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부국강병(富國强兵), 그 익숙함과 이질감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데이비드는 정한론(征韓論)을 처음 주장했다고 하는 사이고 다카모리_西郷隆盛가 결국은 세이난 전쟁에서 패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결말은 일본의 신식 군대에게 사무라이들이 패하는 것이었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사라진 정한론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한론은 사이고 다카모리의 패배로 인해 실행이 된 것은 아니잖아?"


"그래, 정한론이 당시에 실행되지는 않았어. 그런데, 그 이유가 사이고 다카모리가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봐. 그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유럽과 같은 나라가 되기 위한 격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나 다 한 마디씩 하기 마련이잖아? 일본도 그랬던 거야. 메이지 정부 내부에서도 국가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는데, 정한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야."


"의견이 분분해? 이유는?"


"경제 개발과 국방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지. 이야기했듯이 사이고 다카모리와 같은 극우파 반정부 세력들은 사무라이로 대변되는 사족의 불평을 해소하는 등의 목적을 가지고 대외 팽창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의였지만, 그와 더불어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오쿠보 도시미치_大久保利通, 이와쿠라 도모미_岩倉具視, 기도 다카요시_木戸孝允 등은 일본은 공업화를 통해 경제 개발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


"이와쿠라 도모미라는 이름은 익숙한데, 누구였더라?"


"아까 이야기했잖아. 메이지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바로 일본은 이와쿠라 (Iwakura) 사절단이라는 것을 조직하여 영국과 유럽에 시찰을 보냈었다고. 그 사절단의 대표가 이와쿠라 도모미야."


1872년 이와쿠라 사절단 런던. 왼쪽부터 기도 다카요시, 야마구치 마스카, 이와쿠라 도모미, 이토 히로부미, 오쿠보 도시미치


"데이비드도 부국강병이라는 말은 들어봤지?"

"부국강병? 그건 그냥 잘 사는 나라를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냐?"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고 하면 대강 맞을 건데... 일본의 메이지 유신 전후에 가장 큰 화두가 부국(富國)과 강병(强兵)이라는 것이었어.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하던 시대에 공업을 일으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유럽의 선진 무기를 구입해서 국가 방위를 한다는 부국강병이라는 정치적 개념이 생겼어."


"그리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데.. 아니, 오히려 아주 합리적인 정책인 것 같아 보이는데 정한론과는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야?"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물론 표면적인 모양이야 다 좋게 보이게 하는 것이 정치 기술이지. 그리고 일본 메이지 정부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심각한 신경쇠약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아. 뭔가 간단치 않은 일을 마주할 때 일본 정부는 늘 전쟁 또는 전쟁에 비견될 만한 이상한 결정을 해왔다는 것을 알 거야."


데이비드는 이안이 하는 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그런 것 같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대부분 자원 확보와 영토 확장을 위한 것이었다. 꼭 전쟁이 필요했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는 대개 패배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제외하면 승리의 기억이 별로 없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는 이겼던 경험이 그런 선택을 하게 한 것이 아닐까?"


"청일전쟁을 통해서 꽤 큰 이득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애초에 왜 그런 전쟁을 일으키는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먼저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이 점에서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마주치게 되지."


"드디어 그 이름이 나왔군. 그래 그 자에 대해 좀 들어보자구."


"그는 일본의 정관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원로이자, 일본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군인 출신 정치인이었어. 두 번이나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사이고 다카모리와의 세이난 전쟁에서 친구였던 사이고 다카모리를 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도 했지. 그런 그가 1888년 12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지방 제도에 대한 조사차 유럽 순방을 했어. 그리고 그 순방 경험을 통해서 일본의 정치인들이 지금까지 맹신하고 있는 어떤 정치적 개념을 일본에 들여오게 되었고, 그것이 정한론과 아주 묘하게 버무려졌단 말이야."


"어떤 개념?"


"아까 우리가 이와쿠라 사절단 이야기를 했는데, 사절단의 한 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_伊藤博文도 만났던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정치 경제학 교수. 로렌츠 본 슈타인_Lorenz von Stein을 야마가타 아리토모도 만나게 되었지. 그리고 그를 통해서 주권선(主權線)과 이익선(利益線)에 대한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


"주권선은 뭐고 이익선은 또 뭐여?"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는 <외교정략론>이라는 문건을 각료 회람에서 발표했는데, 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어."


.... 국가의 독립과 자위의 길은 다음 두 가지에 있다.

그 첫째는 주권선을 수호하여 타국의 침해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익선을 방어하여 자국의 지형적 유리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주권선이라고 하는가. 이는 영토를 말한다.

