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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28. 2019

퇴사 후, 프리랜서의 삶이란?

퇴사 후, 살아가는 방식들

  

 예전에 20대 후반의 여성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떠날 때, 만나서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가 뭘까? 

멋진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돈’ 이야기였다. 여행을 할 때든, 돌아와서든 돈이 중요하다고. 


 그런데 어쩌면 쓸데없는 말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그런 것을 이미 잘 터득했었던 것 같다. 그 후, 그녀는 여행하면서 알바를 했고, 돈을 벌어가며 야무지게 여행했고, 돌아와서도 나름대로 직업을 창출하고, 또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잘 살아가고 있다. 안정된 직장은 아니지만 프리랜서로서 자기의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가끔 여행도 하고, 요가로 건강을 다지고, 새로운 언어 공부도 해가며 잘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안정된 직장, 노후를 생각하면 어른들은 불안해하겠지만 요즘에 안정된 게 있기나 한 건가?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 지금, 당장 건강하고 자기 삶을 잘 유지하는 사람은, 또 그때 가서 잘 해결해 나가며 살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어떤 젊은 친구는 번듯한 회사에 다니다 그만둔 후, 부부가 세계 일주를 했고, 돌아와 남편은 알바를 하고, 아내는 명상을 지도하고, 자기네 동네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남편은 가끔 예전에 하던 일을 알바로 뛰기도 하는데 돈은 많이 못 벌지만 그런대로 살고 있다.

     

 어떤 젊은 친구는 미대 졸업생인데 나에게 여행 에세이 쓰는 것을 배우고 싶어서 찾아왔었다. 사진과 에세이를 결합시키고 싶어 했다. 그때 그런 게 유행했으니까. 그때 내가 말했다. 

 “아니 이제, 그런 것은 한 물 가고 그림이 뜰 텐데, 왜 사진을 하려고 해요. 전공을 그냥 살리세요!”

 그 후 그는 미술에 더 집중하여 지금은 사람들을 모집해서 드로잉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가끔 여행 떠나고, 지금은 드로잉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중년 여성은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는데 잘 안 풀려서 우울했다. 그러다 여행기를 썼는데 책이 많이 팔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살렸고, 지리산에 게스트 하우스를 냈다. 모든 게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막연한 생각, 방향은 있었지만 우연과 충동에 의해서 시도했는데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다. 결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꿈, 열정 혹은 막막함 속에서 헤쳐 나가는 행위, 인연... 이런 것들에 의해서 전개된 것이다.     


 어떤 여성은 다니던 직장이 너무 팍팍해서 화가 났다. 그러다 코익카를 신청해서 뽑혔다. 얼마나 좋았는지 나에게 연락해서 술을 살 정도였다. 나도 축하를 하며 2차를 샀었다. 방글라데시에 가서 코익카 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그만두고 돌아왔는데 곧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어서 할머니가 또 돌아가셨다. 슬픔을 딛고 일어나 다시 코익카에 신청해서 미얀마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돌아와 그때의 경험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   

   

 어떤 남성은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 그리고 돌아와 또 알바를 하다가 돈을 모아 지금도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 아직 젊고 건강하다. 히피 흉내는 내는 게 아니라 힘들게 트레킹 하고, 돈 아껴 가며 여행하고 있다. 그가 부리는 사치라면 세계의 맥주 마시기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림을 배워서 다니며 틈틈이 드로잉을 하고 있다. 돈은 어디서 나냐고 사람들이 묻자 “뭐,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큼... 하하하.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어떤 여성은 집을 나와 홀로 제주도로 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해 주며 경험을 쌓다가, 홀로 집을 얻어 살면서 방 하나를 게스트 하우스로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직장도 얻고... 다른 일도 배우고, 그렇게 자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여성은 제주도에서 살며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핸드메이드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여성은 원숭이 사육사가 되는 게 꿈이어서, 그곳에 가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호주로 가서 알바를 했다. 그러다 여행사 가이드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 여행자 카페를 만들어 운영을 했다. 그리고 어떤 남성이 그 카페에 들락날락거리다 그 카페의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어느 날 카페 주인인 여성이 종업원 남성에게 그 카페를 넘겼다. 그리고 둘은 카페를 하면서 여행 인솔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남성을 따라다니던 어떤 후배 남성은 선배의 권유에 의해 태국을 여행했다가 그만 여차저차 해서, 태국 여행사에서 일하던 태국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했고, 애를 둘이나 낳았다. 그가 하는 일은 장인어른 밑에서 요리를 배우고, 식당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애를 보는 것. 그의 인생이 그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나도 그를 아는데,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아이를 안고 밥을 먹는 그를 거리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이런 우연이라니...

