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와 민아는 일과가 끝나면 미장원에서 커트와 파마 마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연습과 실력은 비례한다는 것을 소화와 민아는 요즘 들어 부쩍 실감하고 있었다. 매일 꾸준히 연습한 결과 커트도 파마도 제법 잘해서 서로의 머리를 해 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구르프 마는 연습을 했다. 제한된 시간에 완성해야 하므로 시간을 재면서 하고 있었다.
“어라! 또 시간초과 되었네.”
“그러게. 원장님이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면 구르프를 잘 말아도 소용없다고 했는데 어쩌냐!”
“어쩌긴 어째! 될 때까지 연습하면 되는 거지.”
“그렇지! 구르프 마는 기술은 어느 정도 되니깐 좀 더 빠르게 마는 연습을 하면 될 것 같아.”
“자! 시간에 맞춰서 다시 말아보자.”
소화와 민아는 시계를 보면서 구르프 마는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시간이 단축되긴 했어도 합격선에는 아직 멀었다.
“오늘은 이만하자. 당장 내일 시험 볼 것도 아니고 시험 보려면 한참이나 남았잖아.”
“너무 열심히 했는지 배가 고프다. 넌 어때?”
“물론 나도 배고파. 우리 라면 먹을까?”
“좋은 생각이야. 얼른 정리하고 라면 끓여 먹자.”
소화와 민아는 서둘러서 널브러져 있는 미용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화와 민아는 양은 냄비에 끓인 라면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난 이때 먹는 라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 같아.”
“늦은 시간이라서 출출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열심히 연습하고 난 뒤라서 그렇겠지.”
“당연하지. 신성한 노동 뒤에 먹는 라면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니깐.”
“시간이 흐르면 우리도 나이를 먹겠지. 그리고 원장님처럼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을 텐데 그때도 라면이 지금처럼 맛이 있을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그때는 우리가 나이를 먹어서 입맛도 바뀔 수도 있고 무엇보다 주변 상황이 다를 테니깐 말이야.”
“아!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난 라면을 계속해서 좋아할 것 같아.”
“어련하겠어. 민민아씨!”
“넌 나를 놀릴 때면 꼭 성까지 붙여서 이름을 부르더라. 민 씨가 성씨이면 민아 말고 다른 이름으로 지어야 하는데 엄마가 ‘민아’라는 이름이 좋다고 해서 그냥 지었다는 거야. 정말 어이없잖니! 덕분에 학교 다닐 때 친구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았어. 넌 나처럼 이름으로 인해 놀림은 받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함소화’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니?”
“내 생일이 봄이잖아. 돌림자인 ‘소’ 자에 사과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고 ‘꽃화’를 붙여서 엄마가 지었대”
“엄마가 무척 낭만적이시다. 이쁜 이름을 지어주신 것을 보면 말이야.”
“다행히 나도 내 이름이 맘에 들어.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아서 문제였지. 특히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이 이쁜 이름이라고 수업 시간마다 시키셨거든.”
“호호호. 그랬을 것 같아. 우리 이름은 모두 엄마들이 이름을 지었네. 넌 엄마하고 친했니? 난 엄마하고 맨날 티격태격해서 조용할 때가 없었어.”
“넌 엄마하고 정말 친했구나.”
“어딜 보고 친했다고 생각하는데?”
“티격태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친하니깐 가능한 거잖아. 난 엄마한테 혼나지 않으면 무심하게 방치되었어. 너처럼 엄마와 티격태격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꿨어. 그래서인지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없어.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와 딸이 함께 보낸 시간이 없어서 공유할 추억이 없다는 것은 진짜 슬픈 일이더라. 엄마 대신 먼 친척뻘 되시는 아줌마와 아저씨가 가깝게 살아서 그분들과 더 친하게 지냈었어.”
“이외인데. 넌 엄마하고 친하게 지낸 줄 알았어.”
“엄마 대신 아줌마가 보모 역할을 해 주셨어. 그분들은 자식이 없어서 나를 친딸처럼 이뻐해 주셨거든. 그래서 내가 이만큼 잘 자랄 수 있었던 건지도 몰라.”
“다행이다. 그런 분들이 가까이 계셔서 말이지.”
“그렇게 말을 해줘서 고마워. 난 아까 사모님과 딸을 보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도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어. 엄마가 된 숫자만큼 다양한 엄마가 존재하는 거겠지.”
“난 평상시 사모님과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어. 사모님 혼자 왔을 때랑은 너무 다르니깐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사모님은 딸한테 너무 잘해 주는 것이 지나쳐서 딸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었잖아.”
“그래도 난 사모님 딸이 부럽더라. ‘사모님 딸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거든. 내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서 그랬나 봐. 나와는 반대로 사모님 딸은 일거수일투족 간섭받아서 자유는 없었을 것 같긴 해.”
“암만 그래도 난 싫어. 결국엔 딸을 사모님 맘대로 했잖아. 돈이 많아서 풍족한 생활이야 하겠지만 자유가 없잖아. 하기 싫은 공부인데도 유학 보낸 것을 봐 봐. 난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좋아.”
“나도 그렇긴 해. 미용을 배울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 그래서 행복해. 나중에 우리도 엄마가 될 텐데 넌 어떤 엄마가 되고 싶니?”
“난 이다음에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는다면 사랑해 주고 이뻐해 주되 혼낼 때는 따끔하게 혼내줄 거야.”
“호호호. 넌 분명히 그런 엄마가 될 거야.”
“그러는 너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데?”
“난 차별하지 않고 아이와 눈 맞춤해 주는 그런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어.”
소화와 민아는 늦은 밤이 지나서 새벽이 되기까지 수다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