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만 해도 몰랐지. 살게 될 줄은
스리랑카에 온 지 3일이 지났다. 콜롬보는 매일 40도를 웃돌았다. 스리랑카는 너무 더웠기 때문에 하루 종일 빵처럼 구워져지냈다. 드라이기를 입에 문 것 같이 홧홧한 날씨에 2L짜리 냉수를 끼고 살았는데 그래도 오줌 한 번 안 쌌다. 몽땅 땀으로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더운 나라에서는 요도가 할 일을 모공이 대신해주기도 한다. 물론 나도 처음 알았다.
잠은 깼지만 일어나긴 싫었다. 더위는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꽁꽁 묶었기 때문에 자주 게을러졌다. 다음 숙소는 꼭 에어컨 있는 방으로 가자고 해야지. 창문 밖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언니 일어나. 씻어."
해리가 욕실에서 나왔다. 젖은 수건을 머리에 얹은 채였다. 싸구려 호텔방에도 용케 화장실은 있었다. 샴푸 냄새가 해리의 걸음을 따라 방에 듬뿍 퍼졌다. 시계는 막 오전 일곱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형 인간과 여행하는 건 역시 피곤하다.
해리와는 콜롬보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남인도에서 해리는 인천공항에서 왔다. 카페에 동행 구하는 글을 올렸는데 해리가 맨 먼저 연락했다. 여자 여행자고 입국 날짜도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동성이랑 여행하는 건 좋다. 서둘러 친해져도 이상하지 않고 생리대도 편하게 빌릴 수 있다. 무엇보다 함께 잘 수 있다. 같이 자면 덜 무섭고 돈도 굳는다. 스리랑카는 숙소비가 비싸기 때문에 같이 자줄 사람은 특히 고맙다. 그건 해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공항에 도착했기 때문에 입국장으로 해리를 마중 나갔다.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끼리는 어쩐지 서로를 알아본다. 중국동방항공편이 도착하자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 사이에서도 피부가 유독 흰 여자가 한눈에 딱 보였다.
여자에게서는 여행을 갓 시작한 사람 특유의 보송한 느낌이 났다. 깨끗한 티셔츠와 새 배낭을 메고 있는 낯선 여행자에게 다가가 한국말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노해리 씨죠?"
여자는 긴장과 설렘이 담긴 얼굴로 대답했다.
"네, 서현지 씨죠? 만나서 반가워요."
해리는 한국에서 산 예쁜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반바지를 입어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하며 우리는 함께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것이 해리와 나의 첫 만남이다.
해리는 시간을 아끼며 서둘러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여행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IT 회사에 근무하는 해리는 연차를 끌어모아 일 년에 딱 한 번만 여행했다. 그 시간은 보름도 안 되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마음이 바빴다. 해리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 그 사이에 여러 가지를 했다. 주로 뭔가를 보거나 먹었는데 그러는 중에도 짬을 내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했다. 잠을 못 자면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자는 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다.
잔잔히 소금기가 낀 몸을 말끔히 씻고 나왔다. 그 사이 메이크업을 마친 해리가 배낭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은 3일간의 콜롬보 여행을 마치고 담불라로 이동하는 날이다. 담불라까지 직행버스가 없어 캔디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다. 이동하는 데만 반나절이 걸리는 일정이다.
헤어드라이기를 콘센트에 꽂았다. 샤워하고 나온 지 몇 분 안 됐는데 벌써 겨드랑이에 물이 베었다. 왼쪽 오른쪽 고개를 가로젓는 선풍기의 움직임을 따라 팔뚝에 닿는 공기가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를 반복했다. 덥다. 정말 너무 덥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축축이 젖은 뿌리를 공들여 말렸다.
버스에 오르기 전 터미널 근처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부터 장사를 하는 식당은 드물기 때문에 열려 있는 아무 곳에나 들어갔다. 다행히 낡았지만 동네 맛집 일 것 같이 생긴 현지 식당이 영업 중이었다. 나는 커리, 해리는 스리랑카식 볶음밥 꼬뚜로띠를 시켰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밥과 커리를 주식으로 먹는다. 한국에서 먹는 카레랑은 다른 맛이다. 스리랑카 커리는 거의 맵거나 짠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맵고 짠맛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쉽게 당황한다.
인도나 스리랑카 쪽 서남아시아인들은 감자가 들어간 알루 커리(Aloo Curry), 버터와 토마토 등이 들어가는 마크니 커리(Makhni Curry), 치즈와 시금치를 이용해 만든 초록 빛깔의 팔락 파니르 커리(Palak paneer Curry) 등을 즐겨먹는다. 커리들은 공통적으로는 향신료 맛이 뚜렷하거나 맵거나 짠맛이 강하기 때문에 맨밥을 함께 시킨다. 스리랑카에서는 길쭉하고 찰기 없는 인디카 종을 주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안남미라 부르는 종이다. 인디카 쌀은 한 입 퍼먹으면 입안에서 밥 알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래도 커리와 뭉쳐 먹으면 좀 나았다.
해리는 현지식을 먹을 때마다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니, 여기도 숟가락이랑 포크 주겠지?"
현지인들이 손으로 밥 먹는 모습을 본 이후부터다. 그럴 때면 나는 걱정 말라고, 요즘은 외국인 손님 때문에 숟가락이랑 포크쯤은 무조건 준비해둔다고 달랬다. 물론 진짠지는 나도 모른다. 스리랑카는 나도 처음이기 때문에. 다행인 것은 그녀가 그 사실을 자주 잊고 내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는 데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해리와 나는 잔뜩 매워하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외국인임을 숨기지 않고 성큼 다가가자 현지인들이 우르르 몰렸다. 버스회사에서 고용된 호객꾼 들이다. 순식간에 소음이 쏟아졌다. 나는 다 필요 없고 캔디로만 가면 된다고 소리쳤다.
"캔디! 우리 캔디로 갈 거야!"
호객꾼들이 무서운 해리는 내 등 뒤로 숨었다. 시끄럽고 열정적인 호객꾼들 사이에서 에어컨 달린 사설 버스 직원과 협상을 시작했다.
"버스에 에어컨이 있어? 확실해?"
"응! 에어컨 있고 캔디까지 직행하는 버스야"
등줄기에서 육수를 떨구던 나는 티 나게 좋아해버리고 말았다.
2,500원짜리 에어컨 버스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창문도 잘 닫혔고 바람은 추울 정도로 강했으며 무엇보다도 새 버스였다. 해리와 나는 버스에 올라 등받이에 몸을 깊이 묻으며 스리랑카의 교통비를 무럭 칭찬했다.
"해리야 대박이다. 진짜 싸."
"그치? 의자도 엄청 편해"
스리랑카가 처음인 우리는 입국한 지 3일 만에 캔디로 이동했다. 시원한 버스에서 안락한 꿈을 꾸며. 서로 만난 지 3일 밖에 안 된 사이라는 것도 잊은 채 서로의 비밀을 마구 폭로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