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독도 강치야!

by JA

부끄럽게도 나는 독도에 "강치"라는 생명이 살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다온이의 친구들을 초대했던 몇 달 전 티브이 보고 싶다는 말에 유튜브를 켰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외쳤다.


"독도수비대 강치! 보여주세요!"

무지한 엄마이자 친구 엄마인 나는 "강치가 뭐야?"라고 물었고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며 "독도에 살았던 동물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아주 오랜만에 학교는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 그렇구나. 시간도 적당하고 내용도 적합하니 한번 봐볼까?

평소 영상에 목말라 있는 아이들은 사실 그 어떤 영상을 틀어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엄마의 입장에서 그 집중력이 반가운 순간이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 강치의 운명도 해피엔딩이면 좋았으련만 이 책을 통해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더 이상 아이들의 책을 구매하지 않고 학교도서관에서 빌려다 읽힌 지 몇 달이 지났다. 사실 책 열몇 권을 빌려오고 다시 반납하고 또 빌리고 반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무게가 무거워 숨이 차기도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일하다 보면 반납하고 새 책 빌리는걸 깜박해서, 빌려온 책을 반납하기 위해서는 전날 저녁에 꼭 현관 앞도 아닌 내 신발 옆에 놓아야 안 잊어버리고 출근해서는 바로 도서관으로 향해야 한다.


이제는 방학이라 온기 없는 도서관에서 시린 발을 참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책장에서 엄마들 사이에서 평 좋은 책들을 찾아낼 때면 추위도 싹 가시는 듯하다.


한 일주일 전쯤. 그전에 빌린 책을 반납도 하기 전에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실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도서관이 눈에 띄었을 때 가야지, 안 그러면 또 며칠이 일한답시고 후루룩 지나갈 것이 분명했기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운명처럼 보인 신간도서. 학교 도서관에는 진짜 엄청난 작가들의 엄청난 책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학교도서관이다 보니 다온이(현 7살)에게 너무 어려운 책도 있어서 빌릴 때는 한 권 한 권 대충이라도 다 읽어봐야 한다.


그래서 훌랑훌랑 들춰보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음, 강치! 그런데 선뜻 빌려야겠다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아이에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상처를 많이 주는 것이 현실이라 하여도 백지 같은 아이의 세계사에 굳이 먹칠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책 뒤편에 역사적인 자료들도 실려있어 '이 때는 이랬대, 이건 사실이야, 지금의 일본 사람들이 다 이렇게 잔인하진 않아' 하고 역사적인 부분은 역사적으로 끊어주면 되겠다!라는 확신으로 빌려왔다.


역시나 아이는 강치를 반가워했고, 빌려온 이래로 취침 전 책 세 권에 꼭 이 책을 가져온다.

어제도 이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다온이가 외쳤다.


"엄마 일본 어부들 다 잡아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


아이는 엄청 심각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는데 나는 표현이 기가 막혀서 자칫 크게 웃어버릴 뻔했다. 푸하하 하하하하하하하,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니, 아직 나쁜 말이라고는 "이 장난꾸러기" "너랑 안 놀 거야" "너 자꾸 그러면 나한테 맞는다!"정도 밖에 모르는 아이니 자기 딴에는 분노를 최대로 표현한 것인데 정말 너무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갑자기 골똘해진 다온이가 한번 더 외쳤다.


"엄마! 일본 어부들 다 잡아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분리배출 해버리자!"


푸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여기에서라도 웃어보자.

우리 집에서는 종이, 플라스틱, 비닐을 분리수거하고 남편이 일주일에 한두 번 분리배출하러 나가는데

아빠가 가지고 나가면 영영 사라지는 걸 아는 아이가 강치를 죽여 잡아가는 일본 어부들을 없애고 싶다는

표현으로 쓴 거 같은데 모든 걸 떠나서 나는 아이의 순수함에 그저 웃음이 났다. 사랑스러운 녀석.


순수함에는 장난을 쳐야 한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리수거하면.. 재활용해서 다시 살아날 텐데...? 또 오면 어쩌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 말을 듣자마자 동공 지진을 일으키던 아이의 표정이 생생하다.


"어... 어? 어.. 그러면 그냥 쓰레기 봉지에 넣어서 버릴까....?"


푸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에게 그럴까? 하고 답하자 그제야 평온을 찾은 얼굴.

이렇게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만들어졌다.


이 책의 강치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이다. 사실 다온이 나이에는 좀 이른 것 같고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읽으면 경각심도 세워지고 교육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생뚱맞지만 얼마 전에 다온이와 아빠가 그동안 열심히 모으고 모은(아빠가 모았지만 다온이도 숟가락 얹어보자) 우유팩을 가지고 주민센터에 갔다. (분리수거 얘기가 나와 생각남)


대기하는 다온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리사무소에서 우유팩 가지고 가면 쓰레기봉투로 바꿔줘서 유용했는데 쓰레기봉투가 소진되어 없다는 말에 연중 계속되는 주민센터의 휴지 바꿔주기 프로젝트에 참가하러 간 것이다. 우리 집에는 우유를 하루에 작정하면 천미리도 먹을 것 같은 나와 둘째 라온이 덕분에 내가 학교에서 200미리 우우 하루 세 개를 신청해 먹어도 모자라 항상 마트에서 천 미리짜리 두세 개는 일주일에 기본으로 산다.


즉 일주일에 200ml 우유 열다섯개, 1000ml 우유 2-3개가 소비되는 것이다. 그냥 분리수거만 해서 버릴 수도 있지만 남편의 적극적인 행보(씻어서 말려서 찢어서 모으기)로 항상 바짝 말려진 우유팩이 쌓인다. 저 날도 남편의 고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우유팩을 들고 주민센터에 간 것이다. 결론은?


휴지 네 개! 사실 결과물을 생각하면 하고 싶지 않은 캠페인이다. 매번 우유팩이 나올 때마다 씻고 말리고 찢고 모으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휴지 네 개라니..... 탄소중립도 좋고 전기차도 좋은데 진짜 환경을 생각한다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이런 캠페인에 좀 더 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는 주민센터보다는 관리사무소의 쓰레기봉투가 훨씬 나았다.


이 날 다온이는 엄청 뿌듯해했고 유치원에서 엄청 자랑을 했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일로 전화하시다가 나를 급 칭찬해주심, 이 영광을 남편에게 돌립니다.)


이 매거진은 책 매거진인데 너무 분리수거 얘기를 많이 한 느낌이 들지만 수정은 안 하고자 한다. 좋은 책 소개 좋은 활동 소개 일석이조^^


(표지그림 출처: 해양수산부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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