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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26. 2019

퇴사의 심리

퇴사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돈에 대해서 먼저 쓰려다가 먼저 '퇴사 심리'가 생각났다.

 왜 들어가기 힘든 직장인데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나도 30년 전에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지만 묘한 일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하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말도 있듯이 사람 마음은 늘 변한다.

 나는 첫 번째 직장에 들어갔다가 4개월 만에 나왔었고, 절간에 들어가 무슨 시험공부 몇 개월 하다가 떨어진 후,  다시 회사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2년 반 만에 나온 후 여행을 떠났고 그 후 다시 조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직장 다닐 때 얘기다. 나보다 2년 정도 먼저 직장 생활을 하던 친구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국에서는 한 직장을 오래 다니는 것이 미덕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사람을 무능하게 본대. 여러 번 옮기면서 자기 몸값 올리면서 산다는데..."

 1986 년쯤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나는 내 몸값을 올리려고 퇴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첫 번 째 직장에서는 일이 잘 안 맞았고 인간관계도 안 좋았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그런대로 버텼다. 답답해도 이제 나가면 더 이상 취직할 곳도 없었으며, 또 괜찮은 대기업이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다스리며 적응했다. 그러나 언젠가 여행을 떠나겠다는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자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결국 퇴사를 했다.


 나의 퇴사 심리는 요즘 퇴사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같을까? 다를까?  잘 모르겠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 다르지 않겠는가?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일이 너무 고되고 지쳐서, 보수가 적어서, 보람이나 의미를 찾지 못해 하루하루가 지겨워서, 인간관계나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혹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서 등등 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퇴사 심리 중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구체적인 이유는 달라도 모두들  '나'라는 개인 의식이 매우 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옛날처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느니, 조직 문화에 개인을 맞추라느니,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느니, 부조리한 상황에 눈감거나, 권력과 부패와 모순 앞에 머리를 수그리는 행위를 치욕스럽게 생각한다는 것.


 퇴사하는 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의 문화가 그런 게 아닐까? 전후 세대의 우리처럼  학교에서 개처럼 맞아가며 크지도 않았고, 형이나 언니 옷을 이어받아 입지도 않았고,  만날 조국과 민족을 외치는 구호 같은 것도 듣지 않은 채 개인,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정의... 이런 가치를 교육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거기다 집집마다 아이들도 많지 않으니 예전처럼 험하게 자라지는 않았을 것 같다.(아닌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렇게 자랐는데 옛날의 흔적이 아직도 짙게 밴 회사, 조직 문화 속에 들어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옛날 사람들은 '뭐, 그런 것 갖고 그래. 우리 때는 말이야...' 하겠지만, 젊은이들은 분노할 수도 있다. 치욕스럽게 느낄 수도 있고, 답답해서 미칠 수도 있다. 옛날과 다른 교육을 받았고, 옛날과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 사람이지만 마치 서양 사람이 한국 조직 문화에 적응 못하듯이... 다른 것이다.. 

 뭐, 자세한 것을 몰라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추측건대 그렇다. 국가 기관이든 회사든 조직은 개인의 변화나 전체 세상의 흐름을 잘 못 따라가는 것 같다.


 또 하나의 이유는 어린 시절, 학창 시절부터 젊은이들이 너무 억눌려서 살아왔다는 것.

 물론, 우리 때처럼 굶는 아이가 많거나, 개처럼 맞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편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우리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과외 공부를 하지 않았고,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들판에서 뛰어놀았고, 학창 시절에 일탈도 좀 하면서 자유를 누렸다. 어른들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만날 만화방에 가고, 딱지치기하고, 구슬치기 하고, 절벽을 기어오르며 전쟁놀이를 하고, 돌멩이를 던지며 싸움을 하고, 동네 패싸움을 벌이고, 눈 속에 똥을 넣어 눈싸움을 하고, 들판에 불을 지르고, 한강에서 수영을 하고 (그러다 종종 죽는 아이들 나왔다), 사촌 형들 고등학생만 되면 한강을 헤엄쳐서 건너는 게 통과의례였고... 고등학교 때는 연례행사로 옆 고등학교와 거대한 패싸움을 벌여 경찰서에 잡혀 가고... 아마 부모들이 그것을 알았다면 다 까무러쳤을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자기들만의 세계가 있었다. 거기서 숨통을 틔웠다. 

 그런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학교, 부모, 학원으로부터 관리되고 사육된다. 어린 시절부터 궤도 속에 갇혀서 경쟁한다. 그 답답함 속에서 그들이 도피할 곳은 게임, 휴대폰, 마약, 은밀한 폭력... 그런 것 아닐까?


 프랑스의 인류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질베르 뒤랑에 의하면 인간 안에는 세 가지 성향이 있다. 그는 신화적인 방법으로 분류하는데 하나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성향이다. 프로메테우스 신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신으로, 이 신은 도전, 경쟁, 신기술, 생산성, 효율성... 그런 것을 상징한다. 

  또 하나는 디오니소스적인 성향이다. 디오니소스 신은 술과 광기의 신이다. 그러므로 이 성향은 광기, 뒤섞임, 혼란, 파괴를 상징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헤르메스적인 성향이다. 헤르메스 신은 제우스신의 전령인데 인간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는 모호하게 한다. 인간들이 알아서 해석하라는 것. 여기서 해석학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런 성향은 연결, 공존, 사유, 성찰을 의미한다.

 즉 인간에게는 도전하고 경쟁하는 성향과 광기, 파괴, 뒤섞임의 성향 그리고 연결, 사유, 성찰의 성향 등 세 가지가 함께 있는데, 어느 하나가 과도하게 지배하면 불균형 속에서 미친다는 것.


