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Dec 07. 2020

싸우자! 종합감사!(2)

종합감사(2)

종합감사가 끝이 났다.


우리 학교 종합감사는 총 3일로 이루어졌는데, 첫날은 사이버감사였고 나머지 일수는 직접 감사담당 공무원들이 나오는 찐 감사였다. 사실 사이버 감사일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분명 그들이 특수목적용 인증서를 가지고 3년간 나와 내 전임자와 내 전임자의 전임자가 한 행적들을 하나하나 파고들고 있었을 텐데 정작 눈에 보이는 건 없으니 멍.... 때리기. 당장 내가 감사를 받고 있다는 것보다는 내일 올 감사담당공무원들을 위해 어떻게 더 감사장을 더 보완해야 할지가 더 신경이 쓰였다. 이미 세팅 완료인 상황인데도.


그렇게 사이버감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감사를 주도하는 교육청이나, 수감기관인 학교나 서로에게 그 어떤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그렇게 감사 첫날이 유유히 흘러갔다.


그리고 둘째 날. 정말 마음 같아서는 기존 육아시간을 무시하고 일찍 출근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역시나 아침은 전쟁이었고,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이미 감사담당 공무원들은 학교에 도착하여 교장실에서 간단한 인사 및 담화 중이었고 복무상 지각은 아니지만 어쨌든 늦은 나는 가방 내려놓자마자 후다닥 교장실로 뛰어갔다. 공손한 인사와 따뜻한 차. 이런저런 대화가 흘러간 후 본격적인 감사가 시작되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날아오는 지적들. 오프라인 감사 첫날 오전은 정말 정신을 못 차렸다. 준비한다고 준비했고 몇 번이나 검토했지만 이래저래 빠진 것들이 많았고 감사관들은 그 빠진 것들을 요구하느라 전화를 했고 전화를 받은 난 혼이 빠지게 그것들을 찾아 갖다주느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중에 하나가 학교 명의의 통장이었는데, 나는 통장이라 길레 지금 당장 쓰고 있는 통장들만 가져다 놓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 3년 치 통장을 다 가져오라는 것 아닌가. 말 듣자마자 멘붕. 그렇지만 멍 때리고 있을 수는 없다. 가져오라고 할 때는 필히 다 이유가 있는 법. 빨리 움직여야 한다. 다행히 전임자인지 전 전임자 이은 지 통장들을 다 한 곳에 차곡차곡 묶어놓아서 간단히 확인 후 수감기간에 해당하는 통장들만 분리하여 가져다줄 수 있었다.


혼이 쏙 빠진 상태로 움직이다 보니 오전이 훅 가고, 점심 먹고도 여러 차례 불려 가 이것저것 가르침도 받고 지적도 받고 조언도 받다 보니 어느새 오후도 훌쩍. 일상 업무는 거의 하지 못한 채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그 와중에는 정말 지금 감사받아서 다행인 점도 있었고, 아차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감사는 부드럽게 흘러갔다.


두 번째 날. 드디어 감사가 끝나는 날. 감사가 끝나서 속 시원하겠지만 그에 따른 처분결과도 나오는 날이기에 더불어 긴장도 놓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한 오후 1-2시쯤이면 끝나려나.. 했던 감사는 4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그동안 내가 받아왔던 감사는 정말 무섭고 엄중했던.. 뭔가 징벌 위주의 감사였는데 이번 감사는 진정한 감사의 의미를 되살린듯한 가르침 위주의 감 사였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실수한 것이 맞고, 잘못한 것이 맞는데 그 이유가 적극적으로 행정을 하려다가 그런 것이 거나 너무 바빠서 불가피하게 놓쳤거나, 최선을 다해 알아봤지만 끝내 모르고 지나갔던 것들이라면 문책을 하기보단 무엇이 어떤 근거에 의해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시정을 해줘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나뿐만 아니라 수감 대상자 모두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감사가 끝이 났다. 물론 이런 부드러운 감사에도 당연히 지적과 처분은 있기에 그 누군가는 처분을 받았고 그 누군가는 현지조치를 받았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학교 구성원분들이 대부분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사실 감사관들이 다 학교를 떠나고 감사실 정리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아 잠시 내 자리에 앉아있을 때에는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정도로 뭔가 혼이 쏙 빠진 느낌이었는데, 주말을 보내고 다시금 이렇게 회상해보니 참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가 감사 총괄자, 즉 업무담당자라 하여도 한 명 한 명이 다 수감받는 수감 대상자이고 다 같이 준비했고 다 같이 긴장했기에 나만 수고한 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큰 산이 넘어갔다. 이제 나의 2개월 전임자의 7개월, 전임자의 2년 3개월을 그 누구도 헤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 소각이 될 것이다. 문서에는 문서보존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고 지출증빙서는 5년이니 정말 그때가 되면 역사에 파묻힐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겠지.


이번 감사는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받았지만, 지금부터 3년 후엔 거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텐데 그때도 내가 이번처럼 홀가분할 수 있을까. 그때도 내가 이번처럼 친절한 감사관을 만날 수 있을까. 아무튼 지금은 감사가 끝났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당장 닥친일에 집중해야겠다. 수고했다 초짜 실장.

이전 08화 싸우자! 종합감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