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시대의 소음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데이비드는 애초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치매 전조증상인가... 최근 것들이 기억이 안 나네. 우리 원래 무슨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도쿄 재판 이야기를 한건 기억이 나는데..."


"그렇네, 갑자기 안중근 의사가 검사가 되어 피고 이토와 일본 정부를 혼낸 것과 같다는 이야기까지 했었지. 그 이야기는 도쿄 재판에 한국인 판사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었다는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것인데, 그러다 보니 또 그럼 한국은 언제부터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나라가 된 건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져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어." 필립이 겨우 생각난 듯 기억을 만지작 거린다.


"뭐 그리 거창한 서사는 아니지만, 뭐든 역으면 또 다른 뭔가가 되긴 하지. 그게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다른 문제지만 말이여. 그래서, 한국은 언제부터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야?"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최소한 미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국가였다는 것을 기억한 데이비드는 새삼 그 내용이 궁금하다.



"건국절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는 것은 알아?"


"광복절은 아는데, 건국절은 또 뭐야?"


"데이비드는 모를 수 있지. 건국절이라는 것이 달력에는 표시가 되어있지도 않고 또 데이비드가 미국으로 갈 때만 해도 건국절이라는 개념이 없었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던 것 같아. 하여간 건국절에 대한 논쟁은 지금 우리 시대의 소음과 같은 것인데, 주된 쟁점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언제로 봐야 하는가에서 시작해서 국가의 정통성은 어디서 비롯되나라는 문제와 연결이 되니까 꽤 복잡한 주제인건 분명하지."


"난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것이 왜 논란이 되지? 광복절이 건국일 아니냐? 해방되고 나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거 아니야?"


"대부분 데이비드처럼 생각하는데, 쉽게 생각하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긴 해. 하지만 이 논쟁은 그 깊이와 폭이 꽤 커서 싸움이 되기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서로 피 터질 듯 싸울만한 것인지는 또 잘 모르겠어."


"뭔 소리냐?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인 것이지. 일단 드러나보자. 왜 싸움이 되고 있는 거야?"




"우선 데이비드와 같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실질적으로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한테 머리통 맞아가면서 외우던 국가 구성의 삼요소, 그러니까 영토, 국민, 주권이 모두 준비돼서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된 날이라는 것이지."


"반면에 1919년 4월 11일을 건국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


"1919년 4월 11일? 나인원원_911은 아는데 411은 뭔가?" 데이비드는 4월 11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이야. 우리 헌법 전문에 1919년에 일어난 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들어있거든. 그래서 1948년은 정부 수립일 일수는 있지만, 국가 건국일은 아니라는 주장이야. "


"임시정부라면 중국 상해에 있던 그 임시정부?"


"그렇지. 어떻게 보면 망명정부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정부로서의 조직도 갖춰져 있었고 나름 외교 활동도 하면서 분산되어 있던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도 했지. 다만, 한국이 아닌 중국에 실체가 있었으니 한 나라의 정부로서 국제적 승인을 받지는 못한 것이지. 그래도, 존재하지 않았던 정부라고 치부할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렇구먼. 그런데 내가 처음 듣는 말인 탓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건국절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려서 그렇지 그런 일은 인도 같은 나라에도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인도는 뭐여?"


"인도도 매년 8월 15일이 우리의 광복절과 같은 독립기념일이거든. 인도는 한국보다 2년 늦은 1947년 8월 15일을 인디펜던스 데이라고 하는데, 매년 1월 26일은 리퍼블릭데이(Republic Day)라고 하는 국경일이야. 매번 다른 나라의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해서 축하해 주는 가장 큰 국경일인데,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참석했었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잖아? 당시에 인도민족회의_Indian National Congress라는 단체가 있었어."


"인도민족회의라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Congress Party를 말하는 건가?"


"그렇지. 처음에는 영국인 행정관이 인도 엘리트들의 합법적인 청원 단체로 만들어서 시작한 것인데, 점차 민족운동 조직으로 성장했고, 마하트마 간디가 등장하면서부터는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었지. 아마 지금까지 존속한 세계 최장수 민주 정당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어."


"그러니까 우리의 상해 임시정부와 비슷한 조직이었단 말이군. 다른 점은 그 조직이 아직도 인도에서 정당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도 그런데, 그 인도민족회의가 1930년 1월 26일에 완전 독립을 선언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1919년 3월 1일에 우리가 독립선언을 한 것과 같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만 그건 그냥 정치적 선언 아닌가? 1947년 8월 15일은 영국이 법적으로 인도에 권리를 이양한 날이라는 것이 명확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사실이지만, 1930년 1월 26일은 독립으로부터 17년이나 먼저 인도가 이미 독립국가라고 하면서 정치적인 선언을 한 것에 그친 일 아닐까?"


