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쌍화점이라는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매거진은 책에 대한 리뷰들을 적으려고 만들었지만, 가끔 이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 리뷰도 적어야겠다.)
쌍화점이 처음 개봉했을 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어려서였을까, 싱글이어서였을까,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표현하고 있는 장면들이 다 충격적이었다. 동성애와 욕정, 배신과 처참한 결말까지. 그런데 나는 이제 더 이상 20대의 파릇한 성인도 아니고, 아이가 둘 있는 아줌마가 되어서 그런지 이제는 모든 것이 담담하다. 그저 조인성의 마지막 눈빛이, 그리고 그 눈빛을 끝내 확인하지 못하고 죽은 주진모의 삶의 끝이 너무 비참하다고 느껴질 뿐.
가장 사랑했던 조인성을 검으로 찌른 주진모가 묻는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다. 너는 나를 단 한 번이라도 애정 한 적이 있었느냐?"
"너는 나를 단 한 번이라도 정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
정말 허무하고 처절한 장면이다. 영화의 모든 파국과 분노, 증오, 배신감, 아픔, 슬픔 이 모든 감정이 결국에는 사랑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상이 소리치는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고, 애절한데 이 영화 속 사랑은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가는 전염병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진다.
검을 온몸으로 관통한 조인성이 대답한다.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 말은 진실일까? 아니면 삶의 끝에서 악에 받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 한 것일까.
그리고 그는 주진모를 찌른다. 결국 자신을 가장 사랑해준 사람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끊은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에 따른 구속에 대한 해방을 죽어서라도 바랬던 것인지, 혹은 자신은 죽어도 생을 이어갈 자신의 정인이 걱정되어 끝을 내버린 건지. 그 어떤 이유에서 이든 그의 행동은 참 아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주진모가 애잔했다. 그가 조인성과 행복한 한때를 보낼 때에도, 조인성의 배신을 알고 분노할 때에도, 회복할 수 없는 배신의 상처를 끌어안아가면서까지 조인성을 용서할 때도, 마지막 질문을 던질 때에도, 그리고.. 자신의 정인이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자신을 바라보았는데 이미 초점이 사라진 모습까지도.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 말고,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주진모는 스토커에 정신병자이고 조인성은 피해자로 우울증과 공황장애, 피해의식까지 생겨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제삼자인 우리는 주진모를 욕하고 조인성을 동정하겠지. 나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본다. 주진모의 입장에서.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했을 거라는 믿음이 깨져버린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 그가 흔들릴 거라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기에 왕후와의 합궁에 보냈지만 결국 돌아온 건 배신이라는, 내가 내 손으로 나의 사랑을 짓밟아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가장 이성적인 건 그를 궁 밖으로 내쫓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를 잊어버리면 되지만, 멈출 수 없었던 마음과 차오르는 분노에 결국 자신을 끝으로 치닫게 만든 사람. 허구의 이야기인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질 만큼 나는 주진모 역할이 서글프다.
흔히들 말한다. 정말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내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는,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영화다 드라마에서처럼 절절하고도 행복한 애틋하고도 애절한 사랑이 나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비참하고 처절하고 아프다. 영화라는 것이 허구의 작품이지만 결국 우리가 사는 현실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랑의 결말이라는 게 행복하게 끝나는 영화보다는 쌍화점처럼 결국 상처로 얼룩진 비극적 결말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누가 누구를 죽이고, 찌르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더 진한 상처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는 그런 결말 말이다.
나에게 주진모와 같이 정말 내 목숨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면, 나는 그 사랑을 따라 불나방처럼 뛰어들 수 있을까?
이 글을 한참 쓰다 보니, 나는 마지막 조인성의 눈빛이 그래도 자신을 정인이라고 여겨준 사람에 대한 연민의 눈빛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자신이 정인이라고 생각하는 왕후를 죽은 것처럼 꾸며서까지 자신을 궁으로 불러들인 주진모에 대한 진절머리 혹은 원망의 눈빛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후자가 맞다면 그 눈빛을 보지 못하고 죽은 주진모의 최후는 감독, 혹은 작가가 보여준 일종의 배려일까. 하지만 그 배려가 그를 더 애절하게 보이게 한건 나만 느낀 걸까.
어느새 30대 중반, 혹은 후반, 이제 더는 이 영화의 야한 장면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그저 두 주인공이 죽어 널브러져 있는 마지막 장면에 가슴이 지나치게 쿡쿡 쑤셔올 뿐. 마치 진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인처럼 나는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왕의 사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