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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시연 Oct 27. 2024

오렌지족

오늘은 미장원이 한 달에 한 번 쉬는 날이다. 


소화와 민아는 모처럼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와도 둘은 이불속에서 꼼지락거리기만 했다. 


“아! 기분 좋아.”

“이렇게 누워있는 게 꿈만 같다.”

“그동안 우린 참 열심히도 살았다. 모처럼 쉬는 날에 이불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니 말이야.”

“뒹굴뒹굴하니깐 배도 안 고파.”

“호호호. 천하의 민아가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있네. 그런데 조금 있으면 난 배가 고플 것 같아. 그러니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맨날 먹는 것 말고 좀 더 특별한 것을 먹으면 어때?”

“좋은 생각이야. 그래서 말인데 우리 시간 낭비하러 갈까?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깐 오늘만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시간을 가져 보자.”

“당연히 좋지! 우리 맥도널드 햄버거 먹으러 갈까? 조금만 걸어서 가면 되잖아. 남들은 일부러 압구정 로데오 거리로 놀러 왔다가 햄버거 먹고 간다고 하는데 우린 걸어서 갈 수 있잖아.”

“오! 좋은 생각인데. 쇼핑도 하고 맛있는 햄버거도 사 먹자.”


소화와 민아는 이불속에서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서둘러서 세수하고 화장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원장님에게서 배운 화장법은 오늘 소화와 민아에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화장이 끝나자 소화는 청바지에 쫄티를 입고 민아는 통 넓은 바지에 배꼽티를 입고 머리에 두건을 둘렀다. 신발은 둘 다 높은 통굽으로 된 구두를 신었다. 빨간 브리지를 넣은 소화와 노란색으로 염색한 민아는 서로의 패션을 점검해 주고 나서 미장원을 나섰다. 


“와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냐.”

“정말 바쁘게 살았나 보다. 그동안 압구정에서 살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었어.”

“저기 사람들 좀 봐봐. 햄버거를 먹겠다고 벌써 줄을 선 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 거지. 그래도 먹어야겠지?”

“당근이지. 우리는 아침도 안 먹었잖아.”


소화와 민아가 뒷줄에 서자마자 사람들의 긴 꼬리 줄이 이어졌다. 소화와 민아는 30분을 기다리고 입장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깐 위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로 인해서 소화와 민아의 뱃속은 ‘꼬르륵꼬르륵’ 전쟁을 방불케 했다. 순번이 되자 소화가 주문한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민아야! 얼른 먹어보자.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소화와 민아는 먼저 햄버거를 크게 베어 먹었다. 햄버거는 조금은 생소한 맛이지만 정말 맛있었다. 소화와 민아는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말 놀랄 만큼 햄버거가 맛있다는 표정이었다. 햄버거와 콜라 그리고 감자튀김을 먹은 소화와 민아는 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알게 되었다.


별미를 먹고 난 소화와 민아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거닐었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머리핀과 귀걸이도 사면서 둘은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동안 편하고 낮은 신발만 신다가 굽이 높은 새 구두를 신고 있으려니 발이 아파서 걷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얏! 난 발이 아파서 더 이상 못 걷겠어. 편한 신발 신고 올 걸 그랬나 봐.”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한 켤레씩 살까? 미장원에서 신어도 되잖아.”

“좋은 생각이야. 민아야! 저기 신발가게 앞에 세일이라고 쓰여 있는데 가 보자.”

“그래! 들어가 보자.”


소화와 민아는 세일이라는 것만 믿고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찾는 신발이라도 있나요?”

“편한 신발요.”

“물론 있죠. 저희 가게에 있는 신들은 다 편한 신발들이에요. 디자인도 이쁘지만 신으면 발도 아프지 않아요. 신발 문수는 어떻게 되나요?”

“저희는 둘 다 235 신어요.”

“이것 신으면 맞을 거예요. 이쁘면서도 아주 편해서 저희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발이거든요.”


소화와 민아는 주인이 권하는 신발을 신어 보았다. 신발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맞았고 생각보다 훨씬 이뻤다. 맘에 든 소화와 민아는 신발을 사려고 가격을 물었다. 그랬더니 상상 이상으로 가격이 비싸서 소화와 민아는 깜짝 놀랐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는 소화와 민아를 보고 주인이 말했다.


“오늘부터 30% 세일해서 이 가격인데 언니들은 운이 좋은 거예요. 어제까지는 제값 다 주고 샀거든요.”

“아! 죄송한데요. 저희는 다음에 살게요. 죄송합니다.”

“딱 봐도 신발 임자들인데 뭐가 맘에 안 드나요?”

“정말 죄송한데요. 저희가 가진 돈으로는 살 수 없어서요. 다음에 사겠습니다.”

“할 수 없죠! 다음에는 이 제품들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요. 저희 매장에서 워낙 인기 있는 신발들이거든요.”


주인 여자는 ‘쿨’ 하게 대답하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은 감추지 않았다. 민망한 소화와 민아가 서둘러서 자신들의 신발로 갈아 신고 있는데 서너 명의 여자들이 가게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순간 주인 여자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어서 오세요! 그렇지 않아도 저번에 주문한 신발들이 좀 전에 들어와서 언제 오려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문한 신발들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구하기 힘들었어요.”

“매번 신상을 구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가 고맙죠. 고객님들이 이쁘게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을 보면 저희도 기쁘답니다.”

“여기 매장도 세일을 하나 봐요?”

“1년에 한 번씩 세일을 해서 재고상품을 처리하고 있어요. 어차피 세일을 하는 것은 유행이 지난 거라서 빨리 처분해야 하거든요.”

“돈을 얼마나 아낀다고 한 시즌 지난 것들을 사는지 이해가 안 간다니깐요. 신상으로 사서 신어야 오래 신을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럼요. 진정한 멋쟁이들은 유행을 앞서가는 거죠. 아가씨들처럼요.”


소화와 민아는 손님과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빨리 가게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소화와 민아는 허둥지둥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얼굴이 빨개지면서 창피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마음에 드는 신발 하나를 못 사는 처지라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까지 들었다.


둘은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이젠 발이 아픈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점포 정리한다는 가게를 지나게 되었다. 단돈 2,000원이라는 가격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소화와 민아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이것 신고 미용을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꼭 비싼 메이커 신발을 사서 신자.”

“그러자! 지금은 준비하는 시기이니깐 우리 처지에 맞게 생활하자. 앞으로는 그 사람들 못지않게 우리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소화와 민아는 발에 꼭 맞는 운동화를 사서 신고 가게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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