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해리와 하이랑카

건강하게 잘 헤어지기 위해 우리는 밥부터 먹기로 했다

by 서현지



체크아웃은 빠르게 진행됐다. 우리는 짐을 대충 욱여넣은 후 밖으로 나왔는데 주인은 뻔뻔하게도 놀란 눈을 했다. 왜 벌써 가냐고. 더 있다 가는 거 아니냐고. 너 같으면 그러겠니. 툭 뱉어 버릴 말을 간신히 참으며 방값을 계산했다. 따지고 싶은 게 수두룩 했지만 관두었다. 싸워서 얻을 것도 없었다.


봉고차는 빠르게 내리막을 달렸다. 5분 정도 달리자 다운타운이 나타났다. 누와라엘리야는 아주 작았기 때문에 벌써 웬만한 것들은 눈에 익었다. 사장은 마트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문을 열자마자 인사도 없이 뒤돌아섰다. 사장은 끝까지 시끄럽게 굴었다.

"잘 가! 다음에 또 와!"

정말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릴 뻔 했다.



길거리에 앉아 숙소를 서칭했다. 미리했어야 했지만 그 숙소에서는 와이파이는 커녕 데이터도 안 터졌다. 배낭은 길거리 아무 구석에나 던졌다. 해리가 탈 버스는 오후 늦게나 있었기 때문에 짐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했다. 내 숙소를 먼저 예약하고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해리의 짐을 맡아주기로 했다.


다운타운에는 괜찮은 숙소가 한 군데도 없었다. 고급 호텔이 두어 곳 있었지만 숙박비가 너무했다. 위치 좋은 호텔은 1박에 15만 원, 제일 비싼 그랜드 호텔은 두 배였다. 숙박비는 타운과 가까울 수록 비쌌고 멀어질수록 저렴했다. 저렴한 호텔도 진짜 저렴하지는 않았다. 누와라엘리야는 물가가 비쌌다. 1박에 5만 원으로 예산을 잡았지만 어쩌면 더 써야 할지도 몰랐다. 추울까봐 너무 껴입었더니 겨드랑이에 땀이 맺혔다. 금방 추웠다가 금방 더워지는 누와라엘리야는 이상했다. 자꾸 발음하다보니 이름도 이상한 것 같았다. 누와라엘리야. 누와라엘리야.


해리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언니, 여기 어때요?"

이국적인 느낌의 저택이었다. 가격은 1박에 4만 원. 거실에 나무로 만든 테이블도 있고 고급스러운 카페트도 깔려 있었다. 사진상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테라스랑 객실 사진도 있었다. 채광이 잘 되는 방은 보이에도 따뜻해보였다. 조금 멀긴 하지만 이 정도 숙소라면 온수가 안 나오거나 거미가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테라스가 있으니 빨래도 널 수 있고, 부엌이 있으니 라면도 끓여먹을 수 있었다. 어플에 연결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헬로우."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것 같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영어는 항상 어렵기 때문에 나는 습관처럼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짧은 영어가 더 짧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지금 타운인데요, 1인실 남은 거 있나요?"

"그럼요. 걸어오시나요?"

"걸어서 갈 수 있어요?"

"걸으면 30분 정도 걸려요"

"젠장! 뚝뚝 타고 갈게요."


남자는 왠지 크게 웃었다. 싱거웠지만 어쩐지 따라 웃었다.

남자는 뚝뚝기사에게 숙소 이름을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숙소 이름은 하이랑카다.



뚝뚝은 타운을 등지고 산으로 달렸다. 어제 숙소랑은 반대 방향이었다. 하이랑카는 딱 길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멀었다. 짐이 없었다면 넉넉히 걸어갈만한 거리였다. 타운을 벗어나기 무섭게 건물들은 사라지고 진초록 나무들이 나타났다. 나무들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옆으로 쓰러질 것 같았는데 그 사이에도 중간중간 사람이 살았다. 무너진 담장 안으로 개나 닭이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너무 말랐다. 제대로 갖춰입지 못해서 마른 게 더 잘 보였다. 가난은 지면에서 멀어질수록 구체적이고 확실한 모양으로 다가왔다.





