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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24. 2019

준비한 퇴사와 충동적인 퇴사

어느 것이 더 나을까?

 퇴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앞뒤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뭔가를 배우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경험을 들어가면서 은밀하게?

 인생 자체가 계약직이고, 그냥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결정할 순간이 오면 두렵다.

 

 어떤 사람들이 퇴사를 한 후,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까?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인데 은밀하게 준비한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나도 그런 예를 안다. 10여 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퇴사를 한 후, 3년 정도의 여행을 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여행하기 전 나에게 여행작가 강의를 들었고, 농사에 관한 꾸준한 공부를 했다. 그는 웹 디자이너로서 농사와 무관한 사람이었지만 인생 후반부에는 농사를 짓고 싶다는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는 인터넷과 농사를 연결 짓고 싶어 했다. 아내 역시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친정집 부모가 농사꾼이었다. 하여 두 사람은 다방면으로 준비했다. 여행 떠나기 전 여행기를 쓸 생각도 했고, 농사지을 땅도 알아보았고, 여행도 농사에 관련된 곳, 즉 농장에서 일하며 배울 수 있는 루트를 짰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길을 갔다. 미리 전 세계의 농장과 이메일로 의견을 나누고 숙식을 제공받았기에 여비도 줄일 수 있었다.  농장에서 일만 한 것은 아니었다. 농장을 거점으로 움직였지만  3년여의 세월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며 여행의 즐거움도 만끽하며 풍부한 인생 경험도 쌓았다.

 그리고 돌아와 그들은 드디어 농사를 시작했다. 특용작물을 했는데 잘된다고 했다. 그 지혜와 아이디어는 전 세계 농장을 돌면서 경험하는 가운데 얻은 아이디어였다. 다만 여행기는 쓰지 않았다. 여행기에 관한 강의를 듣던 그에게 내가 도움을 준 것은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여행기 한 권 써서 '떼 돈' 벌 생각을 버리라는 이야기 정도 아니었을까?(혹시라도 그런 마음으로 세계일주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그는 준비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선명하게 잡아내고 실행할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찌 희망만 있었을까? 10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떠난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가족들은 다 걱정했을 것이다. 지나고 나면 다 인정해주지만 하기 전에는 다 우려한다. 그래도 그들의 젊음과 직장 생활의 피로함과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새로운 모험을 하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과 달리 충동적으로, 무대책으로, 일단 저지르고 보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나다. 첫 번째 이야기에 자세하게 썼기에 생략하지만 세계 여행은 학창 시절부터 꿈꿔왔던 일이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여행이었고, 그냥 여행이 아니라 배낭 하나 메고 자유롭게 훨훨 떠도는 그런 여행이어야만 했다. 안정되고 안락한 삶이 목표가 아니라 그런 여행이 첫 번째 목적이었기에 나는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여행작가, 여행가, 배낭 여행사 등이 없던 시절, 1988년도의 일이었다. 막막했지만 '자유로운' 여행과 삶 앞에서 나는 뭔가에 홀린 소년과도 같았다.


 물론, 그 시절 기자 생활을 하거나 사진을 찍던 이들 그리고 비즈니스적인 감각을 갖고 있던 이들 중에는 발 빠르게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다. 90년대 초반, 그때는 인터넷이 아니라 출판, 잡지, 책들이 대세였다. 그런 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그 생리를 잘 알았기에 여행도, 글도 거기에 맞췄다. 당연히 생산성이 높을 수밖에. 지역도 그 시절에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유럽이나 동남아 등을 많이 다루었고, 신문, 잡지, 방송 활동을 부지런히 했다. 그런 이들이 여행산업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에서 원하는 트렌드에 맞춰 활동을 많이 하니까 당연히 많이 알려지게 된다. 그 후 점점 다변화되고, 깊이 있게 여행하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초기에는 그랬다.

