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un 24. 2022

코로나가 준 선물(2)

생각보다 괜찮았던 아이 꿈 키트(2)

https://brunch.co.kr/@jsmbja/558

둘째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무서운 순간들 중 하나이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전에는 열이나도 해열제를 동반하여 아이들을 등원시켰지만 이제는 보낼 수가 없다. 다행히 열이 난 시점이 목요일이라 남편과 둘이 번갈아가며 연가를 쓰니 주말이 왔다. 그리고 증상이 완전 다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열은 거의 잡힌듯하여 어찌나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딘가로 놀러 갈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목이 부은 것이 조금 가라앉긴 했지만 무리하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주말은 방콕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좋은 날씨에 집안에만 있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아이들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좁은 집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뛰고, 싸우는 등 아주 할 수 있는 건 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자 알아서 놀면 좋겠건만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 자꾸 나와 아빠를 찾는다. 엄마, 이거 해줘. 아빠 이거 줘. 엄마 이거 같이 하자. 아빠 이것 봐줘. 어쩌고저쩌고.


날도 우중충하고 습도도 너무 높아 불쾌지수도 높은데 자꾸 불러대는 통에 티브이를 틀어줘도 그때뿐이다. 진짜 눈 딱 감고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보여줄까 싶다가도, 양심이 쿡쿡 찔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아주 잠시뿐이며 쓰레기가 엄청나게 발생할 것을 알지만 꺼냈다. 아이 꿈 키트.


저번 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이 꿈 키트가 시간차를 두고 두 박스가 배달이 되었다. 그중에 코인 티슈 애벌레와 화산 폭발을 제외하곤 다른 것이 들어있었는데, 두 번째 박스가 온날 몬스터 만들기 키트를 해보았다.

평소에도 사부작 거리는 걸 좋아하는 우리 딸에게는 딱 안성맞춤이었던 몬스터 만들기 키트. 사실 키트 이름에 비해서는 별거 없었다. 클레이와 끈, 솜뭉치, 눈 모양 스티커로 키트 이름 그대로 몬스터를 만드는 것이다. 누나를 따라 꼼지락꼼지락 만들기를 시도하던 우리 아들은 아니나 다를까 금방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 딸만 또 신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아들도 꽤 그럴싸한 몬스터를 만들어 냈는데.. 짜잔!

몬스터치곤 너무 귀여운 게 함정이지만 그래도 훌륭하다. 우리 아들. 우리 딸은 한참을 만들더니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클레이가 너무 작은 용량에다가 색도 두세 개밖에 안 들어있어 집에 있던 클레이를 뜯어 같이 사용하게 하였다. 생각보다는 괜찮지만 빈틈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계속 든다. 검색해보니 다 시중에서 실제로 파는 것이던데, 실제 팔 때도 이렇게 필요한 물품들 중에 하나씩 빠져있다면 굳이 내 돈을 주고 이 키트를 살 것 같지는 않다.)

1초 컷이라는 말을 아마 많은 이들이 알 것이다. 이 키트는 1초 컷까지는 아니지만 한 10분-15분 정도 컷 되시겠다. 우리 아들 같은 경우에는 5분 만에 흥미를 잃었고 우리 딸은 평소 만들기를 좋아함에도 15분 정도 지나니 후루룩 만들고 자리를 떴다. 그래도 15분이면 양호하다는 걸 나는 이 키트를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바다 만들기 키트.



바다생물 피겨가 많이 들어있어 내심 우리 아들이 기대했을 것 같은 바다 만들기 키트는.. 결과물만 예뻤던 키트이다. 우선 이 키트에도 색소가 빠져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가정에 색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도대체 색소가 빠져있으면 어쩌란 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바다 만들기 키트인데 색소 없이 투명하게 하면 이게 도대체 바다냐고. (부제목이 생각보다 괜찮았던 아이 꿈 키트인데,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ㅎㅎ) 그때 내 머릿속에 뭔가 번뜩 생각났다. 그건 바로 바다 비누 만들기 키트!


몇 달 전에 어느 홈페이지 이벤트에 당첨된 바다 비누 만들기 키트가 집에 있는데, 그곳에 파란색 색소가 있었다는 게 생각난 것이다. 그래서 그 색소를 가지고 와서 본격적으로 바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젤라틴과 뜨거운 물과 색소를 섞은 다음 한 시간을 굳혀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일단 섞어보자.

처음에는 아빠가 설명서에 쓰인 양만큼 섞어서 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묽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상의하여 젤라틴을 더 부어서 나무젓가락으로 녹이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후각이 엄청 예민하다.) 섞으면 섞을수록, 젤라틴이 녹으면 녹을수록 우리 아들 표현을 빌자면 응가 냄새가 점점 더 심해진 것이다. 결국 거의 다 녹았을 때쯤 아이들은 거의 도망치듯이 젤라틴 물에서 멀어졌다. 음. 아직도 이유는 알 수 없다. 젤라틴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랬던 것인지, 색소와 젤라틴이 안 맞았던 것인지. 그래도 색소 덕분에 아름다운 애메랄드 색의 바다 바탕이 만들어졌다. 좀 식힌 후 냉장고에 넣었다. 넣고 나니 또 할 것이 없어졌다.


