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불라에는 스물세 살
가이야가 산다

10분 남았다고. 딱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by 서현지




스리랑카에는 명예욕이 강한 왕자가 있었다. 왕자는 최고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켰고 마침내 왕인 아버지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왕자는 왕이 되었지만 금세 불안해졌다. 왕자에게는 형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왕자는 형제들의 복수가 두려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최고가 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웠다. 새 왕은 피해 망상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형제들을 처단하려 수시로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럴수록 보복의 두려움은 커졌다. 결국 왕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로 했다. 누구도 쫓아올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모두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 와중에 발견한 것이 담불라의 돌산이다. 돌산은 크고 튼튼했으며 위엄 있었다. 왕자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돌산 중 하나를 골라 꼭대기에 왕국을 건설했다. 왕국에는 집과 사원과 별관이 있었다. 모든 집은 보석으로 기둥을 세우고 금으로 지붕을 덮었다. 비싸고 화려한 왕국을 바라보며 그는 크게 만족했다. 왕자는 왕국에 '시기리야'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안에서 11년을 산다. 사자의 암석이라는 뜻의 시기리야록은 훗날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자 담불라를 먹여살리는 랜드마크가 된다.


해리는 시기리야록을 보고 싶어 했다. 나는 아니었다. 여행자를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는 부류와 최소한의 것조차 안 하려는 두 부류로 나누자면 해리는 전자였고 나는 후자였다. 그래도 시기리야는 보기로 했다. 나는 게으르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된 여행자기도 하니까. 그 안에는 시간과 에너지와 돈과 취향이 가지런히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두 개의 돌 산 중 시기리야가 아닌 쪽을 오르기로 했다. 의견은 가이야가 냈다.


"시기리야에 오르면 시기리야를 못 봐. 하지만 반대편을 오르면 시기리야를 정면으로 볼 수 있지."


어쩐지 설득되어 버렸다. 우리는 짧게 고민한 뒤 빠르게 결정했다. 선택지 앞에서 망설임이 없는 건 해리와 나의 공통된 장점이었다.


산을 오르는 건 딱 예상했던 만큼 힘들었다. 허벅지 결은 여기저기 뒤틀렸고 종아리는 자주 쥐가 났다. 나는 자꾸 숨을 몰아쉬었다. 나가는 공기는 많은데 들어오는 공기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콧구멍을 넓게 벌려 양껏 공기를 주입했는데 그럴 때마다 하늘이 핑 돌았다. 발을 헛디디지 않기 위해 긴장을 당기고 있는 건 크게 피로했다. 갈수록 발목이 덜덜 떨리는 것도 같았다. 등산은 내가 못하는 것들 중에서도 최고로 못하는 것 중 하나다.


가이야와 해리는 저만치 앞섰다. 뛰어가도 따라 잡지 못할 거리에 있었다. 그마저도 천천히 걸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호흡에 고통이 올 때마다 라임을 꺼내 냄새를 맡았다. 새콤한 냄새가 점막에 닿을 때마다 들숨과 날숨이 리듬을 찾았다. 라임은 등산 전 가이야가 쥐여준 것이다. 스리랑카 민간요법이라는데 효과가 컸다. 가이야는 내가 걸음을 포기할 때마다 도로 내려와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 눈 옆과 뒤통수 중앙을 누를 때마다 정신이 저 끝에서 여기까지 당겨왔다.


나는 마주 내려오는 서양인 여행자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었다. 그는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포기하기엔 아까운 시간이었다. 10분은 꽤 희망적인 숫자이기도 했다. 근데 어쩐지 20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계속 남은 시간은 10분이었다. 세 번째로 만난 여행자가 똑같은 대답을 했을 때 나는 와락 울고 싶어졌다. 아까도 십 분이라며! 아까 아까도 십 분이라며! 짜증이 난 나머지 한국말로 소리쳐버렸다. 한 걸음도 못 가겠는데 포기하기엔 진짜로 늦은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오래 사귀어 이제는 헤어질 수도 없게 된 상대와 억지로 결혼하게 된 사람처럼 계속 위로 위로 걸었다. 그러다 해리가 양 팔을 흔들며 소리 칠 때는 진짜로 희망이 보였다.


"언니! 진짜 다 왔어요! 좀만 더 오면 돼요!"


해리가 서 있는 곳을 깃발처럼 의지한 채 오른 다리를 올렸다. 그다음 왼 다리를 올렸다. 오른 다리를 올리고 다시 왼 다리를 올렸다. 같은 행동을 오십 번 쯤 더 반복하자 드디어 10분의 10분의 10분의 10분이 끝났다.

