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인이 세 개면 호구되는 나라

누와라엘리야에 도착했습니다

by 서현지



버스는 계속해서 위로 달렸다. 중부지방 산골짜기. 춥거나 서늘한 곳. 온수가 꼭 필요한 곳. 그래서 숙소비가 비싼 곳. 비싸서 여행자가 빨리 떠나는 곳. 조용하고 외로운 누와라엘리야를 향해 버스는 경사로를 낮게 돌아 위로 위로 기었다.


버스가 핸들을 틀 때마다 왼쪽 오른쪽으로 쏠렸다. 싸구려 비닐 시트는 미끄러웠기 때문에 옆자리 스리랑칸에게 자주 민폐를 끼쳤다. 가끔은 너무 깊이 쏠렸기 때문에 허벅지끼리 뜨겁게 닿기도 했다. 남자는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과한 동작으로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의도가 없었음을 주장하는 몸짓이다. 괜찮으니 편히 흔들리라 말해주고 싶었는데 영어로 표현하기엔 조금 이상한 것 같아 관뒀다. 생각해보니 한국어로도 이상한 말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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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와라엘리야는 산이다. 높은 산이다. 그래서 올라갈수록 추워졌다.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버스는 곡예를 하듯 커브를 돌았다. 나중에는 한 번에 돌리지도 못할 만큼 길이 좁아졌다. 운전기사는 가파른 경사로에 서서 바퀴를 앞뒤로 굴려 재주 좋게 공간을 만들었다. 바퀴 옆은 곧장 절벽이었다. 창밖을 볼 때마다 공포가 구체적인 모양으로 다가왔다. 버스 한 대가 벼랑으로 추락했는데 사망자 중 두 명이 한국인 여성이더라는 기사의 주인공이 될지도 몰랐다. 운전기사는 커브를 돌기 위해 50cm씩 전진과 후진을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멀미가 왔다가 갔고 갔다가 다시 왔다.


와중에도 스리랑칸들은 제멋대로 내리거나 탔다. 현지인들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마음대로 탔고 길이 아닌 곳에 예고 없이 내렸다. 움직이는 버스에서 아무렇지 않게 뛰어내리기도 하고 달리기 시작한 버스에 재주 좋게 올라타기도 했다. 나와 해리는 여러 번 놀람으로써 외국인 티를 진하게 냈다.


추워질수록 사람들은 창문을 닫았다. 몇몇은 가방에서 겉옷을 꺼내 입기도 했다. 더위에 익어있던 우리는 피부를 자극하는 차가운 감각에 깜짝 놀랐다. 배낭 깊숙이 처박힌 후드티를 깊이 아쉬워하며 자주 어깨를 떨었다. 찬바람이 피부를 쓸 때마다 옆자리 남자의 뜨거운 허벅지가 생각났다. 남자는 아직도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진심으로 말리고 싶어졌다. 버스는 코끼리 걸음으로 느리게 산을 올랐다.

숙소는 누와라엘리야에 내리자마자 결정했다. 너무 추웠기 때문에 아무 호객꾼이나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을 빠르게 후회했다. 와이파이랑 뜨거운 물이 있고 타운과도 가깝다는 말에 승낙했는데 막상 차를 타고 보니 순 뻥이었다.


"이봐! 어디까지 가는 거야? 타운이랑 가깝다고 하지 않았어?"

"다 왔어. 커브만 돌면 돼."


그가 말한 커브는 왼쪽으로 두 번, 오른쪽으로 세 번, 다시 왼쪽으로 두 번을 더 돌아서야 끝났다. 망했음을 직감했지만 일단은 참았다. 정말이지 누와라엘리야는 너무 추웠다. 우리가 이를 떨며 한껏 추워하는 동안 호객꾼들은 반팔을 입은 채 슬쩍 웃었다. 조금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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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겉으로 보기엔 살짝 낡은 것 같았지만 내부는 훨씬 낡아 있었다. 객실은 불을 켜도 어두웠고 창문은 꼭 닫아도 추웠다. 나무로 만든 소파엔 곰팡이가 자랐고 천장에는 애벌레 한 마리가 끼여있었다. 어이없는 일은 계속 일어났다. 방에 들어갔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왔다. 나는 홀딱 벗은 채 욕실에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해리가 따지러 갔다. 주인은 끝내 온수기를 고치지 못했다. 나는 체온이랑 별반 차이 없는 물로 씻고 몸살을 얻었다. 와이파이는 시그널조차 없었고 서비스로 준 수건에서는 걸레 냄새가 났다. 타란툴라 같은 거미가 침대 옆으로 기어 나왔을 때는 둘 다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사장은 하나도 안 미안한 것 같은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아픈 와중에도 힘을 쥐어 짜내 힘껏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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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니 온수는 미지근한 수준도 못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양치만 겨우 했다. 열은 내렸지만 밤에는 할 일이 없었다. 우리는 약간 더럽고 냄새나는 채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벌써 헤어지네요 언니. 엊그제 만난 거 같은데"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 밤이 지나면 나는 남고 해리는 떠나는 방식으로 우리는 헤어진다. 미리 슬퍼하기 싫지만 쉽지 않다.


해리는 목소리를 꾹꾹 누르며 음악 한 곡을 들려줬다. 해리는 그날 기분에 따라 음악을 골라 들었는데 오늘은 콜드플레이적인 느낌이었나보다. 해리의 말에 따르면 콜드플레이는 인도에 빠져산 적이 있다. 그래서 'Hymn For The Weekend'라는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인도에서 촬영 했다. 인도는 서현지에게 가장 각별한 나라였다. 해리도 당연히 아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콜드플레이의 뮤직 비디오를 엎드린 채 감상했다. 익숙한 배경 속에 크리스 마틴이 젖은 채 뛰어놀았다. 가끔은 비욘세가 희한한 옷을 입고 춤을 췄다. 비욘세는 가슴이 훤히 드러난 금빛 드레스를 입고 압사라들처럼 목과 팔로만 춤을 췄는데 장면이 너무 뜬금없어서 우리는 함께 웃었다.


"웃기죠 언니. 비욘세 진짜 황당하지 않아요?"

드러누운 우리는 이유 없이 키득댔다. 함께 웃고 있으니 조금 덜 추운 것 같기도 했다. 해리는 앞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꼭 노해리를 떠올려 달라고 했다.

"내가 가르쳐 준 노래잖아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낡은 숙소에서 그나마 하나 남겨갈 좋은 기억이었다. 해리와의 마지막 새벽은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뚜벅뚜벅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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