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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11. 2019

일본인인 듯, 일본인 아닌, 일본인 같은 오키나와인

우치난추(오키나와인)와 야마톤추(일본본토인)


 일본인인 듯, 일본인 아닌, 일본인 같은 오키나와인


 아침에 눈을 뜨니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팔베개를 한 채 빗소리를 들었다. 백색 소음들은 언제나 정겹다. 아침을 굶고 11시 넘어 여관 옆의 식당에서 이른 점심으로 또 고야 찬푸르를 먹었다. 오키나와에 와서는 계속 찬 푸르, 찬푸르다. 찬푸르는 인도네시아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야채, 계란, 소시지 등에 고야가 들어가면 고야 찬푸르, 두부가 많이 들어가면 도후 찬푸르 등으로 불린다. 오키나와 소바만큼 오키나와 사람들이 주로 먹는 음식이다.




 1958년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음식점은 텔레비전에도 소개되었는지 사진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주로 일본인들만 들어오는 곳인데, 유명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어떤 정식에든 먼저 제공되는 회 몇 점 때문인 것 같았다. 회는 두터웠고 고야는 약간 썼지만 웰빙 푸드란 느낌이 들었다.








 근교로 나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라 거리를 거닐기로 했다. 우연히 국제거리의 어느 커피관(咖啡館)에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다. 아기자기한 목조 인테리어 사이에 기념품들이 전시된 좁고 아늑한 카페였다. 이른 시간인지 손님이 없었다. 창가에 앉았다. 메뉴판에 적힌 부쿠부쿠 차와 부쿠부쿠 커피 등의 그림이 특이했다. 부쿠부쿠 차는 원래 류큐 왕국 전통차로서 쌀뜨물에 재스민 차를 섞어 거품을 낸 것이며, 부쿠부쿠 커피는 커피콩 울금, 계피를 원료로 만든 커피라는 ‘한글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부쿠부쿠 커피를 시켰다. 잠시 후 나온 커피 찻잔 위로 산 봉우리 같은 거품이 솟아올라 있었다. 거품은 싱거웠다. 라테 같은 우유 거품이 아니라 정말 쌀뜨물 같은 거품이었다. 맛은 없어도 보기는 좋았다. 커피는 약간 쓰면서도 고소하고 달았다. 묘한 맛이었다. 탕약을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보다도 그것을 가져온 젊은 여인에게 더 호기심이 갔다. 오키나와 현지인, 즉 우치난추일까? 그러나 함부로 물어볼 수 없다. 만약 일본 본토에서 온 사람이라면, 이런 구분이 별로 기분 좋지 않을 것이다. 내 자리에서 카운터까지는 가까웠고 아무도 없었기에 용기를 내어 물었다. 다행히 여인은 영어를 잘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요,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여인은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당신은 우치난추입니까?” 

 여인의 얼굴에 웃음기가 확 퍼졌다.

 “네, 나는 우치난추입니다.”

 그녀는 자기 정체성을 알아주는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밝은 미소를 띠었다.





 그녀에게 야마톤추(일본 본토인)와 우치난추의 차이점을 물어보자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우치난추, 즉 오키나와인은 짙은 눈썹, 쌍꺼풀 진 큰 눈, 윤곽이 뚜렷한 얼굴 등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여인의 얼굴이 약간 그런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외모보다도 활달하고 친절한 태도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녀에게 내 사진을 부탁하자 한국어로 ‘하나, 둘, 셋’ 하면서 찍어주었다. 그녀는 ‘케이 팝’을 좋아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노트북에 썼다. 창밖을 내려다보니 빗줄기 속에 잠긴 국제거리는 알록달록한 우산들로 가득 찼다. 부드러운 재즈 음악을 타고 글이 샘물처럼 퐁퐁 솟구쳐 올랐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손님들 몇 명이 들어왔고 진한 카레 냄새가 주방에서 풍겨왔다. 잠시 후 또 몇 명이 들어왔다. 두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있기가 미안해서 나왔다. 그 후 오다가다 이곳에 들러 부쿠부쿠 차와 커피를 마셨고, 맛있다는 해물 카레도 먹었다. 이곳은 다음에 오면 꼭 들러 봐야 할 나만의 여행지가 되었다.     


 오키나와인들의 존재는 묘하다. 일본인인 듯, 일본인 아닌, 일본인 같은 존재다. 140여 년 전까지 류큐 왕국에서 살았던 오키나와 인들은 자신들을 ‘우치난추’라 부르고, 일본 본토에서 온 사람들을 ‘야마톤추’라고 구별한다. 물론, 오키나와 사람들과 일본인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다. 얼핏 보면 우선 얼굴이 비슷하다. 그리고 언어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한다. 일본인 학자들은 오키나와(류큐) 말과 일본말은 3세기에서 6세기경에 갈라져서 전혀 뜻이 통하지 않지만 기본 단어, 음운, 문장 구성, 문법 등이 일본어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대 일본어와는 크게 다른 점은 음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키나와 중부, 남부 말은 16세기 무렵에 현재 일본어의 있는 아, 이, 우, 에, 오 등 다섯 가지 모음 중에서 에가 이로, 오가 우로 변했다. 즉 쌀이라는 뜻의 고메는 구미로, 비의 아메는 아미로, 마음의 고코로는 구쿠루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모음 변화는 자음에까지 영향을 미쳐 ‘케’는 ‘키’가 되어서 사케가 사키로 변하고, 또 ‘키’가 치로 변해서 때를 나타내는 말 ‘도키’는 ‘두치’가 되었다. ‘오키나와’를 ‘우치나’로 발음하는 것도 이런 예에 속한다고 한다. 그 우치나에서 유래되어 오키나와 사람을 우치난추, 일본 본토 사람을 야마톤추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한국인도 일본인과 인종으로나, 언어로나 비슷하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가 비슷하고 세월 속에서 갈라지면서 현재의 한국인, 일본인이 형성된 것 아닌가? 그렇다고 한국인과 일본인을 같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오키나와인을 일본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키나와는 나중에 조금 더 이야기하겠지만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중국과 더 가까웠다. 오키나와가 일본인화된 것은 약 450년간 존재하던 류큐 왕국이 1879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되면서, ‘오키나와현’이 되고 난 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오키나와인 언어, 문화가 모두 급격하게 일본화되었고, 일본인인 듯, 일본인 아닌, 일본인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나는 야마톤추와 우치난추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없었다. 골격이 매우 커서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들을 연상시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본인과 비슷해 보였다. 또한 오키나와에는 일본 본토에서 온 사람들, 혼혈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외국 노동자들도 뒤섞여 있다 보니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다.

 다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일본 본토 사람들과 달랐다. 한적해서인지 사람들이 느긋했고 순박하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과도하게 친절하지 않으면서도 따스한 마음씨들이 보였다. 물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사람들도 어쩌다 만났지만.



이것과 관련된 1인 팟캐스트 방송은 아래를 클릭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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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읽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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