정상에 올라서 팔을 벌렸다. 찬바람이 화아악 쏟아졌다. 귓가에 소용돌이가 쳤다. 귓바퀴가 웅웅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팔와 다리를 양껏 벌려 몸의 많은 면으로 바람을 맞았다. 살이 접히는 부분에서 스며나온 물기가 멀리멀리 날아갔다. 이 맛에 등산을 하는 거구나. 조금은 알 것 같았지만 두 번은 절대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


"언니~ 빨리 와요!"



두 사람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숨도 고르고 인증샷도 양껏 찍은 것 같았다. 해리와 가이야가 앉아 있는 풍경은 거의 현실이 아닌 것 처럼 아름다워서 누가 배경만 오려붙인 것 같았다. 정상에서 본 첫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진은 꼭 책에 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면에는 시기리야가 우뚝 있었다. 왕자의 두려움과 안도와 고독과 안락을 안은 왕국이 있었다. 비와 바람과 세월을 정면으로 통과한 낡은 도시가 있었다. 스리랑카인들의 중심이 되어 준 보물이 있었다.

'시기리야에 오르면 시기리야를 못 봐. 하지만 반대편을 오르면 시기리야를 정면으로 볼 수 있지.'

가이야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고개를 드니 세상이 우리 발바닥 아래 있었다. 사람들은 내 발바닥 밑에서 밥도 먹고 연애도 하고 똥도 쌀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누구한테든 이긴 기분이 되었다.


가이야와는 그새 많은 것을 나누었다. 우리는 국적과 나이와 직업을 알았다. 가족관계와 연애 상대 유무와 식성과 좋아하는 색깔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가이야가 수익의 전부를 형에게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이야의 형이라는 사람은 호텔의 공동 책임자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호객 행위도 안 하고 뚝뚝도 안 몰고 투어 가이드도 안 했다. 형과 그의 부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숙소에 있었다. 말 그대로 진짜 '있기만' 했기 때문에 어렵고 더럽고 치사한 일은 가이야 혼자 다 했다. 그러면서도 영어는 형네 부부가 훨씬 더 잘 하고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았다. 뭔가 비정상적인 구조였다.


"너는 왜 혼자 일하는 거야?"


가이야는 오늘도 마당을 청소하고 호객을 나가고 뚝뚝을 몰고 시기리야로 왔다. 밥은 그 사이사이에 조금씩 먹었다. 가이야는 운전도 잘하고 사진도 잘 찍고 청소도 잘 했지만 그만큼 빨리 지쳤다.

그는 피식 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 형은 형이 할 일을 하는거고"


형이 해준다는 일들은 약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부동산을 알아보거나 계약 서류를 작성하거나 세금을 정산하는 일이 많았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부분일지 모르지만 매일 매일 열과 성을 쏟을 필요는 없는 것들이었다. 노동과 대가의 균형이 심하게 맞지 않는 부분이었다.


가이야는 어머니의 끼니도 챙겼다. 빨래도 했다. 그래도 가이야는 가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했다.


"형은 결혼했잖아. 나는 혼자고. 그러니까 형이 더 많이 가져야지."


조금 뿌듯할지 모르겠지만 많이 피곤할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사는지 와락 물어보고 싶었다. 스물셋이 짊어지기엔 무거운 하루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산을 오르는 기분이 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산 댓가로 가이야가 이루고 싶은 것은 뭘까. 많이 생각하고 물었지만 가이야는 금방 대답했다.

"내 동생 제대로 시집보내는 거."

그는 확신이 있는 눈을 했다.

"우리나라는 여자 혼자 살기 힘들어. 그리고 우리 가족은 돈이 별로 없지. 그러니 부지런히 벌어서 꼭 동생 결혼시켜야 해. 그게 내 유일한 꿈이야."

"그럼 너는. 네 인생에 너는 없어?"

가이야는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왠지 대답을 한 것 같기도 한 웃음이었다. 더는 묻지 않았다. 그래야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바람이 거세지고 있었다. 시기리야에서는 담불라의 저녁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왔다.




담불라를 떠나던 날, 가이야가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지아. 나 한국 가고 싶어."

가이야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러면 언젠가 온전한 내 건물에서 손님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건물'이라는 포인트에서 퍽 안심해버렸다. '우리 건물'이 아니라 '내 건물'이라 어쩐지 크게 좋았다. 스리랑칸이 한국으로 가기 위해선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어쩐지 가이야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도 잘 찍고 산도 잘 타고 운전도 잘 하는 호객꾼인 가이야가 인천공항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현실이 되길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떠나는 버스 안에서 가이야를 내내 생각했다. 스물셋인 가이야를. 스물셋이지만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은 그를 기도하듯 떠올렸다. 우리는 높은 확률로 다시 만나지 못하겠지만 왠지 자주 그를 응원하게 될 것 같았다. 10분 남았다고. 딱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그러니까 힘을 내라고. 누군가가 반드시 깃발처럼 서 있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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