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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Feb 01. 2021

어쩌다 정신과 의사

이 책을 완독 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볍게 집어 들었고 정신과 얘기여서 좀 어려우려나.. 하는 우려와는 달리 쉽게 읽혀내려 갔다.


그런데, 한번 흐름이 끊기 고나니 소파에서 하염없이 뒹구는 책을 봐도 손이 가지 않았다.

한동안은 글쓰기에 빠져있었고, 한동안은 그렇게도 티브이가 보고 싶었다.

(우리 집 티브이는 기본적으로 꺼져있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그나마도 거의 한 시간 정도 아이들이 너무 지루해야 하면 틀어주는데, 대부분 율동동요나 만들기 영상, 동물농장이 대부분이라 가끔 정말 나도 남들이 보는 예능이나 시사프로그램 같은 것이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요즘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하다. 애들 재우고 느긋하게 티브이를 보고 싶어도 거의 같이 잠들 때가 많다.)


이 책을 완독 하게 한 계기는 바로 고열이다. 고열. 이틀간 시험감독 지원을 나간 다음날 열이 났다. 38.1도.

출근은 당연히 못했다. 사실 컨디션만 생각하면 나갈 수도 있지만, 코로나 19라는 무서운 복병이 늘 주위를 맴돌았기 때문에 일부러 출근을 안 했다. 집 앞 병원에 갔다. 목이 부은 게 보이지만, 혹시 모르니 하루 약을 먹어보고도 열이 안 떨어지면 코로나 검사를 하란다. 평소 약을 안 좋아하는 내가 정말 하루 세 번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는데도 열은 안 떨어졌다. 분명 약들 중에는 해열진통제도 있었는데 떨어지기는커녕 38.4도 38.5도까지 올랐다. 허허. 그래서 보건소로 코로나 검사받으러 갔다. 벌써 코로나 검사는 두 번째다.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아프다...... 누구 말처럼 코를 통해 눈 밑까지 찌르는 이 느낌이란. 검사는 아주 찰나인데 그 싸함은 몇 시간이나 간다.


열은 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바라던 티브이를 원 없이 봤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갑자기 책이 읽고 싶었다. 글도 쓰고 싶었지만 그보다 책이 읽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소설책, 요새 자꾸 눈에 띄는, 아직 구입하지 못한 "돌이킬 수 없는 약속" "봉제인형 살인사건"을 당장 집 앞 서점에 가서 구입해서 읽고 싶었지만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이 책을 끄집어 들었다.


"어쩌다 정신과 의사"


일단 나의 총체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쉽고 인간적이고 무난한 책이다. 엄청나게 특별한 내용이 들어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의미 없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은, 그냥 한 유명한(나는 알지 못하지만) 정신과 의사의 자서전 같은 그런 책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감동적이거나 감명받은 책장은 사진으로 남기는 게 내 취미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책장은 없었다.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한다. 정신과의 벽이 무너져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 모두가 작가님이 말하듯이 무너져야 하지만 그 보다도 일단 정신과는 너무 비싸다고. 물론 작가님이 말하신 대로 국가에서 정한 수가가 있고, 정신과 의사분들도 생업이기에 무조건 싸게 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비싼 건 사실이다. 비싸다.


내가 비싸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정신과를 다녀봤기 때문이다.

이건 자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실 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정신과 이력이 있다는 것을 굳이 남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색안경 쓰고 볼까 봐. 그런데 요새는 얘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나는 19살에 왕따를 당하고, 정서적 불안감과 폭력적인 망상이 심해져 정신과를 갔었다. 그 당시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국립대병원 정신과에서 무려 교수 진료를 보았는데, 그때의 기억은 정말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들어갔다.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내가 앉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이야기를 했다.

중간에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앞에 있는데 의사는 사적인 통화를 한동안 했다.

그리고 대화는 마무리되었고 나는 나왔다.

나에게 남겨진 건 정신과 의사에 대한 엄청난 실망과 채 30분도 안 되는 진료시간에 대한 엄청난 진료비였다.


정말 엄청난 진료비였다. 물론 지금은 내가 돈을 버는 입장이니까 그 정도 금액은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만큼의 액수를 지불하고 정신과 가서 상담받고 처방받을래? 하고 물으면 싫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명의 의사 덕분에 나는 정신과 의사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통화내용이 절대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다. 본인의 점심식사 얘기였나...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그 이후로도 정신과를 가고 싶었던 나날들을 몇 번 있었으나 비싼 진료비 덕분에 마음을 접곤 했다. 아마 정신과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내 말에 공감하지 않을까? 감기가 걸리면 내과나 소아과에 가서 채 만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을 수 있다. 작가는 책에서 정신질환도 하나의 질병이며 다른 질병처럼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과정은 같은데 너무 비싸다. 하긴 비단 정신과 진료뿐만이 아니다. 심리치료, 심리상담, 마음건강, 등등 정신과 마음에 관한 모든 행위는 다 비싸다. 육체적으로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픈 게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내 마음이 아프고 정신이 아플 때는 많은 돈이 필요로 하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이 책에서 언급한 수많은 장벽들 중에 나는 이 진료비 장벽이 먼저 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하나 있었으니 [뇌부자들] 작가가 동료 의사들과 같이 한다는 팟캐스트이다. 팟캐스트의 팟자도 모르는 나. 그래서 그런지 어떤 책을 읽다가 유튜브가 언급되면 보기도 하고 그러는데 영 관심이 안 간다.


그래도 방송 출연도 하고 기고도 하신다니 방송에 정신과 의사 [김지용]이라고 나오면 유심히 보게 될 것 같다.

(얼마 전에 유*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님을 보았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지만 말은 참 잘하시던 훈남 의사님)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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