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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Feb 26. 2016

#21.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평범한 일상의 특별함

그도 그의 일로 바빠지고 나도 나의 일로 바빠졌을 때, 당연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갔다. 작은 사업체를 시작한 그는 거래처를 늘려가며 사업을 영위하기 바빴고, 나 역시 기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며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여행을 즐겨하고 바이크 타는 걸 좋아했던 우리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약해져가는 체력은 어찌할 수 없었다.


어느샌가 우리에게 주말은 그저 쉬는, 그저 집에서 편히 쉬는 날이 되어 버렸다. 토요일의 경우 그의 친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일주일간 힘들었던 피로를 풀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로 인해 일요일은 그저 시체였다.


연애가 길어지면 둘만의 시간보다는 또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흥미를 느끼게 된다. 우리도 역시 그랬으며 주말에  단둘이 방문하던 영화관 횟수도 줄어갔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체력이 뒷받침 돼야 가능하다. 20대 후반에 도달했을 때, 바빴던 나의 일상은 유일하게 자유시간이었던 주말도 집에서 보내게끔 만들었다.


나의 집, 혹은 그의 집에서 우리는 그냥 그렇게 주말을 보내기 시작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고, 저녁때쯤 방영하는 무한도전을 보고, 그렇게 평범한 주말을 이어갔다.


밖에 아예 나가지 않는 어느 날은 우리 모두 씻지도 않은 채 잠으로 하루를 채웠다. 우린 그렇게 일상에 지쳐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도, 그리고 지금도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주말이 너무나도 달콤하다.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주말을 집에서 보낸다.


여전히 늦잠을 자고, 늦은 식사를 하고(귀찮을 땐 배달음식을 먹는다), 여전히 토요일 저녁에 방영하는 무한도전을 시청한다. 가끔은 그와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도 한다.


일요일에도 늦잠을 자고, 늦은 식사를 하고, 일요일 예능을 즐기고, 직장인들의 주말 끝을 알려주는 개그콘서트를 시청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다.


가끔은 이런 주말이 무료해 여행 스케쥴을 짜기도 한다. 짧은 1박2일 코스,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겸 떠난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이 역시도 쉽지 않다.


그러나 그 평범한 주말 속에서도 우리는 아직까지 함께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며 그 평범함을 즐긴다. 우리 둘 모두 약간의 게으름이 태생적으로 내재돼 있는지 몰라도, 우리에게 너무나 평범한 이 주말은 꿀맛이다.


10년째 그와 함께 가는 마트도 매번 즐겁다. 떡볶이를 포장해 와 집에서 함께 먹는 그 평범함도 여전히 즐겁다. 아무것도 아닌 소소함이지만 그와 함께, 주말에라도 이런 소소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게 느껴진다.


연애 초기엔 둘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좋지만, 연애가 길어지면 그와 나의 편안한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좋아진다. 또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 다시 특별한 무언가가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그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10년째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 평범한 일상도 그와 함께 한다는 것에 감사하다.


평범함이 모아져 10년이라는 특별한 시간이 만들어진다. 지금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옆에서 피곤함에 지쳐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그, 평범한 이 순간도 조금씩 모아져 나에게 특별함으로 선물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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