 너무 공부, 경쟁, 생산성... 이런 것을 강조하면 어느 순간 그것에 반발해서 광기, 파괴의 성향이 튀어나온다. 그것이 한참 진행되다 보면 차차 이렇게 살면 안 되지, 하는 반성, 성찰, 사유도 나오고, 또 만날 사유, 성찰만 하고 있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면, 어느 순간 일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고, 경쟁하고 싶어 진다는 것.

 그렇지 않은가? 개인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런 현상은 순환되면서 발현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근대사회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성향이 과도하게 지배한 사회였다. 도전, 극기, 근면, 성실, 생산성, 효율성이 강조되었다면, 이제 탈근대 사회 즉 현대 사회에서는 파괴, 광기, 혼란의 측면이 보인다. 휩쓸림 현상도 그런 관점에서 파악된다. 그런가 하면 인문학적 성찰을 강조하는 외침도 또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젊은이들의 '퇴사 심리'는 긴 경쟁, 억압, 사육되는 상황에서 이제 지쳤다는 이야기다. 긴 학창 시절이 끝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또 학점 관리,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니 이건 무한경쟁... 지친 것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이다. 거기다 고령화 사회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라고... 은퇴해서도 일하라고 한다. 평생 일만 하다 죽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다.


 약 20년 전, 인도에서 만난 여학생이 생각난다. 대학교 2학년이던가 3학년이던가? 두 달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다는데 릭샤꾼하고 요금 흥정을 거칠게 하면서 자기 뜻을 관철시켰다. 터프 걸이었다. 자신이 넘쳐흘렀다. 인도 여행이 어떠냐고 물으니 '너무 좋았다'라고 했다.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나는 인도 여행 다섯 번 째였는데 처음 1990년도에 인도를 여행했을 때는 인도, 네팔, 스리랑카를 9개월 정도 했었다.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적응하기에 약 3, 4개월이 걸렸다.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거지, 사기꾼 등등... 물론, 나는 그 후에 인도를 너무 좋아하는 마니아가 되어서 인도를 모두 일곱 차례 여행했지만 처음 3, 4 개월은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2개월 정도 여행했는데 좋다고? 허세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 여학생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얼굴에 생기가 넘쳐흘렀다. 또 다른 여학생들은 손에 헤나를 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헤나는 약 2주일 후면 없어지니까 이런 것, 저런 것 다 해보고 있었다. 소가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낙타가 거리를 걷고, 원숭이가 식당에서 사과를 뺏어가는 그런 엉망진창 상황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 숨통이 트인다는 것. 그런 디오니소스적인 상황을 즐기고, 또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가운데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각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도도 요즘 옛날 같지 않다. 온갖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도 돈맛을 알고 근대화되면서 점점 난폭해지는 경향도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늘 하는 이야기지만 모든 인도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젊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학창 시절에 빼앗겼던 자신들의 세계, 모험의 세계, 디오니소스, 헤르메스의 세계를 인도에 와서 맛보고 있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적인 성향에 짓눌러 있던 그 성향들이 인도에 와서 솟구치며 해방감, 쾌감을 맛보고 있던 것이다.

 마치 한참 산업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 70년대의 서양, 일본 젊은이들이 히피 차림을 하고 인도, 동남아를 떠돌았던 것처럼, 이제 몇십 년 뒤늦게 우리 젊은이들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숨이 막혀서. 


 너무 거창한 해석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요인은 분명히 될 것이다. 

 회사, 조직의 부조리, 모순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건 너무 지엽적이다. 옛날에는 그런 것이 더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감지덕지 잘 다녔다. 많은 나이 든 사람들이 그랬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서이기도 했지만 학창 시절이 그리 조이지 않았기에 직장에 다닐 힘이 남아 있었다. 또 업무 강도도 요즘처럼 세지 않았고 조직문화와 가정, 사회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아 그런대로 적응해 갔다.

 결국, 회사 못지않게  사람들의 심리가 더 큰 요인이 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살아온 전체 삶과 사회를 보면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보인다. 그런 구조, 환경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퇴사를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회사 잘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분명히 개인차는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억압된 그런 본능을 자기 나름대로 잘 풀고, 즐기면서 잘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친 젊은이들, 억압받는 젊은이들이 여행을 떠나고, 잠시 자신에게 자유의 시간을 주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본다. 잘만 그 시간을 보낸다면. 

 인생 길다. 고령화 시대다. 후반부를 잘 살기 위해서도 적절한 시간에 재충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다가는 미쳐 돌아버리거나 과로사한다.  우선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 퇴사한다면 당분간 좀 놀고먹을 돈은 준비해놓고 하는 것이 좋다. 쉬고, 놀지 못한 채 초조해서 금방 다른 직장에 들어가면 또 금방 지치고 그만두고 싶어 진다. 심리가 그렇다.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삶이 전개되고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러니 이왕 퇴사하면, 자신에게 긴 휴가를 주는 것도 괜찮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퇴사하고 놀 때도 돈이 필요하고, 다시 긴 인생을 살기 위해서도 또 돈이 필요하다. 자유도 좋고 성찰도 좋고 여행도 좋지만, 돈 떨어지고 나면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퇴사 후 30년째 그런 길을 걸어오면서 톡톡히 그 서러움과 고민을 맛보았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설픈 히피 흉내를 내는 사람들을 받아주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충전 후,  다시 살아갈 방도를 생각해야 한다.  

 젊은 시절 너무 놀면 늙어서 고생한다.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야무지지 않으면 한 방에 훅 갈 수가 있다. 

 조직을 나오면 더욱 그렇다.



(1인 방송도 하고 있습니다. 이글에 대한 저의 육성은 아래 팟빵으로 가시면 됩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말로 하니 또 조금 다르네요.)


http://www.podbbang.com/ch/177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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