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순간이 있다.
예약이 들어오지 않아 하루 종일 기다림으로 흘러가는 날.
창밖으로 빛이 들어오고, 먼지가 그 속에서 천천히 떠다닌다.
그날의 첫 손님이 올 듯 말 듯, 문은 조용히 닫힌 채다.
그럴 때면 나는 괜히 도구들을 정리한다.
클리퍼의 날을 닦고, 빗살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빼낸다.
가위날은 천천히, 정성스레 가죽 위에서 닦아낸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들리는 건
바닥을 쓸 때의 사각거림, 그리고 내 숨소리뿐이다.
이런 시간은 예전엔 두려웠다.
손님이 없다는 건 곧 내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손의 감각을 되새기고, 마음을 고르게 한다.
그건 일종의 수련이다.
이 일은 화려하지 않다.
사람들은 종종 바버의 일을 겉모습으로만 본다.
멋진 음악이 흐르고, 폼 나는 유니폼을 입고,
가위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의 모습.
하지만 그 안쪽에는 끝없는 반복과 루틴, 그리고 집중이 있다.
가위를 잡고, 빗을 들고,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읽어내는 일.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매일을 견뎌내는 의식에 가깝다.
똑같은 머리를 계속 자르는 것 같지만,
사람이 바뀌면 모든 게 달라진다.
머리의 질감, 방향, 두상, 얼굴의 균형,
그리고 그날의 기분까지 다르다.
같은 과정이지만,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것이 나의 일이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나의 색이 만들어진다.
처음엔 그저 주어진 일을 해내기 바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만의 호흡이 생겼다.
가위를 여는 속도, 머리를 도는 방향, 손가락의 힘 조절.
그 모든 작은 습관들이 모여 하나의 리듬이 된다.
그 리듬이 쌓여 나만의 루틴을 만든다.
루틴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그 안에서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감각이 생긴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어제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그 미세한 차이를 쌓아 올리는 게,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일은 어쩌면 수도자의 일상과 닮아있다고.
묵묵히 도구를 다루고, 작은 변화에 집중하고,
하루하루를 비슷하게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화려함은 없다. 대신 진심이 있다.
손님이 떠난 뒤의 의자에 앉으면
그날의 공기가 남아 있다.
방금 전까지 웃던 표정, 짧은 대화의 온기.
그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다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것도 루틴의 일부다.
반복이지만, 그 반복이 나를 지탱한다.
결국 나를 단단하게 하는 것은
거창한 목표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같은 일을 묵묵히 반복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다듬는 일이다.
그 시간이 쌓여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져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단단함은 내가 만든 머리의 선보다도 훨씬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