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철학

나는 감정이 지나치게 비대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by 서현지




조금 자고 가끔 깨면서 담불라로 이동했다.

조금 잔 이유는 피곤해서고 자꾸 깬 이유는 불안해서다. 여행을 할 때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된다. 여러 번 조심하고 반복해서 예민해진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모르기 때문에 조심하고 조금 알 때는 알기 때문에 안심할까 봐 경계한다. 여행지에서는 하나도 모를 때보다 조금만 알 때 사고가 더 자주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어설프게 용감한 사람은 나쁜 마음을 먹은 자들에게 자주 표적이 된다. 불현듯 일어날지 모를 사고가 인생을 걷잡을 수없이 해칠까 봐 나는 잠 못 드는 순간이 많다. 오래오래 잘 여행하고 싶은 나는 늘 눈을 작게 뜨고 세계를 본다.

버스는 느리거나 빠른 속도로 담불라를 향해 달렸다.


"빠진 거 없지?"

하차하기 전 배낭을 둘러멘 채 좌석을 확인했다. 큰 배낭과 작은 배낭, 여권과 비상금이 든 복대를 체크했다. 18kg짜리 배낭은 짊어질 때마다 압도적인 기분이 되었다. 본래 14kg였는데 북인도와 남인도를 거쳐 랑카까지 내려오는 동안 무섭게 불었다. 배낭에는 사계절 옷이 모두 들었다. 어떤 지역은 춥고 어떤 지역은 덥기 때문에 어느 것도 버리기 힘들었다.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담불라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지역임과 동시에 부쩍 피곤한 도시기도 했다. 호텔 삐끼, 버스회사 삐끼, 릭샤 삐끼. 시기리야를 보려 몰려든 관광객과 눈먼 호구를 잡기 위한 현지인들은 징그러울만큼 싸웠다. 호객꾼들 때문에 해리와 나는 도착하자마자 피곤해졌다. 여전히 숨이 턱 막힐 만큼 더웠다.

호객꾼들 사이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나쁘지 않은 가격에 에어컨 방을 제안했다. 방값에 호텔 픽업 비용까지 포함이었다. 릭샤 삐끼와 거하게 싸운 뒤였기 때문에 나는 와락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남자가 훨씬 덜 시끄럽게 설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방이 마음에 안 들면 여기로 다시 데려다줄게."


남자는 그다지 절박한 얼굴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자신감 있어 보였다.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은 덜 부담스럽다. 호객꾼들 중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타입이기도 했다. 우리는 남자가 끌고 온 릭샤에 올라탔다. 남자는 약간 고마운 표정을 지으며 시동을 걸었다. 선택받지 못한 호객꾼들이 현지어로 핀잔했다.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어쩐지 편했다.


남자의 이름은 가이야다. 엔진 소리가 무척 시끄러웠기 때문에 가이야는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나는 나를 '지아'라고 소개했다. 여행할 때만 쓰는 이름이다. 전화영어 할 때 만난 필리핀 선생님이 지었다. 현지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모든 이에게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자주 '히욘지'나 '형지'로 불렸다. 지아는 듣거나 말하는 사람 모두에게 편했다. 해리는 그냥 해리였다.


가이야는 우리에게 참 기억하기 쉬운 이름들을 가졌다며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해리와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반대로 불렀다.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야가 스물세 살이라는 것과 한 숙소의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덜 급해 보였던 표정과 안정된 목소리의 근거를 짐작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이야는 형과 여동생이 하나씩 있는 집의 둘째였다. 형과는 함께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숙소는 10년간 렌탈했다. 렌트비는 비쌌지만 담불라는 관광객이 많아서 괜찮았다.


가이야에게 너 참 여유로워 보인다고 칭찬했다. 왠지 그는 크게 웃었다. 가이야는 사실 호객할 때부터 무척 긴장했었다는 것과 영어를 발음하느라 잔뜩 위축됐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친절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다. 웃긴 발음으로는 쉽게 무시당했다. 무시는 참을만했지만 돈을 못 버는 것은 힘들었다. 가이야는 영어 때문에 자주 울었는데 고국에서 영어를 못해 무시당하는 현실은 자주 기가 막혔다.


가이야는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 천천히 말하면 발음이 나아졌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다. 무시당하지 않게 애를 쓰느라 정작 중요한 흥정을 못 했다. 그래서 애초에 낮은 가격을 부르고 최대한 말을 적게 하는 쪽을 택했다. 더위에 지친 여행객들에게 썩 잘 먹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언젠가 노련한 사장이 되어 있을 가이야의 모습을 나는 상상했다. 말도 잘 하고 돈도 많은 그때가 되면 가이야도 다른 호객꾼들처럼 천원 한 장에 핏대 세우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서 그렇게 됐으면 좋겠기도 했다. 왠지 그에게 꼭 왔으면 하는 미래이기도 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유럽 출신 여자 손님이 있었지만 아침에 숙소를 떠났다. 유일한 손님인 것은 좋았다. 가이야는 우리방에 새 모기장도 달아주고 바가지와 슬리퍼도 하나씩 더 주었다. 낯선 맛이 나는 스리랑카 간식도 주고 모기향도 추가로 더 챙겼다.


가이야가 안내한 방은 낡았지만 넓었다. 벽에 달린 에어컨도 쓸만했다. 더운 지역에서 시원하게 자는 것은 좋았다. 돈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행복이지만 여건이 안 되는 나라에선 돈이 있어도 못했다. 우리는 차례로 씻고 나온 뒤 모기장 안에 마주 앉았다. 듬뿍 젖은 머리카락 위로 차가운 바람이 떨어졌다.


와이파이가 약하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해리는 가족과 통화했다. 피곤한 얼굴로도 해리는 계속해서 뭔가가 괜찮다고 말했다. 잘 먹고 있다고도 했고 좋은 한국인을 만났다고도 했다. 그녀의 괜찮음 속에 포함되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노트북에 옮겼다. 옮긴 사진은 외장 하드에 한 번 더 복사했다. 매일 밤마다 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오늘자 폴더에 버스에서 찍은 셀카를 담았다. 사진 속에는 꼬질한 채로 웃는 나와 해리가 있었다. 조금 전 일이지만 빠르게 과거가 된 순간이기도 했다.


여러 번의 밤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여러 순간을 함께 했다. 라면을 나눠먹고, 연애사를 고백하고, 흥정을 하고, 이동하고, 슬리퍼를 끌며 거리를 걸었다. 해리가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감정이 지나치게 비대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배낭을 메고 돌아설 해리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언젠가 올 날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리부터 슬퍼하고 싶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미리 울렁이는 건 내가 가장 잘하는 짓 중 하나이자 고쳐야 할 버릇이기도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을 때마다 주먹에 힘을 꼭 쥐었다. 낮춰놓은 체온이 슬금슬금 오르는 것 같았다. 에어컨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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