 나는 그런 주류가 아니었다. 인도에 빠져서 9개월 정도,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 끝까지 가느라 또 그 정도... 그렇게 장기 여행을 하고 온 후, 어쩌다 신문, 잡지에 글을 쓰긴 했지만, 돈 생기면 또 몇 개월씩 여행을 떠나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유럽, 일본 등의 인기 지역도 여행했었지만 내가 다니던 곳은 그리 인기 있는, 대중화된 지역이 아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 2000년 대 초반에 간 아프리카나 시베리아 횡단도 인기 있는 지역이 아니었고, 또 간 곳을 계속 반복해서 가는 형태였다. 그렇게 여행만 계속하다 보니 글을 쓰거나 활동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냥 붕 떠서 여행만 했지. 그러다 부모님 병간호하는 가운데 정신없이 살았고, 아버지 돌아가신 후, 40대 초반부터 책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글을 배운 것도 없고, 출판계도 잘 모르니 모든 게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정말 정신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완전한 무대책 같지만 그건 아니었다. 여행 마치고 돌아올 때쯤 되면 걱정이 되었다. 돌아가서 뭘 해 먹고살지? 돈을 어떻게 벌지?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 거지? 왜 걱정이 없었겠나. 너무 걱정이 되어서 여행 마치고 돌아올 무렵에는 늘 우울했다. 부모님과 같이 사니 먹고, 사는 것이야 신세를 진다 해도 막막했다. 정착이나 안정된 삶을 원한 것은 아니었고 다시 여행을 떠나려니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막막한 거라...  (쓰다 보니 다음 이야기는 '돈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이드북' 쓰기였다. 그 시절 배낭여행 가이드북이 별로 없었다. 일본 것을 번역한 책들 이외에는 쓸모가 없었고, 그 번역책들도 철 지난 것들이라 많이 틀렸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북은 '론리 플래닛'이었는데 그것은 영어책이었다. 그러니 유혹이 일었다. 그래서 써보기도 했다. 2, 3개월 간의 대만 여행 경험을 갖고 가이드북 원고도 썼고, 목돈 주고 팔기도 했지만 출판사 사정으로 책이 나오지 않았다. 89년도 무렵이었다.  90년대 초반, 중국 가이드북은 후배들과 같이 썼지만 또 팔리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충동적으로 했거나, 누군가의 제의에 의해서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즉 무계획과 무대책으로 시작했고, 중간에 또 머리를 굴리며 살 궁리를 하다가, 그것이 마음대로 안되어서 방황하다가, 또 여행 떠났다가 들어오고... 그러는 가운데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고,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허둥지둥거리고, 여차저차 하다가 결혼을 하고, 책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계속 이런 과정이었다. 무계획으로 살다가  궁리하며 뭔가를 하고,  또 무대책으로 살다가 다시 삶이 곤궁해지면 계획을 짜 보고... 계속 이것의 반복이었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삶이 아니어서 갈등과 고통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쓸 거리가 많다.


 퇴사를 방금 한 이들은 우선은 달콤하다. 모든 게 다 내 세상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며 벌어 놓은 돈이 어느 정도 있을 테니. 앞날이야 어찌 되든. 그만큼 힘들게 살았기에 쉴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돈이 떨어지고 나서부터지.  돌아와서  계약직이든, 알바든 돈을 벌만하면 그런대로 마음이 편하다. 특히 젊다면. 또 떠날 수 있는 형편이 어느 정도 된다면.  그런데 돈을 벌기 힘들거나, 가족 환경이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면 삶이 만만치 않다.


 어찌 보면 퇴사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 길게 보면 이 길을 가나, 저 길 을 가나 비슷하다. 30대 때 나는 떠났고, 내 친구들은 직장에서 일했다. 서로 다른 길을 갔던 우리들이 이제 은퇴한 후, 한 곳에서 모인다. 프리랜서의 삶에도 은퇴가 있다. 나이 들면 점점 밀려난다. 

 결국, 서로의 경험이 다를 뿐 비슷한 곳에서 만난다. 그러니 퇴사를 하고 다른 직장을 갖든, 다른 사업을 하든, 준비를 하든, 준비를 하지 않든... 긴 관점에서 보면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직장 생활이라고 편한가? 과로사로 죽는 사람들도 있다. 스트레스받아 병 얻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인간관계가 너무너무 싫어서 하루하루가 숨 막힌다면, 젠장 앞뒤 생각 없이 나와야지. 우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숨을 쉬어야 하지. 물에 빠져 헐떡 거리면 일단 빠져나와서 숨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살 궁리를 하면 또 길이 보인다. 마음만 잘 잡는다면.

 그런데 참을만하면 참는 것도 좋지 않을까? 퇴사를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나? 똑같은 고민이 윤회처럼 반복된다. 그 고민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비슷하다. 참는 것도 용기다. 가족을 위해서 인내하며 후일을 기약하는 것도 큰 용기다. 또 세상 일의 갈등의 원인에는 남 탓도 있겠지만 자기 탓도 있다. 자기 성격, 자기 결점도 돌아보면서 수행하듯이 사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런데 그 판단은 누가 대신 해주지 않는다. 결국 자기가 하는 거지. 이 길을 가든, 저 길 을 가든 각자의 상황에 맞춰 자신이 결정하는 수밖에.


 퇴사한 후, 행복하고 달콤하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 보면 조마조마하다. 그거 다 한 때다. 그러나 한 때 아닌 게 또 어디 있는가?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다 나온 사람들은 그럴 권리가 있다.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열심히 일할지도 모른다. 쉬고 나면 힘이 솟는다. 고령화 사회다. 인생은 길다. 좀 쉬었다 가는 것도 지혜다. 


 반면에 퇴사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열심히 땀 흘리고 인내한 만큼 달콤한 열매가 뒤에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굉장한 것이 아니라 소박함 속에서 누리는 행복. 물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회의감도 생기지만,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찾아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그거 또 고민하면서 궁리하고 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이 건강이다. 이 길을 가든, 저 길 을 가든 건강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물론 그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확률이다. 운이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니, 너무 훗날 생각하지 말고 그때그때, 형편 되는 대로 쉬고, 즐기고, 놀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 물론 돈 벌어야지. 열심히 살아야지. 다음엔 돈 이야기다.


(약간 다른 방식으로 풀어간 팟빵 이야긱는 아래를 클릭하면 육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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