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설렁탕과 담배, 그리고 벨라돈나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그동안 여러 음식을 두루 먹고 다닌 탓인지 쉽게 다음 차례를 정하지 못하던 중, 이안의 제안으로 설렁탕에 소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오히려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인 탓에 쉽게 생각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을지로 이남장으로 가지. 설렁탕 뿐만 아니라 도가니탕과 수육도 있으니 소주 한 잔 하기에는 제격일 것이야."


한국사람으로서는 호불호가 거의 없는 설렁탕이니 데이비드 역시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식당 이름이 모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님, 여기 우선 수육 한 접시 주시고 소주 한 병 주세요. 설렁탕은 특으로 세 개요."

자리에 앉자마자 이안이 주문부터 하는데, 직장인이 점심으로 먹기에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수육은 그렇다고 치고, 설렁탕 한 그릇에 이 만원이 넘는 건 물가 높은 서울에서도 좀 의외인걸? 굉장한 맛인가? 한국 음식이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에서도 이 정도 가격이면 아주 고급 설렁탕 집인데 말이지."


"그렇지? 이안이가 특별히 데려 온 모양이네. 원래 설렁탕이 몇 년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고가의 고급 음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물론 이 집은 조금 다르긴 했지만서도.."


"시대가 언제인가에 따라 다르겠지. 내가 자꾸 옛날 신문 이야기해서 좀 그렇다만, 1924년 매일신보에 자신을 일빈민(一貧民), 그러니까 한 명의 가난한 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기고한 글에 따르면 당시의 설렁탕은 값싼 음식이었던 것 같아."


"그런 기고도 했어? 설렁탕이 너무 싸다고?"


"그건 아니고... 기고문의 제목은 "불결(不潔)한 설렁탕, 좀 정하게 합시다"라는 것이니 위생에 대한 글인데, 그 글의 시작이 이렇다고."


-- 조선에서 가장 값싸게 가장 맛있게 가장 보편적으로 각방면의 요구에 응하는 음식은 설렁탕이 제일 위에 있을 것이 올시다. 그같이 민중의 요구가 답지하고 조선 사람의 식성에 적합한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 올시다 --


"조선 음식의 패왕이라! 그러니까 가장 싸고 맛도 있어서 누구나 즐길 수 있으니 조선 음식의 패왕이라는 것이구만. 그건 동의해야 하겠어. 그런데, 당시에는 그 음식이 좀 불결했던 모양이지?"


"그런가 봐. 식재료가 불결하지 않았다면 바글바글 끓였으니 설렁탕 자체가 불결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기고문을 보면 누구나 입을 대고 마시는 뚝배기와 수저를 제대로 씻지 않고 다시 내오고, 먹다 남은 김치도 다시 김치 항아리에 넣었다가 다른 손님에게 퍼서 주니 그렇지 않아도 별별 전염병이 판을 치는데 문제는 파는 사람이나 사 먹는 사람이나 거의 무의식적으로 지나친다는 것인데, 경찰이 이런 버르장머리를 고쳐서 깨끗한 설렁탕 한 그릇을 먹고 싶다는 글을 개방란(開放欄)이라는 꼭지에 기고했더라."


1924년 10월 2일 매일신보. 왼쪽 5번째 단락에 기고문이 게재되어 있다.

"위생관념 같은 것도 사실은 관습이나 버릇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근본적으로는 지식의 문제 이긴 한데, 이런 일은 전세계 어느 시대에서나 일어났단 말이지. 하물며 지금은 담배가 건강에 대단히 해롭다고 하지만 담배의 위험성이 알려진 것이 그리 오래 전은 아니란 말이야."


"하긴,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릴 적 기억에는 택시나 버스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어. 물론 우리 기준이니까 그리 오래 전이 아니라고 하지만 오래전이긴 하지. 하여간 당시에는 담배가 건강에 나쁘기는커녕, 택시의 기름 냄새보다 담배 냄새를 맡는 것이 더 낫다고 했지."


