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를 개처럼 키우는 나라

당분간 늦잠은 못 잘 것 같았다

by 서현지




늦게까지 자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처음엔 히란이 방문을 두드려서 깼고 다음엔 소가 10분 간격으로 울었기 때문에 깼다. 두 번 세 번 네 번 깼다. 소 울음 소리는 정말이지 굉장했다. 소들은 몸통에서 공기를 꾹꾹 밀어내듯 굵고 길게 악쓰듯 울었다. 텍스트로 표현하자면 '음무-우우우우악!' 정도 되겠다. 이 소리는 테너의 발성처럼 진동 형태로 공간을 휘저었는데 때문에 소가 한 번 울 때마다 고막도 같이 웅- 울었다. 정말이지 팔짝 뛸 만큼 시끄러웠다.


완전히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해리랑 있을 때는 늘 일곱 시면 일어났는데. 혼자 맞는 아침은 조금 서글펐기 때문에 빈 옆자리가 싫어서라도 부러 벌떡 일어났다.


따뜻한 이불 밖으로 나오자 반팔 아래로 드러난 맨살에 소름이 돋았다. 좋은 숙소라지만 산에서 내려오는 냉기는 막지 못했다. 이불 안 팎의 온도 차가 급격했다.


고개를 숙이자 맑은 콧물이 물처럼 흘렀다. 온돌 개념이 없는 나라를 여행할 때 자주 겪는 증상이다. 한국처럼 구들을 끓여 공기를 데우는 국가는 드물기 때문에 나는 여행 중에 자주 비염을 앓는다. 드라이기를 꺼내 콘센트에 꽂았다. 이럴 때는 빨리 따뜻한 바람을 쐬어 줘야 한다. 드라이기는 머리를 말릴 때도 쓰지만 경우에 따라 히터나 양말 건조기로 쓰기도 한다. 바람을 약하게 틀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무릎과 가슴 사이에 데고 있으니 금세 따뜻해졌다. 너무 한 곳에만 데고 있으면 뜨겁기 때문에 3초 간격으로 자리를 살짝씩 옮겼다. 닭살은 금세 가라앉다. 피부에 핏기가 돌았다. 이제 욕실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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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잘 잤어?"


샤워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히란이 층계참 아래서 손을 흔들었다. 하이랑카는 히란 말고도 두 명의 직원이 더 있었다. 한 명은 나이가 많은 매니저고 다른 한 명은 주방 일을 돕는 이모님이다. 매니저는 영어를 잘 했지만 이모님은 '헬로우' 말고는 아는 영어가 없었다. 때문에 나를 보자마자 눈을 피했다. 여자 스리랑칸들은 흔히들 저랬다. 나서지 않고 수줍음이 많으며 말을 시킬까봐 티나게 전전긍긍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인사는 잘 해줬다. 이모님도 그랬다. 내가 먼저 꾸벅 고개를 숙이자 이모님도 내가 숙인 것의 반만큼만 숙이며 인사했다. 어쩐지 고개를 숙이면서 손도 같이 흔들었다. 말로 치자면 반만 존댓말인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고개숙여 인사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별관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이랑카는 메인 저택인 본관과 그 옆에 달린 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관에서 별관 사이에는 좁은 복도가 있었다. 복도에는 커다란 세탁기가 있었고 세탁기 옆으로 식재료를 쌓아두는 상자가 있었다. 메인 저택에는 개인실이나 다인실이 있고 도미토리는 모두 별관에 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도미토리에 묵었다. 도미토리는 불편하지만 저렴하고 그러면서도 재미있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히란의 말에 의하면 손님들의 대부분은 서양인이었다. 유럽권에서 제일 많이 오고 다음이 미주, 서남아시아, 동아시아 순이라고 했다. 현재로서 나는 하이랑카에서 얼굴색 다르고 영어도 안 되는 유일한 동아시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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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란. 아침에 왜 내 방에 왔었어?"

