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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짱쓸 Mar 01. 2016

#23. 한 남자와 10년동안 연애하기

약점 빨리 공개하기


누구에게나 약점, 컴플렉스는 있다. 나 역시도, 그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나의 약점을 알아버릴까 두렵다. 좋은 것만 보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라, 나의 약점은 최대한 들키지 않게 꽁꽁 숨기게 된다.


가령 그것이 신체적 문제이든, 가족의 문제이든, 성격적 결함이든 사랑하는 이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20대 초반이었던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숨길 정도로 치밀하지 못했고, 허술했다. 첫 예로, 난 작은 키는 그럭저럭 넘어간다해도 내 짧은 다리가 컴플렉스였다. 사실 이것때문에 지금도 바지보다는 치마를 즐겨입는다.


옷으로 커버하면 모를 줄 알았다. 하지만 연애 초기에 그는 날 보며 "숏다리네"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 난 짧은 다리에 긴 허리를 소유한(그렇다고 키가 크지도 않은) 별로 달갑지 않은 비율을 소유한 여자였다.


그는 '땅꼬마'보다 더 굴욕적인 '숏다리'라고 부르며 날 놀렸다. 하지만 그가 허문 내 단점의 벽은, 날 더욱 편하게 만들었다. 이후 난 편하게 내가 입고 싶은데로 옷을 입었고, 바지도 그리 어렵지않게 입었다.


그는 얼굴이 긴편이다. 긴 얼굴형이 그에게 컴플렉스였다. 난 그것이 그의 컴플렉스라 생각치 못하고 "오빠는 얼굴이 길쭉길쭉해"라며 놀렸다. 그는 처음에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후 내 앞에서 단 한번도 올리지 않았던 앞머리를 시원하게 올리곤 했다.


그는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나와 달리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멈춘 것에 대한 컴플렉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 앞에서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저 단어는 영어로 뭐야?"

"붕당정치는 무슨 의미야?"


그는 뉴스를 볼 때나, 일상에서 언제든 모르는 것은 나에게 터놓고 물어봤다. 창피해하지 않았다. 난 뭐든지 나에게 물어보는 그가 고마워 친절히 대답해줬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불편함을 끌어 안았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약점이 있다. 그와 나에게도, 사소하지만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숨김은 오래가지 않았고, 우리는 아주 일찍, 서로에게 부족한 것들을 모두 깨내어 놓았다.


약점은 일찍 공개할 수록 좋다. 그 약점을 보듬어줄 수 없다면, 안고 갈 수 없다면 애초에 그 관계는 그만두는 것이 좋다. 우리는 서로의 그것들을 모두 품었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의 약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숏다리라서 더 귀여워. 난 키 큰 여자들은 질색이야."


"멍충이.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해. 모르는게 그렇게 많아서 나중에 나 없으면 어떻게 할래."


우리는 서로의 모자란 부분까지도 모두 사랑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약점들은 우리가 사랑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약점은 최대한 빨리 공개하자. 그것을 상대가 인정하든 안 하든, 그것마저도 사랑으로 품어주든, 내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공개하고 시작하는 연애가 더 편하게, 진실되게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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