            

 또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나라 혹은 도시에 대한 가이드북을 쓴 후, 가꿔 나가는 사람

 주부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가 공부한 언어의 나라에 대한 가이드북, 여행기를 쓰며 계속 공부해나가는 사람... 


 나는 사회 생활을 하지 않지만,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대개는 상상마당에서 나에게 여행 작가 강의를 들으러 왔던 사람들이고, 이웃 블로거도 있다. 책을 낸 사람들도 있지만, 책을 내지 않고 자기 삶을 다른 방식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물론, 다른 직장을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 내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람들은 프리랜서들이다. 혹은 자기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이 뭘까? 나는 공통점을 본다.


 겸손하고 소박하다는 것이다. 헛된 야망을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럴싸 한 것, 화려한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재능을 이용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의 재능 한도 내에서 묵묵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막막한 미래지만 그것을 너무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세상 탓하며 에너지를 그런데 낭비하지 않고 지금, 뭔가를 하며 버텨나가는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꿈을 키워 나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성공 모델’이라는 것이 아니다. 성공이라 할 수도 없다. 나는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긴 세월을 버텨 나가야 할 그들이 애잔하다. 안쓰럽다. 나 역시 그렇고. 앞날은 누구나 예측 불허다. 안전하지 않다. 불안하다. 노후 생각하면, 갑자기 닥쳐들 병 생각하면, 또 집안 걱정하면 우리는 다 위태로운 것이다.


 그러나 다만, 살기 위해 현재를 노력하고 뭔가 궁리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바닥에서부터 실천하고 있다.

 한때 나에게 뭔가를 배우려고 온 사람들로부터 이제 오히려 내가 배운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돈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나는 그런 것에 둔하다. 

 그리고 ‘아, 이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해서 돈을 버니, 이렇게 해보시라'고 권유를 하지 못하겠다. 

    

 그냥, 지금 자기가 해오던 것, 옆에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프리랜서란 것은 아이디어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삶 속에서, 자기가 하던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찾아보며 한 걸음씩 넓혀 나가는 것이다. 마음 낮추고 자기 수양하면서. 그리고 갈등과 고통을 묵묵히 참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뭔가 조금씩 형성되는 것이다.

     

 지금 나름대로 뭔가를 싹을 틔우고 있는 그들의 갈등, 고통 이야기하면 또 많이 나온다. 그것은 삶의 ‘기본양념’이다. 누구나 다 그런 것을 겪는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직장 생활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하면 다 자유롭고 달콤할 것 같지만 그런 것 없다. 이 세상에는 결코 그런 것 없다. 직장 생활 때보다 더 한 고통, 수모, 갈등, 생계의 막막함이 다가온다.     

 그런데 프리랜서 생활이 딱 한 가지 좋은 게 있다. 자유다. 어쨌든 자유다. 그리고 고통, 갈등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시간이 가면 자기 삶을 책임지는 원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음 잘 쓰고 태도를 바르게 해야 된다. 그렇지 않은면 '사'자 냄새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기꾼 말이다.

    

 어차피 우리 삶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어떤 법칙이 분명히 있으면서도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 어디로 튕길지 모른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냥 하늘에 맡기고 되어가는 대로 현재를 열심히 궁리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어떤 운명이 닥쳐와도 다 가슴에 안고 가겠다는 마음, 그게 필요해진다.

     

그때, 자기 삶을 뻑적지근하게 사는 느낌이 든다. 

프리랜서의 좋은 점은 그런 것 같다. 그 외에는 많이 외롭고, 힘든 길이다.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점. 크리스 쉔의 '위상 공간'이란 작품)


작가는 로봇 청소 공(구슬처럼 보이는 것)들을  

우주공간에서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입자로 본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저 구슬처럼 보이는 것들이 우리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닥쳐온 사건, 사람, 인연에 의해서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는 인생.


그걸 누가 예측하랴.


하나의 구슬을 계속 보았다. 부딪치는 가운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구슬은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그 구슬의 궤적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궤도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우리도 사실은 그런 것 아닐까?

전쟁이나 혼란기에는 그것이 확 드러나지만 평화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런 면이 보인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되 

내 인생 어디로 가든 다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도 필요한 것 같다.

그게 인생이니까.


특히 프리랜서들에게는.




이것과 관련된 1인 방송은 팟빵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0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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