너무 못 사는 사람들을 지나 어느 저택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작은 글씨로 적은 'Hi Lanka' 현판이 있었다. 도착해서 본 숙소는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좋았다. 저택은 앞뒤옆으로 모두 마당이 있었는데 그 중 앞마당이 특히 넓었다. 본 건물 옆으로는 조금 작은 별관이 있었다.


남자는 전화 속에서 튀어 나와 현관에 서 있었다. 그는 아주 키가 컸고 어깨가 넓었다.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 특유의 단단한 몸이었다. 고개를 꾸벅하자 그는 알던 사람을 만난 듯 큰 소리로 인사했다.


"웰컴! 반가워!"

"안녕하세요, 사장님이신가 봐요."


남자는 스스로를 히란이라고 소개했다. 풀네임은 히란 자마메스 어쩌구지만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냥 히란으로 부르라고 했다. 나는 '지아'라고 소개했다. 풀네임은 '서현지'지만 같은 이유로 지아로 부르면 된다고 했다. 해리는 여기서도 그냥 해리였다.





남자는 내 또래쯤 되어 보였다. 웃을 때마다 광대가 볼록 올라가 어쩐지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나는 하이랑카를 방문한 첫 한국인 손님이었다. 스리랑카를 여행하는 동아시아인은 적었고 한국사람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적었다. 처음 만나는 한국인 손님이 히란은 많이 반가운 것 같았다. 코리안 스페셜 프라이스라며 방값도 할인해줬다. 국적만으로 우대 받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마음이 되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할인은 언제나 좋기 때문이다.


일단 방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방도 사진이랑 상태가 같은지 봐야했다. 우리는 2층으로 안내되었다. 1층 내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는 구조였다. 층계참을 밟는 짧은 순간에도 그는 신라면이 너무 좋다고 중얼거렸다.


2층엔 방문이 세 개 있었다. 각 방문 앞에는 두꺼운 커튼이 달려 있었다. 그는 가장 안쪽까지 걸어가 문고리에 열쇠를 끼웠다. 왠지 가장 비싸고 안전한 방일 것 같았다. 객실은 생각보다 많이 넓었다. 일단 창문이 있어 내부가 훤했고 그래서 춥지 않았다. 커다란 수건도 두 개나 있었다. 보송하고 도톰한 게 좋은 냄새가 날 것 같았다. 방에는 커다란 욕실이 딸려 있었다. 핸드샤워기는 없었지만 대신에 해바라기 샤워대가 있었다. 세면대 손잡이를 올리자 온수가 쏟아져나왔다. 물이 떨어진 자리에 뽀얗게 김이 올라왔다. 하루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참 좋았을 방이었다.

최소 이틀은 묵겠다고 했다.

히란은 어깨를 으쓱했다. 웃으면서 으쓱했기 때문에 광대가 다시 볼록 올라왔다.




우리는 다시 타운으로 내려왔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단 건강하게 잘 헤어지기 위해 우리는 밥부터 먹기로 했다. 슬퍼할 에너지도 결국 먹어야 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시켜먹고 한참 떠들다가 그리고 음료수를 사 공원을 걸었다. 타운에는 빅토리아 파크라는 징그러울 만큼 큰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는 가을바람 같은 바람이 불었다. 그러면서도 햇볕은 초여름 같았다. 빅토리아 파크에는 의도적으로 키운 나무와 꽃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해리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꽃을 찍다가 가끔은 나도 찍었다. 우리는 걷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찍히며 시간을 보냈다. 빅토리아 파크는 누구와 헤어지기에는 서글플만큼 좋은 곳이었다.





이별은 항상 무섭다. 누군가로부터 분리되는 건 언제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둘이 하던 걸 혼자 하는 순간마다 나는 슬픈 마음이 된다. 해리는 좋은 동생이었고 괜찮은 여행자였다. 불평을 참는 방법을 해리는 알았다. 너무 덥거나 너무 불편하거나 너무 짜증나거나 너무 아깝고 아쉬운 순간에도 해리는 나쁜 감정을 옮기지 않았다. 함께 걸은 길도 먹은 음식도 들은 음악도 좋은 게 너무 많아 혼자가 되면 오래 슬플 것 같았다.


버스는 너무 제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우리는 길게 인사하지 못했다. 해리는 한국에서 꼭 다시 보자고 말했다. 다시 보자는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버스가 떠나갈 때까지 오래오래 지켜보다 나는 천천히 하이랑카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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