무엇을 이익선이라고 하는가. 이는 주변국과 접촉하는 자세로서 우리 주권선의 안위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구역을 말한다.....

바로 지금 열강들 사이에서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단지 주권선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반드시 나아가 이익선을 방어하여, 항상 유리한 지형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출처 :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서승원,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그게 정확히 뭔 소리야? 주권선이 영토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익선이라는 개념은 좀 애매하네.."


"야마가타를 만난 슈타인 교수가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지.

... 현재 한반도 주변에서의 열강들의 세력 판도를 잘 봐야 할 거요.

특히,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려고 하는 러시아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오.

러시아나 청나라가 한반도를 차지하게 되면 일본까지 단숨에 침략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니 한반도는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이익선이자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이오.... "


"그래서 일본이 늘 조선은 독립국이라고 포장을 한 것이구만. 조선과 청나라와의 역사적 관계도 끊고 청이 주장하는 종주권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이유가 이것이었어. 데이비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고 보니 '한반도 팔뚝론'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어.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공감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통적으로 일본은 대륙에서 한반도라는 팔뚝이 일본을 향해 불쑥 솟아있어 그 팔뚝을 제거하지 않으면 일본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주권선과 이익선 개념의 연장이었던 모양이구만."


필립은 미국인이 그런 말은 또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신기하지만, 그것이 일본 정계의 생각이라면 신경쇠약증이 선을 넘어도 많이 넘었지 싶다.


"그래서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그 주권선, 이익선 그런 두 단어를 가지고 일본 정계를 뒤집어 놓았다는 말이야? 그리고 믿기 어렵지만 일본 국민들도 그런 생각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닌 모양이지?"


"우리가 일본에서 살아보지 않았으니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교육을 어떻게 받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봐. 그리고 어떤 교육을 받았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긴 한데,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일말의 의심도 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좀 아쉽다고 생각하지."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논리야?"


"논리는 아니고... 굳이 예를 들자면 2016년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알렉시스 두덴_Alexis Duden 교수가 아산정책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들 수 있는데... <Japanese view of Korean history>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일본인들은 한국의 대외 관계를 포함한 한국의 역사를 근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라는 렌즈를 통해 보고 있고, 유감스럽지만 일본인들은 그들도 한국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분석했어."


"응,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재미있네."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같은 사람들의 영향력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그는 일본 육군 수뇌부로서 일찌감치 중국의 국력 회복에 대해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


이안은 야마가타가 청의 이홍장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1880년대 청의 이홍장(李鴻章)은 군대의 근대적 개혁을 진행하고 있었고 청일 전쟁에서 패한 후 시모노세키에서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사실 청일전쟁이 일본의 억지로 인하여 발발한 전쟁이라는 논리를 만든 협상가였기 때문에 실제로 그를 큰 위협으로 느끼고 있었다.


"사실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유럽 순방을 하기 훨씬 전인 1880년에 이미 이웃 나라들에 대한 군사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일황에게 보냈어. 청이 면적과 인구 모두 일본의 열 배가 넘는데, 청은 이홍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고 아주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도 설명을 하면서 일본 주위에 청의 강군(强軍)이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것이 아니며, 청과 연합하여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것은 환상이고, 한국을 통제하에 두기 위해 청과 경쟁하는 것은 현실이라고 썼어. (Japan’s Modern History, 1857~1937, Junji Banno, translated by J.A.A. Stockwin, Nissan Institute/Routtledge Japanese Studies Series)”


“결국은 무력을 사용하여 청을 먼저 쳐야만 조선을 복속할 수 있다는 말이구만. 기본적으로 청을 가상의 적으로 생각하고 군비확장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기도 하고."


"맞아, 청이 일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결국 조선에 대한 우선권 유지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하는 말과 같아. 그리고 그건 일본의 이익선과 연결되면서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軍國主義)가 출현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우리와 일본의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된 것에 다름이 아니지."


이안과 데이비드의 이야기를 주로 듣고 있던 필립은 잠시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매일 충실히 살아가기도 바쁜 지금 굳이 지난 간 역사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대개 사람들은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직장에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억지로 피곤함을 억누르며 버스 정류소로 뛰어가 겨우겨우 버스의 한 좌석을 확보할 수 있을 때 잠깐의 행복을 느낀다. 오래된 거대한 역사적 서사가 어느 정도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경우는 오늘처럼 간혹 친구나 동료들과의 술자리 안주 거리가 될 때뿐이며, 당장은 버스비 1,500원과 빈 좌석이 주는 의미가 더 커 보인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소주를 자작하는 필립의 모습이 조금은 달라 보이는 이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