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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Dec 03. 2020

싸우자! 종합감사!(1)

종합감사(1)

요새 교장선생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우리 실장님은 복이 참 많아요. 일복. 오자마자 외벽공사에 도서관 공사에, 감사까지"


100% 맞는 말이다. 승진하고 실장으로 우리 학교에 오면서 난 진짜 일복이 터졌다.

그것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미지의 일들. 정말 모든 게 처음이었고 그래서 시행착오도 정말

지겹게 겪고 있는데, 일상 업무뿐만 아니라 공사, 감사 같은 큰일도 있으니 말이다.


그중에 오늘 쓰려는 건 바로 종합감사이다.

원래 감사권은 도단위 교육청, 즉 도교육청에 있어서 도교육청 감사관 직원들이

감사를 했었는데 작년부터 지역교육청으로 내려오면서 우리 학교는 소속 지역교육청에서

감사를 받게 되었다.


사실 종합감사는 어느 근무지를 가든 3년에 한 번씩 받는 거라 시기가 맞으면 받고

운 좋게 시기를 빗나가면 그냥 지나가는 것인데, 이번 감사가 나에게 더 부담스럽게 다가온 이유는

내가 행정실장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종합감사는 행정실장의 업무이다. 즉 감사총괄자라는 말이다.


종합감사 준비의 시작은 감사 날짜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그동안은 행정실의 구성원으로 있었기에 부장님이나 실장님이 감사 날짜를 일러주면

내 업무에 대한 부분만 딱 준비하면 되었기에, 감사 날짜는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통보되는 줄 알았는데

실장 자리에 오니 그것이 아니었다.


실제 감사 날짜를 통보하기 전에 교육청에 감사담당 주무관이 학교에게 날짜를 제시하고 의견을 묻는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준다. (사실 어찌 보면 교육청에서 제시한 날짜를

거부하기란 수감기관인 학교에선 꽤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일정을 살펴볼 시간을 준다는 것 자체가 나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날짜가 조율되면 달력에 아주 크게 표시해놓고 모두가 준비를 시작한다.


도교육청 홈페이지에서 수감자료 작성 서식을 다운로드하여 작성하는데, 다행히도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서식이 많이 간소화되었다. (노파심에 쓰자면, 코로나가 와서 모든 학교가 예산집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행정실은 예산집행에, 교무실은 학사일정 및 교육활동 변경에, 급식실은 급식 일정 변경에 정말 모두가 하나같이 어려운 나날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 이런 어려운 시기에 감사까지 받아야 하는 학교들을 위한 교육청의 작은 배려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렇지만 여기서 함정은 간소화되었지만 그중에 80%는 다 내 몫. 즉 예산 집행하는 사람이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멘붕. 어째 간소화가 교무실 쪽만 되었는지 내가 작성해야 할 시트는 10개나 되는데 교무실 쪽은 한 개였다. 물론 내가 작성해야 할 시트도 10개면 많이 간소화된 거긴 하다. 열심히 작성하고 다 작성한 후에는 보기 좋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른 분들이 작성한 시트도 받아서 취합하면 수감자료 작성 끝. 마지막 검토를 끝내고 교육청으로 공문 발송을 했다. 


공문 발송이 되면 이제는 비치 자료 옮기기. 수감자료 작성은 말 그대로 작성이고 그에 따른 자료들, 즉 문서들을 감사장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 비치 자료 옮기기 얘기 전에 감사장 얘기를 먼저 하자면, 감사장은 주로 각 학교에 회의실 같이 학생들이나 교직원이 늘 상주하지 않는 곳, 행사장소로 많이 쓰이는 곳이 낙점되는데 우리 학교는 소규모 학교라서 회의실도 없고 학교 운영위원회실도 없어서 평소 학교운영위원회가 이루어지는 과학실이 감사장으로 정해졌다. 감사장이 정해지면 교육청에서 보내준 배치도에 따라 책상을 배치하고 인터넷과 인쇄가 가능하도록 세팅을 한다.


그 후 비치 자료를 옮긴다. 구르마를 가지고 행정실 전 직원이(세명 ㅋㅋㅋ) 거의 4년 치의 지출증빙서 및 관련 자료들을 옮기고, 연도별로 배치하고 나니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문서행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 저 많은 서류를 봐야 하는 사람도 참 징글징글하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더불어 참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예산을 집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허투루 예산을 쓰지 않기 위해 저 많은 서류들을 받고, 검토하고, 돈 지급하고 증빙서 묶고 차곡차곡 쌓아놓고. 왠지 모를 복잡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감사받을 자료를 다 가져다 놓으면 이제 감사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놓는다. 우선 전자기기.

프린터, 파쇄기를 가져다 설치해놓고 작동이 제대로 되나 시험가동도 해본다. 그 후에는 응접탁자 위에

물, 커피, 커피포트, 차 종류를 최소한으로 준비해놓고 필기구도 가져다 놓는다. 여기까지 세팅하면 이제 감사받을 준비 끝.


이제 그들이 오기만 하면 된다. 과연 그들은 와서 어떤 우리의 허점을 파고 들것인가?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한 우리들은 우리가 놓친 어떤 것들을 보게 될 것인가?

우리는 어느 정도의 좌절과 허무함을 느끼게 될 것인가?


감사라는 것이 사실 업무의 투명성과 절차의 공정함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한편 달리 생각하면 정말 현장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한 실무자들의 의욕을 마구 떨어지게 하는

안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사실 그 누가 법을 어기고 싶겠는가? 그 누가 서류하나 누락시키고

숫자 하나 틀리고 싶고 대장 하나 안 만들고 싶고 그러겠는가? (물론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감사가 끝나면 쌔빠지게 일해도 남는 건 지적 사항뿐이라는 말이 꼭 나오는 것이다.

물론 난 이번 감사에 거의 해당이 되지 않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될 테지만

이번 감사에 해당하는 모든 교직원들이 너무 속상하지 않게 감사가 끝이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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