히란은 아침식사 때문이라고 했다. 하이랑카에서는 무료로 아침을 준다. 조식대가 9시에 마감되는데 내가 아직 자는 것 같길래 깨우러 왔다고 했다. 식탁에는 내 몫의 바나나가 두 개 놓여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 왠지 귀여웠다.

"고마워. 잘 먹을게."

"어디 가?"

"타운. 장 좀 보려고. 필요한 게 많아서."


어제 만났지만 우리는 서로 편했다. 히란은 나를 볼 때 마다 장난을 걸었고 나도 딱히 예의 차리지 않았다. 익스큐즈미-나 아임쏘리벗- 으로 문장을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건 편했다. 히란에게는 벌써 여러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 중 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게 제일 좋았다. 히란은 친절히 행동하면서도 약간 몸과 마음으로 물러서 있었다. 의심 많은 여행자를 안심 시킬 수 있는 적절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집 앞에 편의점 있어. 타운까지 가지 말고 거기서 사."


그러면서 히란은 수상쩍게 웃었다. 웃음을 참 듯 웃는 얼굴이었다. 하이랑카 앞에 편의점이 있었던가. 정확히 히란이 'Convenience Store'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나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편의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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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앞마당을 지나 대문 밖을 나섰다. 하이랑카 앞에는 어쩐지 송아지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송아지는 울타리 안에 갇힌 채 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었다.나와 눈이 마주치자 송아지는 길고 큰 소리로 울었다.


"음무-우우우우악!"


이 자식. 너 구나. 꼬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당분간 늦잠은 못 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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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걸어 큰 길로 나왔다. 말이 큰길이지 그래봤자 좁았다. 봉고차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가느다란 길엔 어쩐지 차도 사람도 없었다. 지나다니는 뚝뚝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타운까지 걷기로 했다. 누와라엘리야의 날씨는 여전히 이상했다. 실내는 추운데 밖으로 나오면 따뜻했다. 두텁게 껴입은 후드티가 벌써부터 부담스러웠다.

히란이 말한 편의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편의점이 있기만 하다면 타운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하이랑카에서 약간 걸어나오니 조그만 건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너무나 작았기 때문에 약간 성냥갑 같았다. 성냥갑 집은 아무거나 주워다 되는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무척 낡았다. 너무 낡아서 절대 만지지 마시고 눈으로만 봐야 할 것 같았다. 이게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가. 성냥갑 집은 반에 한 명씩 꼭 있는 존재감 없는 학생처럼 누가 '여기 가게가 있다'고 알려줘야만 비로소 눈에 띌 것 같았다.


외부를 천천히 뜯어보니 이곳이 물건을 파는 가게라는 단서가 곳곳에 있었다. 건물에는 손바닥만한 창이 있었고 창 안쪽으로는 절대 내 돈 주고는 안 사 먹을 것 같은 사탕과 콜라, 담배나 과자 등이 나름의 규칙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벽에는 복권을 판매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크고 작은 스티커들이 새똥과 함께 말라 붙어 있었다.

사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할로~"


낮고 굵은 소리였기 때문에 약간 소울음 처럼 들렸다. 깜짝 놀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소리는 가게 안쪽에서부터 깊이 퍼졌다. 머리를 숙여 창 안을 들여다봤다. 창은 한 뼘이 채 안 될 정도로 작았는데 어둠 속에서 새하얀 눈 알 두개가 나를 보고 있었다. '으악-' 눈 알만 공중에 동동 떠다니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남자가 껄껄 웃었다. 웃음소리만으로도 나는 남자가 아주 늙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어쩐지 나이테는 목소리에도 있는 것 같았다.


"아오, 죄송해요. 너무 깜짝놀라서.."

"필요한 것 있니?"

"네?"

"필요한 것 있니?"


남자는 같은 문장을 똑같이 반복했다. 따로 암기해둔 대사란 게 티가 났다. 가게 안에는 도저히 살만한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양 팔로 엑스자를 그렸다.


Convenience Store 라니.

편의점이라니.

판잣집을 등지고 도로를 걸으며 자꾸 피식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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