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잠을 잤어. 하루 이틀만 그런게 아닌, 두 달 동안을.
언제 쯤에야 깊은 잠에 들 수 있을까. 아니, 깊은 잠이란게 정말 있긴 한 걸까.
오늘 저녁엔 죽음과 구조를 노래하는 시를 읽었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그렇듯 희망이 담긴 글 들을 읽겠지.
그러고 다시, 눈꺼풀은 무거운데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
그리고 다시, 스스로를 고통에 몰아넣을거야.
사실. 실질적인 문제는 이제 다 지나갔어.
더는 괴로울 이유도 없는데 - 이 선잠이 익숙해진걸까.
커피를 마시는 건 고통의 유예일까.
잠시라도 각성상태를 유지할 수 있거든.
고통에서 벗어날 노력은 하는지.
(눈을 감는다.)
2.
그 대화, 기억나?
우리 둘 다 박애주의자일지 모른다고 고백했잖아.
그건 어쩌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어.
줘야 할 사랑이 너무 많으면
받아야 할 사랑이 모자라거든.
요즘도 많은 선물들을 받아.
내가 생각보다 괜찮게 살았더라고 .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줘.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사랑은
중독처럼 따라붙어.
갈수록 더 많은 사랑을,
더 깊은 존재의 증명을 요구하게 돼.
혹시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라는 시집 알아?
공룡은 왜 멸종했을까.
지독한 애정 결핍 끝에
스스로를 포기한 건 아닐까.
인간도 그럴 수 있겠지.
아니, 어쩌면 나도.
나는 여전히 베풀기 위해 살아 있어.
누군가에게 받은 것들이
내 삶의 토대를 만들어줬거든.
그래서 스쳐간 인연들까지도
내겐 모두 고마운 사람이야.
그런데도, 가끔은 아찔한 기분이 들어.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실존의 문제들 있잖아.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이 인간다움인가.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랑이 답일지도 모른다고 말해.
피상적이라도, 그 말이
당분간은 나를 살게 하니까.
사랑이 곧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이 진리고.
고대 그리스때부터 전해져온 삶의 지혜잖니.
사람들이 로맨스 드라마에 왜 열광하겠어.
그렇게 내린 이 결론은,
실존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일까.
아님 여전히, 또 하나의 유예일까.
비참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결국, 비참함의 연장에 불과한 걸까.
3.
오랜만에 좋은 꿈을 꿨어.
아이들이 줄을 서서 선생님을 따라 피크닉을 나가고 있었어.
그 주위엔 흰색 포메라니안 한 마리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방방 뛰며 아이들의 발자국을 따라다니고 있었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야—
어린아이, 강아지, 고양이.
언제나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들.
아름다움은
지켜볼 때만 온전하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어.
손이 떨렸는데, 그건 기쁨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모르겠어.
꿈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싶었어.
필름 카메라를 찾으려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눈을 떴어.
어두운 방.
새벽 1시.
핸드폰 불빛이 시간을 알려줬어.
아. 다시 자고 싶다.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고,
찬물을 마신 뒤
다시 침대에 누웠어.
왠지 모를 한기가 들었고,
그 한기 속에서 몸을 떨다
간신히 잠이 들었지.
글로는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글이 나일까, 내 우울의 묘사일까, 아니면 그냥 허구일까.
나도 잘 모르겠어.
다만, 어떤 장면들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떠다녔어.
쓰고 싶었어.
적어도, 그것들과 나는 분리되지 않는다는 걸 알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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