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리듬, 그리고 공간

by cochise barber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긴 호흡을 요구한다.
어떤 날은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다 쓰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몸으로 하는 일이다.
몸이 곧 내 생계이고, 내 도구이며, 기술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무리하면 안 된다.
특히 손가락, 손목, 팔 그리고 목.
하루 종일 같은 자세와 미세한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작은 통증 하나가 몇 년 뒤에는 큰 균열이 될 수도 있다.
장비는 고치면 되지만, 몸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가장 먼저 관리해야 할 것은 언제나 ‘나’다.

육체를 단련한다는 건 단지 근육을 키우는 일이 아니다.
육체가 단단해지면 정신도 자연스럽게 또렷해진다.
몸의 균형이 바로 서면 마음도 그에 맞춰 조용히 정렬된다.
이 일은 손끝의 감각만으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온몸의 힘이 안정되어야 한 올의 머리카락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쉼’이다.
휴식에는 언제나 약간의 죄책감이 따라붙지만
오래 일하고 싶고 오래 좋아하고 싶다면
멈출 줄 아는 능력이 더 큰 기술이다.
지치기 전에 멈추고, 비워낸 후에 다시 채우는 습관.
그게 내가 이 일을 오래 붙잡기 위해 만들어낸 리듬이다.
나는 이 일을 늙어서도 하고 싶다.
그러려면 잘 쉬는 것도 어엿한 기술이 된다.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면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고 무엇이 나를 망가뜨리는지가 선명해진다.
나만의 리듬을 알고, 그 리듬을 지키는 것 역시 그중 하나다.

가위질의 속도, 빗으로 섹션을 나누는 속도,
섹션을 잡고 가이드를 확인하고,
각도와 바디 포지션을 맞추는 일련의 과정.
이 모든 움직임 속에는 나만의 박자가 있다.
나는 빠른 사람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가진 속도로 한 컷 한 컷을 완성할 뿐이다.
그 속도에 나를 맞추면 조급해지지 않고,
움직임은 안정되고, 완성도는 그 리듬대로 차분히 쌓인다.
서두르면 마음이 흔들리고,
그 작은 흔들림이 전체 컷의 분위기를 흐려버린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빛의 방향, 의자의 높이, 공기의 흐름, 음악, 냄새, 온도.
이 모든 요소들이 나와 잘 맞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일을 온전히 해낼 수 있다.
불편한 공간에서는 손끝이 먼저 거짓말을 한다.
마음도 흐트러지고 기술도 흔들린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공간,
나와 리듬이 맞는 사람들 속에서 일하는 것이
결국 나를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이다.

쉼과 리듬 그리고 공간.
이 세 가지는 단순한 주변 조건이 아니다.
내가 이 일을 오래 즐기고, 오래 버티고, 오래 사랑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나만의 조용한 기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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