"정확히는 그렇다고 해야겠지. 8월 15일은 남으로부터 주어진 날인 반면에 1월 26일은 독립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니까. 그런데 중요한 건 인도가 독립을 하고 3년이 지난 1950년에 헌법을 공표하면서 헌법 발효일을 1월 26일로 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 어찌 보면 대단히 자연스럽게 1930년 1월 26일의 독립선언이 완전한 독립 선언일로 계승된 것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뭐여.. 남이 준 독립이 아니라 자기들이 선언한 독립을 헌법으로 완성했다고 하는 것이구만. 하지만 한국은 그 기준이 다른 것 같은데? 독립선언을 한 날을 기준으로 했으면 조금 더 멋진 역사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기는 해. 그렇지만 정부 수립일을 기준으로 한 탓에 정치적 논쟁이 생긴 모양이네. 늘 정치란 반대파가 있어야 성립이 되는 것이니까..."


"그렇지. 제국주의의 식민지 상태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공공의 적인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해방 후 정부가 생기면 공공의 적이 아니라 정권의 적이 생기는 것이니까. 게다가 해방 후에 남한과 북한으로 나뉜 한반도의 상황과 그 시대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는 김구, 이승만,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 트루먼 같은 인물들의 역할과 그들로부터 이어져온 각각의 정치 노선과 이념들이 뒤섞여서 역사가 꽤 혼탁해졌어."


"인도는 우리와 비교하면 비교적 단순하다고 하겠네. 이슬람교와 힌두교라는 종교를 기준으로 땅과 지도자, 국민이 나뉜 것이니까. 물론 그래서 내부적인 혼란과 고통은 엄청났지만 그러한 역사적 혼란의 기준은 오히려 명확하지 않나?"


"세상에 종교만큼 복잡한 기준도 없지 않나? 세계적인 종교들은 그 어느 것도 나쁜 짓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지만, 경전들의 문장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제각각일 수 있어서 더 복잡해 보이고 이종교간에 대립이 시작되면 해결이 안 되잖아. 그래도 정치는 사람들의 세상이어서 어느 정도 타협은 가능할 것 같은데, 정치를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하는 사람들이 문제여.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봐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치인들 아닌가?"


"또, 말이 길을 벗어나기 시작하는구먼. 하여간 독립운동의 주체성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1919년은 역사적으로 헌법적인 차원에서 건국이라고 할 수 있겠고, 1948년은 비로소 국제법상 제도적으로 건국이 된 것이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굳이 건국절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싸울 필요가 있나 싶은 거야."


"그러니까 이안의 말은 대한민국은 1919년에 탄생했고, 1948년에 국가로 완성되었다는 말인가?"


"그게 뭐 이상한가? 역사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이미 우리의 역사가 반만년인데 겨우 30년의 차이가 무슨 큰 일이라고 말이지.. 그 30년이 대한민국의 가치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일인가?"


"그래도 그걸 아주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람들은 아무래도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 생각의 밑바닥에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색깔론이 깔려있는 것 같아. 북한을 인정하고 포용하려고 했는지, 그 반대인지와 같은 것들 말이지. 예전에는 그래야 했다고 해도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쩐지 시대착오적인 것 같지 않아? 인정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미 서로 너무 달라져 버렸고, 현실적으로 북한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지. 더구나 1919년과 1948년의 일들을 완전히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없지. 결과를 떠나서 임시정부가 세워졌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나라가 나라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1948년의 일을 폄훼하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 아닌가 싶어. 결국은 하나의 공통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인데, 그리 심오한 철학이나 사상도 아닌 시시한 패거리 정치가 괴물처럼 커져온 탓이 아닌가 싶단 말이야."


"갑자기 필립이가 많이 화가 난 것 같아서 이런 비유가 맞나 싶기는 한데... 어머니가 이혼하고 재가를 했다고 해서 어머니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사실 법적으로도 재혼을 했다고 해서 어머니가 자녀에 대한 권리를 잃는 일은 없거든. 친자관계는 법적으로 사라지지 않으니까. 임시정부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면 천륜과 같은 역사의 연결 고리가 아닐까? 하여간, 나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건국절 논쟁보다 우리가 더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결국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혹자는 이미 오래전 일이니 재평가는 필요하지 않다고 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건국절 논쟁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럼 우리 부암동으로 가지. 그 이야기는 부암동에서 해야 제맛이 날 것 같단 말이야."


필립의 제안에 셋은 북쪽으로 길을 잡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이제는 발걸음이 그저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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