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로망스
AI니 팔레스타인이니 하는 이야기로 주제가 조금 바뀌었지만, 술자리에서 이 정도의 변주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반드시 시작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할 이유도 그리 크지 않다.
"자 이제 어느 정도 마셨으니 마지막 잔들 비우고 일어설까?"
"Don't start what you can't finish라고 미국 속담이 있는데, 끝낼 수 없으면 시작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런데 이미 시작하고 많이 온 것 같은데?"
"한국 속담하고 비슷하네. 하다 말면 안 하느니 못하다... 사람들이 다 비슷하구먼. 그럼 이안이가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음식이 거의 떨어졌는걸!"
셋은 청계천 변의 맥주집에 자리를 잡았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맥주가 무질서한 듯 질서를 갖춰 쌓여있는 모양을 보니 세계 곳곳의 기분 좋은 저녁 분위기가 한 곳에 모인 듯하다. 청계천을 따라 이어지는 빌딩과 거리의 불빛이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흐르며 대도시의 낮이 만들어 낸 다소 텁텁한 느낌을 걷어내는 모습도 보기에 좋다.
"미국도 이렇게 2차를 하냐?"
"그런 거 없어. 더구나 캘리포니아에서는 거의 차를 가지고 다니는데, 한국처럼 대리 운전도 없고 만약 있다고 해도 아마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있다고 해도 난 이용하지 않을 것 같어. 어떤 인간이 대리운전을 한다고 올지 모르지만 차만 가지고 없어질 것 같아서 ㅎㅎ"
"잘 알았고, 이제 이안이 이야기를 마저 들어볼까? 노가리 안주에 이안이 '노가리' 맛도 좀 보자구."
자의로 시작한 이야기가 친구들의 등 떠밀기로 마무리하게 될 모양이다. 이안은 무엇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지 생각 중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아무래도 하나의 잣대로 설명이 어려운 존재였다.
"일단, 그자의 프로필을 좀 알려줘 봐. 나는 그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지."
데이비드가 이안의 생각을 정리해 준 셈이다.
"그러자. 후쿠자와 유키치_福澤諭吉는 정계(政界)의 인물이 아니었고, 일본 국민의 교육 분야에 영향을 준 사상가로 더 잘 알려져 있어.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경응의숙), 그러니까 현재 일본 게이오대학으로 잘 알려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대학의 창립자이기도 하지."
"그럼 학자였던 모양이구나."
"학자인데, 그가 메이지 유신 당시에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상가로서 일본 국민은 물론이고 조선 사람들에게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어. 역사의 흐름이 바뀔 정도의 영향을 주었다고 봐."
"흥미롭네, 그런데 어찌 난 한 번도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거야? 필립이 너는 알고 있던 인물이냐?"
"한국 사람들은 이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도 없네. 예전 일본 만 엔 권의 모델이라는 것과 갑신정변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이지 뭐... 이안이 말대로라면 지금 시대의 학생들에게는 필요한 교육일 수도 있지. 소위 나비효과 같은 것을 거의 실시간으로 느끼게 된 세상이니, 바로 옆나라 나비의 날갯짓이 어떤 형태의 돌풍을 몰고 올지 예상을 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필립이 말이 일리가 있자. 그러니 후쿠자와 유키치 그 사람이 한 말을 한 번 들어보고 생각들을 이야기 해보자구. 드어들 봐..."
‘우리 일본의 국토는 아시아의 동편에 있지만 국민의 정신은 아시아의 고루(固陋)함에서 벗어나 서양 문명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 이웃 나라는 지나(支那, 중국)와 조선 정도다. (중략) 내가 보기에 이 두 나라는 서구 문명이 동쪽으로 전진하는 가운데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중략) 그 국토는 세계 문명국에 의해 분할될 것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의 개명(開明)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할 만한 여유가 없다. 차라리 그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하고, 지나와 조선을 대하는 방법도 이웃 나라임을 고려해서 특별히 대하는 것이 아닌, 서양인이 그들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면 된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인 것 같아? 참고로 이건 일본 시사신보(時事新報) 기고한 사설이었던 것 같은데,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실패하고 대략 100일쯤 지난 시점에 작성한 것이라고 하네."
"글쎄,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런지 애매한데 그리 좋은 느낌이 오지는 않는다." 고루, 지나. 개명과 같은 단어가 낯선 데이비드는 글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조선을 낮춰보는 시각에서 적은 글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소위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것을 중국이나 조선과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싶네."
"대동아공영이라는 것은 또 뭐여?"
"대동아공영권이라고 해서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일본 중심으로 통합하려는 제국주의적 구상인데, 표면적으로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에서 아시아를 해방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군사적·경제적 팽창을 위한 수단의 하나였어."
