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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n 10. 2022

두 칸이면 됩니다.

초보운전, 후방 주차 익히기

그날은 마치 운명적인 계시를 받은 것만 같았어요. 


저도 모르게 어떤 힘에 이끌린 듯 생전 안 가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거든요. 덜덜 덜덜. 내려가든 올라가든 경사로는 언제나 무서웠어요. 겨우겨우 경사로를 지나 평지에 안착하니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흠. 여유롭군. 그래 이 시간에는 여유로워야지 왜냐하면 오후 2시 30분을 갓 지나고 있었으니까요.

     

뜨거운 햇볕을 피해 들어간 지하주차장이었지만 절반 이상이 텅텅 비어있는 주차장을 보니 저도 모르게 그동안 쌓아왔던 울분이 솟구쳤어요. 그래, 이대로는 안 되겠어. 오늘은 반드시 내가 성공하고 말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어금니도 꽉 물고 천천히 차를 자리가 가장 많은 주차라인 쪽으로 몰고 갔어요.     


비장하게 기어를 후진으로 넣고 갓 태어난 아기를 만지는 것 마냥 아주 조심스럽게 핸들을 돌렸어요. 돌려, 돌려, 돌려, 드디어 제가 정한 주차칸에 제 차가 엉덩이를 들이밀었습니다. 됐다! 이제 이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핸들을 다시 반대로 돌려 돌려 바퀴를 똑바로 하고 서서히 들어가는데.. 삐삐 삐삐, 삐삐 삐삐, 뭐지? 아직 여유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나는 초보운전이니까 차를 잠시 세우고 내려보자. 아니나 다를까 트렁크와 가드 사이에는 우리 딸이 반듯이 눕고도 남을 만큼의 공간이 남아있었습니다. 뭐야. 센서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사실 그동안은 삐삐 삐삐 소리를 들을 일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전방주차만 가능한 초보운전이었으니까요. 전방으로 주차하면 아무리 앞쪽 장애물에 가까이 다가가도 센서가 울리지 않아요. (제차만 그런지도, 요즘 나오는 새 차는 혹시 전방에도 센서가 울리나요?) 그래서 더 촉각이 곤두섰어요. 삐삐 삐삐 소리가 아주 다급해질 때까지 천천히 후진을 했어요. 그리고 정지. 와! 내가 후방 주차를 해내다니! 세상에나 세상에나! 하고 내렸는데..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분명 제가 지정한 주차자리에 잘 집어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의도한 자리와 그 옆자리 중간에 떡하니 자리 잡은 게 아니겠어요? 이럴 수가. 망했다. 보통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지 않는 시간이었으니 망정이지, 혹여나 퇴근시간이었으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해도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하긴, 퇴근시간이면 시도조차 안 했을 것이지만요.     


여하튼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어요. 급하게 다시 시동을 걸고 차를 앞으로 뺐습니다. 원래 주차하려고 했던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신중에 신중을 기해 돌렸어요. 충분히 갔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반대방향으로 핸들을 돌려 차를 바퀴를 똑바로 하고 후진 시작. 사이드미러를 보니 이제는 진짜 들어간 것 같았어요! 이제 됐다. 나는 초보운전이니까 두 번 만에 성공한 것도 대단한 거야. 하고 내려보니 정말 기가 막히게 주차를 해버렸습니다.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운전석 쪽에 주차라인과 제 차 사이에 겨우 1cm 정도 간격을 두고 주차칸에 들어간 거예요.   

  


고민에 빠졌어요. 지금이라면 다시 한번 차를 앞으로 빼서 칸의 중간쯤으로 차를 옮겨놓았겠지만, 그때는 그럴 용기가 도저히 안 났거든요. 유일한 구원투수인 남편이 퇴근하려면 3시간이나 남은 시점. 저는 어쩔 수 없이 차를 그대로 두고 집으로 올라옸어요. 제 차의 운전석 쪽 옆 주차칸에 차를 주차한 차주가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제 욕을 얼마나 했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수명이 팍팍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다음날 아침,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다행히 제 차 양옆 주차칸은 다 비어있었어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그때는 운이 좋았구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침에 육아시간을 써서 남들보다 1시간씩 늦게 출근하기 때문에 마주한 상황이었어요.      


그 후로 저는 조금은 느리고 서툴지만 꾸준히 연습을 했고 드디어 제 나름대로 편안하게 후방 주차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물론 한 가지 전제를 두고 말이죠. [주차칸이 최소 두 자리 이상 남아있어야 한다는 거죠.]       


아직도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함을 느껴요. 언젠가 아는 엄마들과 키즈카페를 간 적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애매한 시간에 갔더니 역시나 주차자리가 없었어요. 주차장을 두 바퀴째 돌고 있는데 제 앞에서 차가 빠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오 마이 갓! 저걸 잡아야 하는데.. 한자리만 비었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 네 잎 클로버만큼이나 귀한 기회를 놓칠 수 없어! 하고 후방 주차를 시도했어요. 하지만 제가 움직일 때마다 삐삐 삐삐 거리는 센서 때문에 너무 겁이 났어요. 결국 한 대여섯 번 꿈틀꿈틀 하다가 결국 저는 그 자리를 제 뒤차에게 내주고 말았어요. 그때의 허탈함이란! 진짜 허탈해서 화가 날 정도였어요. 초보운전의 비애ㅜㅜ.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절로 나네요.     


시간이 흘러 흘러 저 날의 허망함이 잊혀 갈 때쯤, 남편이 출장으로 인해 집을 며칠 비우게 되었어요.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아이들과 주말에 유원지를 다녀왔어요. 그런데 그날도 무엇에 홀린 듯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지요. 시간이 시간이니만큼(저녁 6-7 사이) 주차장에는 차가 꽉 차있었어요. 하지만 저의 의지도 꽉 차있었어요. 날이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바깥 주차장에 차를 댈 엄두가 안 났던 것이죠. (그날 바깥에 주차했으면 차 실내온도가 38-41도에 달했을 거예요.)      


지하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주차자리가 보였어요. 아싸! 그런데... 한. 자. 리. 또 극심한 고민에 빠지게 된 초보운전자. 하지만 시도해보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그 자리가 왼쪽은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오른쪽은 기둥이었거든요. 기둥 쪽으로 최대한 붙여서 시도하면 되지 않을까, 남의 차만 안 건드리면 되지, 내 차는 혹여나 긁게 되면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지 뭐, 하고 차의 엉덩이를 서서히 들이밀기 시작했어요. 옹? 근데 한방에 주차가 된 거 아니에요!? 그것도 내차, 남의 차 하나도 안 긁고! 오오오오오오오...! 나 이제 한 칸에도 주차할 수 있는 건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그때 그 기분이란!     


그렇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요. 전 여전히 양 옆에 남의 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한 칸 자리에 후방 주차를 하지 못해요. 그래도 한쪽에 남의 차가 있고 한쪽에 기둥, 나무, 보도블록, 길이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점점 발전하는 초보운전자입니다!      


거의 40년 가까이 살면서 내 생에 운전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아무리 먼 곳으로 발령이 나도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다녔던 저예요. 하지만 어느새 운전을 하고 다닌 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절대 못할 것만 같았던 후방 주차도 주차칸 2개 이상이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었죠.      


이제 저의 소망은 주차자리 한 칸만 있어도 능숙하게 주차를 하는 거예요. 흔히 말하는 휙 훅, 즉 한방에 깔끔하게 주차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좋아요. 그저 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훅 올라갈 것만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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