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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09. 2022

여기서도 저기서도 깜박깜박

점멸등

 

"빨간불에 멈춰요~노란불도 멈춰요~초록불에 가도 된답니다~!"  


   

조금 과장해서 자는 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흥얼거리는 딸내미가 새로 부르기 시작한 노래예요. 누가 들어도 신호등에 관련된 노래인 듯한데, 노래에 소질이 있는 듯하다가도 없는 것 같은 딸내미 덕에 지금까지도 원곡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원곡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딸이 행복해하면 엄마는 그저 좋을 뿐이죠. 그런데, 딸의 노래를 가만히 듣다가 도로에서 신호등의 의미를 몰라 헤매던 제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 얘기를 풀어볼까 해요.     


때는 제가 갓 혼자 운전하기 시작했던 2020년 어느 날이에요. 조금 넘치게 긴장한 탓에 조심에 조심을 더해 운전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별 탈 없이 가던 중. 두둥.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마주하고 말았어요. 그건 바로. 노란불! 아마 이게 무슨 소리냐, 싶으실 거예요. 노란불은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빨간불과 초록불만큼 자주 보는 것인데 그게 왜 예상치 못한 장벽인 것이냐. 그건 바로 제가 운전석에서는 처음으로 황색 점멸등을 마주했기 때문이에요. 노란불이면 노란불이지 저건 왜 깜박거리는 거야!? 당황스러웠어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액셀과 브레이크 사이에서 오른쪽 발이 잠시 방황하는 동안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옆 차들은 어떻게 하나 보려고요. 그랬더니 그냥 지나가는 거 아니겠어요? 응? 그냥 가도 되는 건가!? 

    

확신이 서지 않아 옴짝달싹하고 있는데 제 뒤로 차들이 하나 둘 줄을 서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멀리서 크랙션 소리도 들려왔어요. 그래서 마음은 찝찝했지만 슬슬 출발했죠. 이 찝찝함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어요. 물론 마음 한편에서는 베테랑으로 보이는 다른 차들도 그냥 지나가니까 법적인 문제는 없나 보다, 하는 안일한 안도감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는 운전자들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불안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주차를 하고 내리자마자 폭풍 검색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점멸"이라는 단어도 몰라서 "깜박이는 노란불"이라고 검색했는데 전혀 상관없는 글들만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노란불이 깜박여요"라고도 쳐보고 "깜빡깜빡 노란불"이라고도 검색했더니 드디어 제가 그토록 찾아 해 매던 정식 용어가 나왔어요. 바로 "황색 점멸등"이었어요.      


황색 점멸등은 다른 차량과 안전지시에 주의하면서 이동하라는 의미라고 해요.


제 옆에 있던 차들이 다른 차량과 안전지시에 주의하면서 이동했는지는 모르지만 황색 점멸등을 보고 주행을 계속한 자체는 잘못된 행동이 아니었던 거죠. 이 말은 즉슨 저도 법규를 어기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죠. 그런데 점멸등이 황색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적색 점멸등도 있었어요.   

   

적색 점멸등을 보면 일단 무조건 정차를 해야 한다고 해요. 일단 정차하고 차량통행들을 잘 살핀 후 이동해야 하죠. 출처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별표 2 [신호기가 표시하는 신호의 종료 및 신호의 뜻]이에요. 그리고 점멸등에 대해 계속 검색하다 보니 적색 점멸등이 있을 때 주위 상황을 살펴보지 않거나, 정차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다가 사고가 나면 12대 중과실 교통사고로 구분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글도 있더라고요. 아마 신호위반으로 판단되나 봐요.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 잘 기억하도록 해요.      

그동안은 무심코 지나갔던 점멸등들이 제대로 공부하고 나니 눈에 너무 잘 띄더라고요. 보일 때마다 양옆을 살피면서 보행자는 없나, 다른 차량이 오지는 않나 살펴보는 게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지키고자 애를 쓰고 있어요. 시간이 더 흘러 점멸등만 보면 습관적으로 고개가 양쪽으로 돌아갈 때까지 열심히 실천해보려고요.      


더불어 이 일을 계기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어요.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행동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저는 점멸등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고 나서는 이제 더 이상 점멸등을 봐도 당황하지 않아요. 되레 "난 저 점멸등의 의미를 알아! 이렇게 하면 돼!"라는 확신에 운전이 한결 더 편안해졌죠.     


생각을 넓히다 보니 육아도 같은 맥락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처음에 아이가 친구들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받고 우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갔어요. 물론 개중에는 진짜 상처가 되겠구나, 싶었던 심한 말들도 있었지만 어떤 말들은 ("너랑 안 놀아!"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맞받아치거나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되는 말들도 마음에 담아두는 모습에 너무 속이 상했어요. 그러던 차에 육아상담을 받을 기회가 생겨 이런 상황에 엄마인 제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상담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이해가 안 가시더라도 일단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수용하고 공감해주셔야 해요.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보거나 혹은 제시해주는 것은 차후의 일이에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원하던 답이 아니라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상담을 받기로 결정한 것은 제 선택이었기에 조언대로 해보기로 했죠.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하원한 아이는 "엄마, **이가 나한테 친구 안 한다고 해서 너무 슬펐어"라고 하더군요. 답답한 마음에 화가 불쑥 나려는 걸 깊은 심호흡으로 가라앉히고 딸에게 말을 했어요.     


"딸, 너무 속상했겠다. 엄마가 딸이라도 그런 말 들으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우리 딸이 속상한 건 당연해."      


달라진 엄마의 태도에 당황한 듯한 딸은 약간 주춤거리더니 금세 울음을 멈추고 활짝 웃으며 딴 얘기를 하더라고요. 유치원에서 뭘 배웠다느니, 엄마 주려고 뭘 만들어왔다느니~금세 종알종알거리는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신기했어요. 이런 반응이 올바른 건지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엄마인 저의 달라진 반응에 스스로 침울한 마음을 떨쳐낸 것 같아 보기가 좋았죠. 그리고 바로 그다음 상담에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하셨어요. 저의 공감과 위로와 인정에 아이의 속상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은 거라고.      


이처럼 아이의 어떤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확히 모르고 그저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푸념식으로 아이에게 조언을 쏟아냈을 때는 마음이 계속 불편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상담 선생님의 방향 제시로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아이와의 관계도 더 돈독해졌어요.     


물론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걸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내가 도움받을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우선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남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자 행동하려고요. 운전도 육아도 인생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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