필립의 설명을 들은 데이비드는 대동아공영이 세계 2대 대전 중에 나온 개념이라면 후쿠자와 유키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필립의 말대로 느낌은 그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시기 상으로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맞지는 않네. 하지만 뭔가 비슷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우연일까?"
"완전히 우연이라 할 수는 없을 거야. 물론 대동아공영이라는 것이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뿌리는 그자와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이 이야기는 조금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 우선 이 글이 작성되었던 1884년으로 돌아가서 좀 보자고. 우선 맥주가 시원할 때 먼저 한 모금하고 하자... "
불콰해진 취기 탓인지 각자 취향에 맞게 고른 서로 다른 국적의 맥주병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오고 가는 모양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갑신정변은 조선의 급진개화파들이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 정책에 청국이 방해와 탄압을 한다는 것이 원인이 되어 일으킨 정변이고 결과적으로는 3일 천하로 끝났는데, 그 실행 단계에서 일본의 병력과 자금 지원을 받았지. 물론 개화파들이 조선말 실학사상의 발전에 따른 자생적인 근대화 세력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후쿠자와 유키치가 창립한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경응의숙), 즉 현재 일본 게이오대학의 유학생이었어."
"그렇다면 당연히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겠구만."
"그렇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아. 그와 접촉했던 개화파 인물들이라면 김옥균金玉均, 이동인李東仁, 어윤중魚允中, 서광범徐光範, 박영효朴泳孝, 윤치호尹致昊, 그리고 유길준兪吉濬 등인데, 이들 대부분이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유학생이자 갑신정변의 주역들이란 말이야."
"그렇다면 결국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거사가 실패한 것이니 후쿠자와도 뭔가 자신이 실패를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구먼. 그런데, 그보다 그의 사상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거야?"
"후쿠자와 유키치_福澤諭吉는 사설을 통해서 국민의 정신과 문명, 그리고 문명국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가 정의하는 문명(文明)이란 영어 ‘civilization’을 번역한 것이라고 해. 그는 문명이라는 말을 조금 더 나아가 문명개화(文明開化), 또는 단순히 개화(開化)라고 번역했다고 하지. 문명이라는 단어를 이런 의미로 사용한 것은 중국도 아니고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최초라고 알려져 있기도 해."
"그게 뭐 특별한 번역인가?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안 그래?"
"그렇지. 그런데 그의 저서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槪略), 후쿠자와 유키치 著, 임종원 譯, 제이앤씨>을 보면 조금 달라. 문명, 즉 ‘civilization’이란 라틴어 ‘civitas’에서 유래한 것인데, 국가라고 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명’이란 사회가 점차 개선되어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어. 따라서, 문명이라는 것은 야만적이고 무법적인 독립 집단이 아닌 하나의 국가 체제를 이룬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문명을 사람들의 의식이 발전하고 지식이 쌓여서 인간 생활이 발전된 상태라고 하는 문명의 일반적인 의미와는 좀 다르잖아?"
"듣고 보니 그렇군. 휴머니티의 발전에 따른 결과라기보다는 굉장히 국가 지향적이고 집단적인 시각이야.. 자연스럽지는 않은 것 같네. 그럼 나라를 문명국과 비문명국으로 나누어서 구분해야 하는데, 중국과 조선은 비 문명국이란 말이 되나?"
"대략 그런 느낌이야. 그는 문명을 야만(野蠻), 반개(半開), 문명(文明)의 3단계로 나누어 구분했어. 메이지 유신 시대의 일본을 반개(半開) 단계로 보고 영국과 같은 문명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지. 그런 맥락에서 그는 신문 사설을 통해 조선과 중국은 모두 반개(半開)의 단계에도 미치지 못한 야만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함께 미래를 도모할 가치가 없으니, 그들과 함께 뒹굴기보다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벗어나 문명국이 되어야 한다는 ‘탈아론(脫亞論)’, 즉 아시아를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지."
"아하! 그래서 우리가 전에 이야기했던 로쿠메이칸이 등장한 것이구만. 유럽인이 되고자 한 일본?"
"일본에 대해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이들은 일관성은 있다고 해야 하나? ㅎㅎ 하여간, 그의 사설에 대한 일본 역사학자 반노준지_坂野潤治의 해석에 의하면, 이웃나라의 개명을 기다릴 수 없다고 한 것은 조선의 갑신정변이 실패하여 일본의 개화파가 패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고, 일본도 조선을 서양이 조선을 대하듯 해야 한다는 말은 전쟁을 통해 청을 쳐서 조선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봐야 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야.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가토 요코 著, 윤현명, 이승혁 譯, 서해문집)"
"그럴듯한 해석이네. 일본에도 다른 생각을 하는 학자들이 있는 모양이구만."
