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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18. 2021

벌써 1년, 혹독한 실장 돌치레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이 어려운 상황을.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없이 장황하게 써 내려가겠지만 지금 당장은 막막함이 먼저 느껴진다.



저번 주에 같은 사무실에 있는 주무관님과 언성을 높였다. 학교에서 있다 보면 행정실 업무라고 하기에도, 교무실 업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업무가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떤 합의점을 찾기 위해 시작된 대화였다. 그러나 대화는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 업무를 두고 행정실에서 특정 인물 한 사람, 교무실에서 특정 인물 한 사람이 언급되는데 그 당사자인 주무관님은 너무나도 확고하게 그것은 내 업무가 아니라는 입장이셨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싫었다.


누군들 회사일인데 하나라도 덜 맡고 싶지, 더 맡고 싶겠냐만은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이건 내 업무니까 나는 이것만 할 것이고, 여기부터는 너의 업무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책상에 금 긋듯이 되는 업무는 사실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수업은 선생님의 고유의 업무이고, 예산을 다루는 건 우리의 고유의 업무이다. 하지만 이 두 개가 각자의 길로만 간다면 과연 학교가 돌아갈까? 선생님은 수업을 위해 예산이 필요하고, 우리는 예산을 편성*집행하기 위해 선생님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자세히 말해보자면 선생님들은 수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는 정산을 하기 위해 선생님들의 물품 검수 등이 필요하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론은 서로가 협조를 해야 모든 일이 순탄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주무관님의 의견은 단호했다. 나는 점점 화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궁극적인 의견은 주무관님이 그 업무에 대해서 주축으로 나서거나 혼자 다 떠맡는 것이 아닌, 같이 언급되는 교무실의 특정 인물과 대화를 잘해서 그분을 주축으로 주사님은 서포트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교무실 쪽에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행정실장으로서의 나의 의견은 그 업무는 행정 쪽보다는 교육과 더 관련이 깊기 때문에 관리 또한 교무실 쪽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업무를 밝힐 수 없는 건 내가 아직 우리 학교에 있고 명확히 결론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언성도 높아지고 주무관님의 언성도 높아졌다. 그 업무에 대해서 행정실이 완전 관여하지 않는 입장을 보이면 또 다른 어떤 업무가 주어졌을 때 과연 교무실 쪽에서는 협조를 해주고 싶겠냐고, 교무실과의 관계를 악화시켜서 우리 학교에 좋을 것이 전혀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주무관님은 교무실과 등지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셨다. 나는 정말 마음 깊숙이 상처를 입었다.


사실 주무관님의 입장이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저 행정실의 계원이었다면 실장이 나와 같이 이야기했을 때 왠지 실장이 나보다 교무실을 더 감싸고도는 느낌이 들어 서운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래도 1년 가까이 실장 자리에 앉아있으니 뚜렷하게 어떤 것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설프게나마 교무실과 행정실이 같이 발맞춰 나가야 학교가 별 탈 없이 운영된다는 것을 조금씩 체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솔직한 마음은 "그건 교무실꺼잖아요. 저희가 도와드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관리는 알아서하세요."라고 손절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로 감정이 상한 채로 연휴가 흘렀다. 연휴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마 주무관님도 그러셨지 않았을까 싶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는데, 교무실에서 주무관님과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주무관님이 결국 그 업무를 다 해치우셨고, 그것에 대해 선생님 한분이 공치사(=남의 공을 칭찬함)를 하는 소리였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분노가 차올랐다.


분명 주무관님은 내가 1년 동안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셨으니 그냥 자신이 감수하고 일을 떠맡으면 내가 고마워하실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당장에 그 업무 한 번을 하는 것이라면 굳이 누구누구를 언급할 필요 없이 전문인력에게 용역을 주면 그만이다. (어차피 누가 맡은들 전문인력이 하는 것보다는 못할 테니까) 하지만 업무는 내년, 후년, 앞으로 10년 후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인데 주무관님이 이렇게 떠맡아버리면 행정실이 그 업무에 발을 깊숙이 들인 꼴이 되는 것이다.


정말 따져 묻고 싶었다.


"주무관님, 여기 계시는 동안 계속 그 업무 하실 거예요?"
"주무관님, 후임자가 왔을 때 '전임자는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 주무관님은 안 해요?' 소리 안 나오겠어요?"

"이 업무가 행정실 꺼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제가 도와주라고 했지 언제 주무관님 보고 다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침묵했다. 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말이 이쁘게 나갈 리 만무했다. 게다가 주무관님과 눈이 마주치면 나의 분노가 들킬 것만 같아 시선을 피했다. 가시밭길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상황이 조금씩 마무리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업무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길이 멀고 멀었다. 당장 관리자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모르겠고, 앞으로 나는 어떤 입장을 내보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주무관님과도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고 그 와중에 합의점을 찾는 것 오롯이 내 숙제로 남아있다. 단지 불편한 상황을 오래 못 견디는 나와, 나보다 더 못 견뎌서 결국 먼저 사과를 하신 주무관님 덕에 둘이 말문이 조금 트였을 뿐이다.


아이들 돌치레(아기들이 돌 전후로 아픈 것)하듯이 나의 우리 학교 돌치레가 참 혹독하게 지나간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도 내 마음 군데군데에는 열꽃이 피어있고, 언제든지 그 열꽃이 폭발할 것만 같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리고 새삼 나의 자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저 관리자가 되면 실무를 하지 않고 결재하고, 실무자들 지적하고, 회식자리 만드는 등등 편하게만 보였는데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나 새삼 깨닫게 된다. 요새의 나는, 내가 지나쳐온 모든 실장님과 부장님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그저 앉아서 시간만 때웠던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을 것인지에 대하여. 자리가 자리인 만큼 판단 하나에, 행동 하나에, 언행 하나에 얼마나 부담감을 많이 느꼈을지에 대하여. 이제 빠르면 1년 정도 후에 실장 자리가 아닌 부장 자리, 혹은 삼석의 자리로 내려갈 수도 있는 나에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므로, 언젠가 6급이 되어 어느 기관에 가든 관리자가 되었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부담감과 책임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하긴 그때는 계원과 싸울 짬이 아니니까 좀 덜하려나...?ㅎㅎ)



처서가 다가와서 그런지 날이 많이 선선해진 느낌이다. 시원하게 부는 가을바람이 서서히 내 안에 남아있는 잔여 불씨마저 다 꺼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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