숍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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