"물론 반노준지의 해석이 일본인 전체가 공감하는 유일한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저서,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槪略)>을 통해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분히 조선에 대한 침략은 예정되고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도 해. 실제로 후쿠자와 유키치는 동학혁명 당시에도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조선 정부가 중국에 원병을 청할 경우에는 반드시 같은 세력의 일본군을 파견하여 조선 내에서 중국과 대등한 지위를 점하고 조선에 대한 일본의 기회를 확보할 것을 일본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거든. 그리고, 일본군의 조선 주둔을 기회로 경인선과 경부선 철도의 부설을 통해 항구적으로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어. 알다시피 그대로 실현이 되어서 철도는 조선을 기반으로 한 대륙 침략의 가장 중요한 기반 시설이 되었단 말이지."
이안의 설명을 듣던 두 친구는 과연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물은 이해하기 복잡하지만 분명히 조선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征韓論),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과 생명선론, 그리고 이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은 모두 일본의 안전과 영토 확장을 위해 조선을 이용해야 한다는 일관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이용하는 것은 좋으나 서로 상생하는 관계에서의 이용이 아닌 일본만의 일방적인 이익을 위한 이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일관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필립이다.
"듣다 보니 최근에 일본 정치인이 한 말이 떠오르는데 지금까지 한 이야기와 그 맥락이 같아 보인다."
"누가 또 뭐라고 했어? 하긴 일본은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속 불편한 이야기를 반복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얼마 전에 일본 중의원 부의장을 지낸 에토 세이시로_衛藤 征士郎라고 하는 사람이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의 형제국이며, 과거에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형님 뻘이 된다는 발언을 했어. 그렇기 때문에 한일 관계는 대등할 수 없고 일본이 항상 지도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있었어."
"형님은 무슨.. ㅎㅎ 그냥 내부 정치용 아닌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 말이 나온 환경이 조금 더 불편한 거야. 일본 자민당 모임에 참석해서 한일관계는 한국을 잘 지켜보며 지도한다는 입장에서 큰 도량을 가지고 구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와 같은 형님론을 언급한 것이거든. 아무리 ‘형님’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애써 낮춰서 ‘그러거나 말거나’하며 무시한다 해도 그의 말이 개인의 의견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아. 오히려, 자민당 자체가 일본으로 이해되는 시대에, 그 자민당의 원로 정치인이 한 말이라고 하면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어떤 것인지 예상되지 않나?"
"형님론이라는 단어가 탈아론을 주장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긴 해. 에토 세이시로의 말을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과 함께 놓고 생각을 해 보면 에토 세이시로의 근본적인 주장은 현재의 일본은 한국을 가르치고 키워가야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뜻이잖아. 아직도 일본이 한국 보다는 당연히 더 문명화된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이안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는데, 필립과 데이비드가 이제 자기들의 생각으로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한 때문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이란 지속적으로 발전을 하는 것인데, 당시의 최고 문명은 영국의 문명이므로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잖아? 에토 세이시로의 인식 또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것 같구먼. 헛소리 같기는 한데, 100년 전의 조선은 가르칠 수준조차 되지 못했는데, 21세기의 한국은 이제 가르칠 만한 수준의 문명은 되었다는 말이고. 다만, 일본은 더 높은 수준의 문명국이 되었으니 잘 관찰하고 지도하는 것이 일본에게 이득이 된다는 말을 하는 게 정상인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미개한 조선을 가르치고 키워서 함께 개명(開明)할 시간이 없으니 침략을 해서 일본의 독립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에토 세이시로는 지난 시간 동안 한국이 많이 성장을 하여 이제는 가르칠 만은 하니, 조금 더 가르쳐서 더 발전된 문명의 길로 들어서게 해야 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네.. ㅎㅎㅎ 제정신인가?"
"자기 생각은 자유니까 제정신인지 아닌지 우리가 고민할 일은 아니지만, 정말 일본인들은 조선에 대해 일관적으로 열등감을 가진 것 같아 보이기는 해. 굳이 그런 말을 정치인이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ㅎㅎ"
"그러고 보면 우리가 청계천이 흘려보냈다고 했던 식민사관의 원조 다카하시 도루가 후쿠자와 유키치를 건너 형님론으로 전승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 같네..."
세 명의 토론은 맥주 몇 병을 더 비우고 청계천변 풀벌 소리가 쇼팽의 발라드 1번처럼 느껴질 즈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