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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08. 2022

돌리고 돌리고!

핸들을 돌려라~!


어어어어어!!!!!!!!!!! 뭐 하는 거야!!!!!!!!!!!!!!!!!!!!     


엄청나게 크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가뜩이나 너무 긴장해서 핸들을 쥐고 있는 두 손에 땀이 나고 있는데 들려온 질책의 목소리는 저를 울컥하게 만들고 말았죠.     

뭘!!!!!!!!!!!!!!!!!!!!!!!!!!!!!!!!!     


남편 목소리 못지않게 큰소리로 응수하긴 했지만 사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평소에 큰소리를 내지 않는 남편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는 건 제가 분명 무언가를 잘못했도 크게 잘못했을 거라는 의미였거든요. 그리고 바로 날아든 남편의 팩트 폭행.     


좌회전 신호도 안 들어왔는데 무턱대고 핸들을 돌리면 어떡해!
저 맞은편에 차가 오고 있었잖아!     


파란만장한 초보운전자에게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아이들과 함께 맞이하는 주말은 눈을 뜨자마자 고민이 시작돼요. 오늘은 어딜 가야 할까, 어딜 가지 못하면 아이들과 무얼 해야 할까. 정신은 들었지만 눈은 다시 감은 채로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 순간, 한 장소가 떠올랐어요. 집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루지체험장이었어요. 비록 둘째는 키도 안되고 나이도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루지를 타지 못하지만 다행히 그곳에는 루지뿐만 아니라 놀이기구도 몇 개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첫째가 아빠랑 루지 타는 동안 저는 둘째와 놀이기구를 타든, 뛰어다니든 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남편에게 거기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알겠다고 해서 기분 좋게 출발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제가 혼자 운전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는 길 운전은 평소대로 남편이 했어요. 날은 더웠지만 루지는 스릴 있었고 놀이기구도 적당히 타고나니 하루가 금세 지나가더라고요. 이 정도면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괜찮은 하루였다 싶어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차로 돌아가는 길. 그날따라 남편이 너무너무 지쳐 보였어요. 그래서 충동적으로 엄청난 제안을 해버리고 말았어요.     


여보 내가 운전할까?


지금 생각해도 참 무모했어요. 지금껏 사무실, 친정엄마 집을 제외하고는 운전을 해본 적이 없는 제가 갑자기 초행길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거예요. 당연히 남편의 반응도 처음에는 떨떠름했죠.     


"괜찮겠어?"     

"괜찮지 않을까? 여기 우리 사무실 가는 길이잖아.     

조금만 나가면 내가 매일 다니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나올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 그럼 해볼래?"     


그렇게 운전대를 잡았어요. 제가 사는 동네를 벗어난 첫 초행길이며, 온 가족을 태우고 하는 첫 운전이었어요.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그날의 운전.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하겠지만 정작 그날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퐁퐁 솟아났어요. 아마 항상 지나던 길이라는 생각에 근본 없는 자신감이 생겼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럼에도 겁은 났는지 두 아이와 남편을 다 뒷좌석에 태웠어요.      


서서히 출발했어요. 주차장을 거의 기어가다시피 빠져나와 신호등 앞에 섰고 빨간불을 확인하고 멈췄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등은 초록불로 바뀌었고, 서서히 출발했어요. 그리고 그 사달이 난 것이죠. 처음엔 억울했습니다. 난 분명 초록불을 봤는데!? 뭐가 문제야!? 왜 큰소리는 내고 난리야 내가 초보운전인걸 알면서!!!!!!!!!!!!!!!!!!!!!!!!!!!!!!!!!!!!!!!!!!! 그렇지만 남편의 팩폭을 듣고 난 후 저는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죠.     


"좌회전 신호가 있었어?"

"당연하지! 저 앞에 차도 오고 있었는데 그렇게 무턱대고 회전을 하면 어떡해! 사고 날 뻔했잖아!"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좌회전 신호는 운전을 할 때 지켜야 하는 아주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그날은 운전대를 잡은 순간 너무 긴장했는지 회전(화살표) 신호라는 자체를 생각조차 못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평소에도 한 목청 하는 남편이 내지른 소리에 속도 상하고, 잘한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쳤던 것이 민망하기도 해서 아무 말 안 하고 앞만 보고 묵묵히 운전만 했어요. 그런데 뒷좌석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언제 큰소리를 냈냐는 듯 남편은 아이들 중간에 앉아서 잠이 든 거예요. 드르렁.. 드르렁...'어떻게 잠이 들 수가 있지? 생초보운전에게 운전대를 맡기고서.. 애들도 타고 있는데..'라는 생각에 기가 차기도 하고, 어이도 없었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어 더욱더 운전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무사히 친정엄마 집에 도착했고 그제야 온몸에 긴장이 풀렸어요. 그대로 소파에 널브러져 엄마에게 하소연 겸 내가 거기서 여기까지 무사히 운전을 하고 왔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니 가만히 듣고 계시던 엄마가 한마디 하셨어요.     


"참나.. 사위는 속도 좋다. 불안하지도 않나. 나 같으면 손잡이 꼭 붙들고 있을 텐데."     


