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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11. 2022

회식의 자유를 달라!

Feat. 평행주차

그날, 제 어깨에는 한 껏 힘이 들어가 있었어요. 


밤늦은 시간, 남편에게 오롯이 육아를 맡기고 실컷 놀다 왔으면서 뭐가 그리 당당했냐고요!? 한번 들어보세요. 

     

운전을 이론으로만 알던 시절에는 주차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그냥 운전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죠. 그런데 운전의 8할은 주차였어요. 아무리 차를 잘 끌고 다녀도 목적지에 도착해서 주차를 못하면 말짱 꽝이었죠. 왜 사람들이 주차공간에 그렇게 연연할 수밖에 없는지 직접 차를 끌고 다니면서 체감했어요. 제 경험상 가장 쉬웠던 주차는 전방주차였고, 후방 주차는 난이도 中, 가장 고난도는 바로 평행주차였어요. 바로 그 평행주차를 못해서 저는 회식하는 날이면 남편 눈치를 살살 봐야 했죠.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세대수가 굉장히 많아요. 약 천 세대 정도 되죠. 뜬금없이 웬 세대수 자랑이냐고요? 자랑이 아니고 잘 들어보세요. 세대수가 많으면 그 아파트 단지에는 또 뭐가 많을까요? 맞아요. 차가 엄청 많아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 가정에 차 한 대가 거의 국룰(신조어: 국민 룰,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해진 규칙 - 네이버)이었는데 요새는 성인 한 명당 차 한 대가 일반적인 것 같아요. 저희 집만 해도 성인 두 명에 차가 두대니까요. 그래서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이냐. 바로 주차자리가 매우 부족하다는 거예요.      


평소에도 6시만 넘으면 거의 주차할 공간이 없어 서서히 평행주차하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리고 8시 9시가 되면 주차공간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지하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여러 개의 단지 중에 유난히 제가 살고 있는 단지가 주차공간 부족하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늘 회식이나,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에는 마음 한편이 무거웠어요. 제가 도착할 시간에는 당연히 주차자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사회생활을 안 할 수 있나요? 사적인 모임이야 융통성 있게 줄인다 하더라도 공식적인 회식은 빠지기가 어렵잖아요. 요새는 코로나 덕분에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아예 없어지진 않았으니까요.      


하루는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어요. 술을 안 마셔서 직접 차를 끌고 집까지 왔죠. 하지만 이미 입구에서부터 망(亡)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SUV로 보이는 차의 뒷모습이 주차장 입구 쪽으로 살짝 삐져나와 있었거든요. 아.. 완전 꽉 찼구나.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진입한 주차장. 저의 예상은 적중했어요. 정말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어요. 말 그대로 꽉꽉. 어쩔 수 없이 통로에 차를 떡하니 주차해놓고 집을 향해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어요. 늦은 밤이라 통행하는 차량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지만 혹여나 있으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으니까요. 1분 1초가 아쉬워 죽겠는데 엘리베이터는 또 왜 이렇게 안 내려오고, 내려오자마자 빛의 속도로 탔건만 올라가는 건 또 왜 이리 거북이 같이 느껴지는지 마음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요. 억겁의 시간같이 느꼈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집에 도착했어요.     


"남편! 남편! 일어나 봐!"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던 남편은 쉽사리 일어나지를 못했어요. 지금이야 퇴근해서 아이들 육아까지 하느라 얼마나 피곤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 제 머릿속에는 오로지 지금 통로 한가운데 서있는 제 차를 빨리 옮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남편을 닦달했죠. 짜증이 잔뜩 난 저의 남편은 인상 쓴 얼굴로 저를 한번 보더니 차키를 받아 들고 터벅터벅 나갔어요. 그리고 10분 뒤, 터덜터덜 들어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죠. 철부지 초보운전자는 고맙다는 마음보다 안심되는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마음에 제 방으로 들어갔고요. (이 글을 빌어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마워 남편.)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저 스스로가 너무 피곤했어요. 그래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죠. 평행주차를 시도해볼까? 아니면 다음날 좀 번거롭더라도 다른 단지에 세워볼까? 아예 술을 마셔서 대리를 부를까? 수많은 방법들이 머릿속에 퐁퐁 떠올랐지만 하나같이 다 썩 내키지 않았어요. 일단 평행주차는 해본 적이 없고, 1분이 아쉬운 아침에 그리고 이 더운 날씨에 10분 이상을 걸어서 다른 아파트 단지에 주차한 차까지 간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혀왔고, 매번 대리를 부르는 것도 돈이 아쉬웠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원망의 눈빛을 받는 것도 더 이상은 싫었거든요. 저의 선택은 1번이었어요.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평행주차. 이 참에 혼자 익혀보자 싶었죠. 그리고 찾아온 운명의 그날. 모임이 있었던 저녁. 시간은 밤 9시를 갓 넘어가고 있었어요.      