활동적인 우리 아들은 나가서 킥보드를 타거나, 나뭇가지를 찾거나 열매를 찾는 놀이들을 좋아하는데 계속 집에만 있으니 너무 지루했는지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소파에서 뒹굴, 방방에서 뒹굴, 자기 자는 방에서 뒹굴. 진짜 뒹굴거리기만 했다. 그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결국 놀이터로 향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안 나가겠다고 찡찡대던 우리 아들. 놀이터에 나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킥보드를 타고 날아다녔다.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운동신경이 좋은 우리 아들은 두 돌 때부터 킥보드를 탔는데 보는 사람마다 놀랄 정도로 잘 탄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킥보드를 타고 속도를 내다가 멈춰야 할 때면 킥보드에 올려져 있는 왼발 말고 오른발을 직각으로 세워 신발 앞창으로 바닥을 긁으면서 선다는 것. 그래서 신발들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나마 브랜드 있는 운동화들은 조금 버텨주는데, 그렇지 않은 천신 발이나 샌들은 앞부분이 너덜너덜해져서, 가장 아끼던 공룡 신발은 사서 신은지 대여섯 번 만에 앞에 구멍이 뚫리기 직전까지 갔다. 누나가 아무리 킥보드 뒷바퀴 위에 판을 밟으면 멈춘다고 설명을 해줘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지 아직까지도 오른발을 직각으로 세워 신발 앞창을 희생시켜가며 멈춘다. 아들아. 어차피 신발을 한철밖에 못 신는데 굳이 그래야겠니? (ㅠㅠ)


머리가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놀고 들어오니 젤라틴이 탱탱하게 굳어있었다. 기분 좋게 꺼내 키트 안에 포함되어있던 자갈과 피겨들로 꾸며주는데, 우리 딸이 외쳤다. "윽! 똥냄새!"... 그랬다... 키트 설명서에는 바다를 만들어준 후 탱탱한 젤라틴을 조물거리며 오감놀이를 하라고 나와있었지만 조금만 만져도 지독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결국 아들 한번 딸 한번 바다 모양을 만들어주고 이 키트는 명을 다했다.

이 글을 쓰다 문득 저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만들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바다생물 피겨들만 다 빼서 비누로 박박 세 번을 씻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잘 닦아서 냄새를 맡아보니 비누향만 나길래, 아이들 장난감 통에 은근슬쩍 넣어놨다. 아이들이 발견하면 반응이 어떨까? 발견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내가 기억해서 앞으로 남은 두 달여간의 여름 동안 물놀이를 갈 때마다 챙겨가면 되니까. 집에서는 별거 아닌 장난감도 밖에만 나가면 아이들은 참 잘 가지고 논다. 같은 맥락으로 집에서는 잘 안 입는 옷은 물놀이 갈 때 여벌 옷으로 가져가면 군말 없이 참 잘 입는다. 하하하.



마지막으로 들어있던 키트는 바로 드로잉 북이다. 다온이 친구가 놀러 왔을 때 같이 하고자 했지만 시간이 늦어서 못했던 드로잉북. 오늘 게시했다. 짜잔.

동봉된 사인펜으로 그리고 물티슈로 지우면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드로잉 보드였다. 그런데 우리 딸이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물었다.


"엄마, 물티슈 있어?"

"아니"

"그럼 어떡하지?"

"수건에 물묻혀 닦아"


그렇다. 우리 집은 물티슈를 잘 안 쓴다. 없는 것도 아니고 아예 안 쓰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 불가피하지 않다면 쓰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 딸은 이번에도 가제수건에 물을 묻혀 닦고 그리고 닦고 그리고를 반복했다. 물티슈를 생각하면 참 고민이 많아진다. 우리 집에서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물티슈를 안 쓰지만 주변에서는 물티슈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데, 딸이 점점 클수록 시야가 넓어질 것이고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는 것이다. 나의 뜻을 이해해줘서 커서도 물티슈를 안 쓰면 좋겠지만 쓰는 삶을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에 100%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딸이 이 키트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나중에 친구가 놀러 오면 그때 더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공룡 화산 폭발 놀이!

아들 앞으로 온 키트는 그냥 화산 폭발이었는데, 딸 앞으로 온 키트는 "공룡 화산 폭발"이었다. 다행히 우리 딸이 공룡 피겨에 관심이 없어서 이 키트는 우리 아들 몫이 되었다. 사실 내가 직접 해주지를 않아서 원리는 모르겠지만, 저 스포이드로 "산성"물질을 넣어주면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설명서에 따르면 공룡들도 다 세워놓고 해야 하지만 공룡에 흙이나 산성 액체가 묻는 것이 너무도 싫었던 우리 아들은 기본 세트처럼 세팅해놓고 화산 폭발을 즐겼다. 실험이 금방 끝나는 것에 비해 재료들이 많이 남아서 나중에 계란판에다가 색소를 섞어서 화산 폭발 놀이를 한번 더 해줄까 싶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결국 걸렸으니 이에 대한 실망감은 접어두고라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영유아들을 위해 특별 예산을 편성해 "아이 꿈 키트"를 잊지 않고 보내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키트 구성품에 약간의 허점들이 있어서 곤란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실험을 해보고 만들어보고 그려보고 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나라도 더 해보고, 한 번이라도 더 웃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불평만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줘서,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해주어서, 조금 많~이 늦었지만 잊지 않고 배송해준 것에 대해서. 앞으로 이런 기획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정치인들이 진짜 시민들을, 도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눈곱만큼이라도 체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 여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