그렇습니다. 제가 아주 속도 좋고 천하태평인 그런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그날 이후로 저는 좌회전 신호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 되었어요. 앞에 신호등이 있는데도 못 봤던 눈뜬장님에서 벗어나 눈을 부릅뜨고 신호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죠. 그런데 곧이어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좌회전보다 어렵다는 우회전! 한동안 우회전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따로 신호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제 방향에서 봤을 때 좌측에서 직진으로 달려오는 차량들을 주시하며 눈치껏 껴들어야 하는데 그 눈치껏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죠. 그나마도 우회전하고 바로 횡단보도가 있으면 괜찮았어요. 횡단보도 신호등이 초록불이면 보통 제가 서있는 차선의 신호도 초록불이기에 좌측에서 직선으로 달려오는 차들이 적색신호를 받거든요. 그 틈에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으면 조심히 우회전을 하면 되었거든요.     

하지만 이런 꼼수도 몇 달 가지 못했어요. 도로교통법이 개정된 것이죠. 다들 아시죠?


[우회전할 때 지켜야 할 개정된 도로교통법!]     
*우회전을 하자마자 횡단보도가 보이면 초록불이든 빨간불이든 일단정지해야 한다.
*우회전을 하자마자 횡단보도가 보이고, 초록불이면 사람이 있든 없든 빨간불로 변할 때까지 기다린다.(초록불이고 사람이 없을 때는 주행이 가능하지만, 주행을 강행하다 사고가 나면 신호위반으로 처리된다고 합니다. 고로 굳이 주행을 강행할 필요가 없겠죠?)
*우회전을 하자마자 횡단보도가 보이고, 빨간불에 사람이 없으면 일단정지한 후 출발한다.
(빨간불인데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출발 금지!)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정확히(?) 알았던 건 아니에요. 법이 개정되고 얼마 안 된 시기에는 우회전시 횡단보도가 초록불이고 사람이 지나가고 있을 때만 멈추면 된다고 알고 있어서 사람이 다 지나가면 초록불에도 그냥 주행했었어요. 제 옆 차도 앞차도 뒤차도 마찬가지고요. 다들 그렇게 하길래 저도 제가 알고 있는 게 맞는 줄 알았죠. 그런데 어느 날 친정엄마랑 얘기하다 보니 제가 알고 있는데 틀렸더라고요. 초록불이면 사람이 있든 없든 빨간불로 변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는 기다리기 시작했죠. 저는 모범운전을 지향하는 초보운전 자니까요.      


그런데 뒤에서 어마 무시한 크랙션 소리가 나는 게 아니겠어요? 누가 들어도 "왜 안가!!!!!!!!!!"라고 말하는 듯한 성난 크랙션 소리. 새가슴인 저는 너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출발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찝찝했어요. 뒤차의 크랙션 소리가 무섭다고 사고가 날 위험성을 간과하는 건 맞지 않는 선택이니까요. 그래서 그 후로는 아무리 뒤에서 빵빵거려도 전 비키지 않습니다. 물론 뒤차 운전자가 옆 차선으로 지나가면서 욕을 하진 않을까 겁이나긴 하지만요. (이미 쌍욕 한번 먹어본 초보운전자 ㅜㅜ)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었습니다. 우회전시 보이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에서 빨간불로 변하면, 동시에 제가 서있던 직진 차로의 신호등도 노란불을 지나 빨간불로 변하고 그러면 제 기준에서 좌측에 있는 직진 차량들이 출발을 하게 되죠. 말로 하니 설명하기가 참 어렵네요. 백문이 불여일견. 발그림 한번 그려볼게요.



신호등 1이 빨간불이 되면 차 신호등 2도 빨간불이 되고 동시에 신호등 3은 초록불이 돼요. 그러면 제가 우회전을 하는 동시에 차 1-4가 달려오기 시작하죠. 겨우 우회전을 한 제 차는 달려오는 차들의 기세에 눌려 차선을 못 바꿔요. (ㅜㅜ) 결론적으로 차들이 다 지나간 후에, 제 뒤에서 같이 우회전 한 차들이 제 앞으로 다 추월해서 간 후에야 차선을 바꿔서 원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죠. 초보운전의 비애가 느껴지지 않으신가요?(ㅠㅠ)     

대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차가 멈추는 것이 더 안전하긴 하지만 전지적 초보운전 관점에서는 또 하나의 시련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겸허히 받아들여요. 운전을 계속하다 보면 차츰차츰 나아질 거라 믿으니까요.      


아직도 저는 회전을 할 때면 약간의 긴장과 그동안의 습관이 합쳐져 두 손으로 핸들을 잡아요. 그리고 어떨 때는 회전각은 너무 좁아서 차 안의 물건들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가끔은 너무 커서 제 차가 도로 한가운데서 빙~도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그래서 차량이 많은 시간에는 창피하기도 하지만) 괜찮아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이렇게라도 운전하고 다니는 게 제 스스로는 너무 기특하거든요.     


얼마 전, 딸내미를 태우고 사무실로 초과근무를 하러 가는데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이제 운전 좀 잘하게 됐네?"

"응?"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나는 안 쓰러졌어"

"(ㅋㅋㅋㅋㅋㅋ)"

오늘도 초보운전은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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