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직업이 자리하는 위치
나는 지금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 길을 전환했다. 비로소 ‘실장님’에서 ‘선생님’으로 불린다.
창조적 미술로 청소년과 숲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가끔 만나는 성인 그리기 워크숍들이 그동안의 배움의 결과로 비로소 나를 '선생님'으로 불리게 한 일들이다.
나는 이 ‘비로소’라는 부사가 좋다.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전까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던 사건이나 사태가 이루어지거나 변화되기 시작함을 나타낸다.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하는 그 희망에 찬 느낌이 좋다. 뭔가 시작점을 찾았다는 느낌, 거기서 출발하면 되겠다는 느낌,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비로소’를 3년 만에 이제야 쓸 수 있게 되었다.
퇴사를 기준으로 선생님으로 불리기까지 어떤 사회적 정체성도 찾지 못한 기간이 3년이었다.
퇴사를 하면 곧 새로운 출발일 거라 생각했지만 다른 직책으로 불리기까지 머물러야 하는 기간이 있다.
실장님도 선생님도 아닌 나.
나는 바로 색채 심리 전문가로 불려서 대단히 큰 활약을 할 줄 알았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색채심리 전문가 과정까지 다 배웠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색채 일과 영 무관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격증은 나왔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패션의 색채는 트렌드를 아는 것이었고 색채심리에서 다루는 색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더 본질적인 것이다.
배움으로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배움이 내 것이 되었는지 그 효과를 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임상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나를 찾기 위한 3년의 임상 시간들,
소재 디자이너 5년 차 팀장일 때 ‘ 아 소재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깨달음이 왔고 10년 차가 되었을 때 ‘아 이게 이렇게 나의 직업이구나’ 확신이 들었고 15년 차쯤 되었을 때 월요일 아침 회사 가기가 두렵지 않은 경지에 올랐던 것 같다. 상사에게 어떤 질문을 받아도 어떤 문제에 닥쳐도 좀 쉽게 해결점이 보이는 경지라고나 할까. 15년 정도는 돼야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나 보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에 좀 위로가 되었다. 내가 영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는 아니구나라는.... 전문가란 '시간의 힘'이 10할 중 8할은 하는 것 같다. 나머지 2할이 노~~오력!!!! 그 시간의 힘에는 엄청난 것이 있다. 만남, 행운, 기회, 기운, 나의 적절한 운때 ....
나의 사회적 정체성이 옮겨가는 단계에서 따라오는 불가피한 염려, 불안, 걱정 등 부정적인 마음들을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은 당연하게 찾아오는 손님이다. 이것을 환대하기에 충분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장님’에서 ‘선생님’으로 옮겨가는 과정에도 인내와 용기가 필요했다. 다시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단계. 내게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이미 한번 신입사원을 경험해봤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용기를 주는 것들을 찾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었고 치료로써의 미술을 접했고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 감정을 다루는 워크숍, 창조성 워크숍 등 색채심리를 확장시켜주는 것들을 만났다. 그렇게 미술치료 심리사와 창조성 코치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것이 직업의 전환이던 정체성의 전환이던 변화를 위해서는 끝에 서봐야 한다. 퇴사할 때 마음의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하고도 2년이나 더 회사를 다녔을 것이다. 결국 끝까지 나를 몰고 가서는 선택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변화란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성질과 모양. 상태가 변해야 진짜 변한 것이다.
변화의 끝과 시작은 딱 붙어 있지 않다. 그 사이 틈이 있는데 그 틈을 이어주는 다리가 있다. 원수만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게 아니라 진짜 원수는 미처 내가 몰랐던 ‘나’이다.
정선미가 정선 미답기 위해 이 정체성이 옮겨가는 문제는 내 인생에 중요한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사실 직업 말고도 건너야 할 출렁거리는 인생의 다리들은 많다. 출렁다리의 매력은 떨어질까 말까한데 도전해볼 만하다는 것. 두렵지만 절대 떨어질 리가 없다. 다리를 붙잡는 든든한 끈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나를 이끄는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