콩나물시루 같이 꽉 찬 버스의 확장판인 양, 그날도 주차장은 어김없이 밤이면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괜스레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혹시나 이 밤에 야간 드라이브를 간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소망이었죠.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 였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제가 사는 아파트 동 앞 통행로로 들어섰습니다.     


브레이크를 지그시 밟고 사방을 둘러보니 통행로 가장 앞쪽에 제 차가 들어가면 딱 맞을 만한 평행주차 자리가 보였어요. 좋았어. 저기다. 딱 기다려. 너로 정했다. 긴장을 많이 하니 혼잣말이 마구마구 나오더군요. 슬금슬금 이동했어요. 그동안 곁눈질로 평행주차의 달인인 남편이 하는 것을 지켜본 터라 일단 흉내나 내보자는 마음으로 차를 앞으로 쭉 뺐어요. 그리고 방향감각이 없으니 양쪽 다 돌려보자는 심사로 핸들을 슬쩍슬쩍 돌려가며 후진하니 어느 방향으로 돌려야 할지 대충 감이 오더군요. 그래서 그 방향으로 살살 핸들을 돌리며 후진했어요. 그런데 가끔 지나 칠 정도로 예민한 후방 센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삐삐삐 울리는 게 아니겠어요.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이제 더 이상 계획에도 없는 애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후진을 시작했어요. 다행히 후방카메라 보는 감각은 조금 있었기에 아무리 센서가 울어대도 뒤차와 부딪히지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어요. 어느 정도 주차가 성공한 듯한 느낌이 들어 당당하게 중립에 기어를 넣고 내렸습니다.      


"와, 나 아무래도 주차에 소질 있나 봐."     


성공의 기쁨에 흠뻑 취해 당당히 내렸어요. 그런데... 두둥. 이럴 수가. 다시 보니 평행주차를 하긴 했는데 옆으로 바짝 붙이지를 않아서 뒤차보다 제 차가 무려 반이나 통행로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     


당당히 펴져있던 어깨는 금세 쭈그러졌어요. 그럼 그렇지. 무슨 자신감으로 한 번에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어휴. 누가 볼까 봐 얼른 다시 운전석에 앉아 다시 차를 앞으로 쭉 빼고 핸들을 돌려 후진, 조금 더 붙었지만 이걸로는 모자라! 다시 쭉 뺐다가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 후진, 그렇게 한 4-5번은 한 것 같아요. 진땀 빠지게 반복했건만 결과는 아까보다 쪼끔 나아졌을 뿐이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진이 빠져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갑자기 한 번만 더 해보자! 하는 오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아주 과감하게 앞으로 더 쭉 빼서 핸들을 돌려 훅 후진했어요. 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훅! ("훅"이라고 표현했지만 어디까지나 초보운전의 소심한 훅!이었어요^^;)     


그리고 "에라 모르겠다. 나는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으로 반쯤 체념한 채로 너털너털 내렸는데..     


이럴 수가!     


차가 조금 비뚤어지긴 했지만 거의 정확히 평행으로 주차가 된 거예요! 오. 마. 이. 갓. 하하! 기분이 5G 속도로 좋아졌어요! 집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남편을 깨우지 않고 씻고 나오니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였어요. 하하하하.      


하지만 인생이 이렇게 술술 풀리기만 할까요? 그 후로도 저의 평행주차 고군분투는 계속되었고 어떤 날은 운 좋게 성공! 어떤 날을 하다 하다 안 되겠어서 결국 다른 단지에 주차하기도 하고 그것도 안되면 별수 없이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해요. 그래도 한결 줄었어요. 남편을 부르는 횟수가. 옛날에는 회식이나 모임을 하는 날이면 100% 남편에게 의존해야 했지만 지금은 약 20% 정도랄까요?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죠? 제가 평행주차를 처음 성공했던 날 이 속담이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올랐어요. 어차피 운전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피할 수 없었을 평행주차! 계기가 어찌 되었든 하루라도 빨리 도전했던 것이 저에게는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마음 편하게 자유부인(육아에서 벗어난 부인)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요? 흐흐. 앞으로 더 완벽한 평행을 위해 연습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건 계속하다 보면 시간이, 그리고 꾸준함이 이루어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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