"증명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랬지 않았을까 싶네.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담대가 건강에 심각한 위해요소라고 명시한 것이 1975년인데, 당시에 한국 사람들은 직물과 신발 수출하느라 정신없어서 WHO 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을 거야. 흡연에 대한 심각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가 아마 1987년, 그러니까 88 서울올림픽 준비로 온 국민이 바쁘던 시절에 WHO에서 5월 31일을 세계 금연의 날로 지정했을 때였던 것 같아.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의 국민이니까 세계 보건기구와 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도 생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네."


"하는 말들을 듣다 보니 생각나는 게 하나 있는데, 주마다 차이는 조금 있지만 모든 향 담배 판매를 금지한다거나 대부분의 공공장소에서의 금연과 광고, 매장 내 진열에 관한 규제는 물론이고 담배에 부과하는 세금도 대단히 높은 미국에서는 FDA가 담배를 의약품 수준으로 규제하거든.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BC 5000년 전부터 종교나 치료 목적으로 담배를 피웠다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게다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약용 담배라는 것을 만들어 팔았었단 말이지."


"약용 담배라는 것도 있나? 그런 게 정말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온통 담배 연기로 뒤덮였을 것인데..."


"프랑스의 Grimault & Co.라는 제약회사가 만든 Grimault Cigarette라는 담배가 있었는데, 일반 담뱃잎과 함께, 대마초와 벨라돈나(belladonna)와 같은 향 정신성 또는 독성이 있는 약초를 혼합한 제품으로 천식, 기관지 염증, 기침, 호흡기 질환 완화용이라고 광고를 해서 1930년대 까지 전 세계에서 팔렸지."


Grimault's Cigarettes 광고..


"과학과 정보에 무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부패한 자본주의의 결과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 회사가 실험을 통해 증명된 과학을 기반으로 개발한 혁신 제품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너무 말도 안 되는 것 같네. 더구나 대마초의 영향은 몰랐다고 하더라도 벨라돈나를 원료로 했다면 유럽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필립은 데이비드를 통해 그런 담배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이야기를 했지만, 벨라돈나가 뭔데 그래?'


"이탈리아 요리에서 토마토가 빠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사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토마토를 식재료로 받아들인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야. 원래 토마토는 스페인이 남아메리카에 식민지 건설을 하면서 유럽으로 가져온 채소인데, 이탈리아에 소개된 것은 16세기 정도라고 하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 후 100년 동안 토마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 왜냐하면 이 토마토가 너무 이국적이기도 했지만 가지과의 하나인 벨라돈나와 사촌 간이라는 사실 때문인데, 벨라돈나는 가장 독성이 강한 식물이기도 하거든. 당시에는 매독보다는 벨라돈나를 먹고 사망한 교황과 주교. 그리고 로마 집정관들이 훨씬 많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해. 그런데, 그것이 담배 원료라면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그런 스토리가 있었구먼.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인 벨라돈나(belladonna)라는 이름이 그럴 듯 하구만. 아름다운 여인은 위험하기도 하니까."


"이안이 너는 그런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네. 벨라돈나가 별 관심이 없을 거야."


"가만히 있는 나를 갑자기 왜... 술이나 한 잔 하셔. 담배 끊은 지 오래전인데, 자꾸 이야기를 하니 또 생각이 나잖아. 아까 종로를 지나오면서 사람들이 빌딩 뒷 구석에 모여 흡연을 하면서 뿌연 담배 연기가 흩어지던 모습을 보면서도 조금 흔들렸는데 말이지."


"그러니 그곳의 예전 이름이 운종가(雲從街)인 것이지. 구름처럼 사람이 모이는 거리이니 지금은 담배 연기가 구름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야."


"우리들의 문제가 뭔지 알아? 원래 하려고 하던 이야기를 빌미로 매번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먹고 마시기는 하는데, 원래 술 한잔 하면서 해보자고 한 이야기는 며칠 째 언급도 안 하고 계속 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


"그게 뭐 어떄서 그런단 말인가?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것이 무슨 세상을 바꿀만한 엄청한 일도 아니고, 또 할 이야기를 남겨두면 핑계 삼아 또 한 번 얼굴들도 보고 그런 것이지. 그런데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지...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들어보자고."


"우선, 설렁탕 국물 한 수저하고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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