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는 내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중요한 스케줄이 된다
시내로 가는 길은 단순했다. 하이랑카를 등지고 오른쪽 길로 계속 걸으면 된다. 조용한 마을과 달리 타운은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에 신이 났다. 큰 차와 시끄러운 사람들, 좋은 냄새가 나는 밀가루 과자와 솜사탕. 소리와 사람 속에 섞이는 동시에 나는 조금 덜 외로워졌다. 통신사에 들러 남은 데이터를 체크하고 ATM기를 찾아 현금을 뽑았다. 수수료가 비싸기 때문에 한 번에 양껏 뽑아야 했다. 머리에 피가 돌기 시작하자 비로소 배가 고팠다. 사 먹거나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렜다.
누와라엘리야 메인 마트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지만 누구든 약간의 검열을 받아야했다. 방문객들은 입구에 가방을 맡긴 뒤 개폐 장치를 밀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유니폼을 차려 입은 가드들이 입구에 서서 이 과정을 지켜봤다. 가방을 입구에 맡기고 번호표를 받았다. 이제 입장하면 된다. 퇴장할 때는 이 과정을 반대로 하면 될 것이었다.
씨 없는 청포도와 소시지, 물, 샴푸와 스파게티면과 토마토 소스를 카트에 담았다. 누와라엘리야 마트에는 아시아 푸드 코너가 있었지만 일식과 중식만 있고 한식은 없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아시아 카테고리에서 한국은 늘 순위가 밀리는데 그때마다 나는 새초롬한 기분이 되었다. 중국식 고추기름을 사다 야채볶음을 만들까 했는데 코너에 중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 포기했다. 중국인들의 성조는 너무 높고 뾰족하기 때문에 가끔 허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언어에도 모양이 있다면 중국어는 왠지 여러 모서리를 가진 형체일 것만 같았다. 카트를 밀며 중국인 관광객들 옆을 지나치는데 어쩐지 그들이 나를 노골적으로 훑었다. 누구는 위에서 아래로 다른 누구는 아래에서 위로. 기분이 나쁜데 뭐라고 하기는 애매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매한 피해자는 늘 짜증난다.
장 본 비닐봉지를 들고 집까지 걸었다. 올 때는 내리막이었는데 갈 때는 오르막이었다. 뚝뚝을 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짐이 별로 무겁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약간 걷고 싶었다. 타운과 멀어질수록 풍경은 빠르게 바뀌었다. 비슷비슷하게 낡고 못생긴 집들이 와르륵 나타났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길 위에는 소나 강아지나 사람이 마구 앉거나 서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모양들이 모조리 그림 같아 자주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려갈 때는 30분이 걸렸고 올라갈 때는 그보다 좀 더 걸렸다. 그러는 동안 콜드플레이의 'Hymn For The Weekend'을 열 번 넘게 들었다. 비욘세가 춤을 췄고 그때마다 해리가 함께 걷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면 걸으며 듣기에 참 좋은 음악이었다. 박자가 발걸음과 딱딱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곧장 요리를 할 생각이다. 나물 반찬과 계란국을 만들어 아점을 챙겨먹고 오후엔 간식으로 소시지를 굽거나 포도를 씻어 먹을 예정이다. 기회가 된다면 히란이나 매니저나 주방이모에게 좀 나눠줘도 좋을 것 같다. 여행 중에는 내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중요한 스케줄이 된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