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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r 17. 2017

나는 엄마다. 43

나태주

어제 친정엄마가 전화를 하셔서는 대뜸 청주교대에서


나태주 시인의 강의가 있으니 가보라고 하시고는 뭐가 그리 급하셨는지


전화를 툭 끊으셨다. 황당하기도 하고 .. 갑작스럽기도 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별로 내키지가 않아서 .. 그냥 넘겼는데 ..


오전이 다 지나가고 집안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고 다온이 밥주고 기저귀 갈고


응가폭탄도 치우다 보니 자꾸 나태주라는 이름이 머리에 맴돌아서 즉흥적으로


남편에게 한시간만 조퇴하고 일찍 들어올 수 있냐고 물었다.


남편은 흔쾌히 알았다고 하자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게다가 하늘이 도왔을까, 때 마침 다온이가 보고 싶다고 오신 시어머니 덕분에


걸어서 20분은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 교대까지 남편이 태워다줘서 힘 안들이고


강의장소에 들어설 수 있었다.


교대 정문에서 내려 강의장소인 실과관까지 가면서 새삼 대학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여기서 나를 지나치는 모든 학생들이 왠만하면 나보다 다 나이가 어릴것이라고 생각하니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아줌마도 모잘라 애엄마가 되었나 싶은게


마음이 축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여튼 설레는 마음으로 강연장소 입장. 헐. 내가 1등.


맨 앞자리 앉으려다 고개가 아플것같아 둘째줄에 착석.


사실 풀꽃이라는 시만 알았지 작가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무엇보다도 제목이 풀꽃인것도


어제 처음 알았다. (이런 사람이 무슨 시를쓴다고..깝죽대나 싶다.)


한 30분을 기다려 50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들어찼고 작가님이 입장하셨다.


생각보다 왜소하고 작으신 작가님은 올해 일흔세살이 되셨다고 하셨다.


발음이 약간 어눌하셔서 알아듣기가 약간 힘들었지만 전반적인 강의내용은


긍정적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생각을 하며 좋은 일을 하며 살으라는 것.


강의 중간중간에 자작시를 읊어주셨는데 정말 하나하나 다 좋았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잘 살다 죽습니다.

내일도 잊지말고 깨워주세요"


본인 나이가 되면 잠들기전에 이런 기도를 하게 된다며 본인이 네번 죽다 살아났다는 얘기도


하셨는데.. 한번은 쓸개가 터져서 정말 죽을뻔했다고. 보통 쓸개가 터지면 십만명중에


한명이 살까말까 한다고. 자기가 그 십만명중에 한명이었다고.


그 때 투병을 하면서 지은 시가 있는데..


"얼마나 떠나기 싫었던가.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던가.

 낡은 신발과 낡은 옷이 기다리는 이곳." 이라며


아마 굳이 투병이 아니더라도 군대다녀온 남자들은 이해할꺼라고 하시니


남자청강자들만 웃었다.


유쾌하고도 진정성 있는 강의였지만 만성피로에 시달린 난 반은 듣고 반은 졸았는데


하필 두번째줄에 앉아서 너무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


특히 본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패러디가 많이 되는데 가장 황당했던건


어떤 뱀장어 집에 걸린


"자세히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뱀장어도 그렇다" 라며 본인이 뱀장어를 위해 시를 쓴건 아닌데.., 라고 하시는데


진짜 간만에 빵터졌다. ㅎㅎ


그 밖에도 탤런트 이종석이 시집을 내는데 풀꽃을 싣고 싶다며


경호원 코디 매니저 등등 열명을 대동하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얘기,


이정미(?)헌재 심판관 전임자였던 심판관이 와이프에게


"자세히 안봐도 예쁘다

오래안보아도 사랑스럽다

당신이 그렇다" 라고 와이프에게 고백을 해서 부부관계가 좋아졌다고


헌재에 가서 강연하셨다는 얘기. 등등..정말 주옥같은 얘기를 해주시는데


삶에 엔돌핀이 삭 도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강연이 끝나고 질문시간에 어떤분이 요즘은 난해한시가 인정받는 시대인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말에 시란 자고로 유명한시가 아니라 유용한시가


진짜 시라고 하시는데 극 공감했다. 한 때 나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모아논 책을 읽은적이


있는데 어떤시는 정말 멋있다 싶다가도 어떤시는 도통 정말 알수가 없는 시도 많아서


굳이 이렇게 난해하고 복잡한 시를 써야만 문학계에서 인정을 받는것인가. 궁금했는데


작가님의 대답에 답답한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언제부터 시를 쓰셨냐는 질문에 16살때 부터라고


좋아했던 소녀가 있었는데 그 덕분에 쓰게 됐다고, 근데 중요한건 아직도 그소녀는


내가 자기를 좋아했단걸 모른다고. 캬. 사실 작가님입장에선 슬픈일인데 제 3자인 나는


얼마나 그 말이멋있는지 ㅜㅜ 감동이었다.


엄마가 된 이후로 육아일기는 열심히 써도 시는 잘 안쓰게 되고 (떠오르는게 없어서..)


맘카페는 자주가도 활동하는 문학동호회는 잘 못들어가는데,


그래서 한편 우울했던 나날들인데.. 감성도 충전하고 기분도 좋아지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빠질 수 없는 인증샷.


마지막까지 풀꽃같던 나태주시인.


청강자들이 싸인해달라니까 계단에 풀썩 앉아 펜부터 꺼내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시도 시지만 이런 풀꽃같은 시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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