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공출보국'이라는 말은 어떻게 폭력이 되었나

청계천 로망스

by 초부정수

"엄마라... 그래 이번엔 어떤 엄마야?"


"국내 최고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없어진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존경받는 판사가 된 어느 아들의 엄마라고 해보자."


"손에 꼽는다는 그런 존경받는 판사? 엄청 훌륭한 어머니셨구먼. 고려대학교?"


"지금 이 맥락에서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하여간 아들을 남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낸 어머니를 어떤 이유로도 비난할 수는 없겠지? 그 어머니가 아들을 그렇게 키우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그 아들이 어머니를 부정한다면? 다시 말해서 자기는 그런 엄마를 가진 적이 없다고 한다면?"


"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유가 있지. 존경받는 판사에 의하면 그의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느 남자를 만나 자기를 낳았고, 무책임한 아버지는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지. 지금보다 당시에는 어린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을 거야. 엄마는 시골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면서 술과 웃음을 팔아가면서 아들을 키웠는데, 이제 존경받는 판사가 되자 자신의 과거사, 정확히는 엄마의 과거를 부정하고 싶어진 것이야. 그리고 자기는 그런 엄마를 둔 적이 없고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자수성가를 했다며 엄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해야 할 것 같은가?"


"인의예지_仁義禮智가 없는 놈이라고 해야겠지."


"그럼 인촌 김성수 씨로 넘어가 볼까? 고려대학교에 인촌 김성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등록되었다고 해서 그 학교 학생들이 스탈린 동상을 끌어내리듯 그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것이 맞나? 실제로 몇 년 전에 그 사건이 뉴스에 보도가 된 적도 있어."


고려대 원총·총학생회·민주동우회 대표들이 고려대 인촌 김성수 기념시설 철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1917년 7월 12일


"실제로 그랬다고? 하긴, 민족대학이라고 하는데 창립자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 또 창립자가 없었으면 지금 그 학생들도 없는 것 아닌가? 애매하네.. 그래도 이건 엄마의 경우와는 좀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그는 많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도 결국 일제의 징병제를 옹호라고 조선 청년을 전쟁터로 유도했잖아.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 끌어내릴 수도 있지 않아?" 데이비드는 아무래도 김성수 씨는 결국 변절자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필립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의 학생들이 그래서는 안될 것 같네. 세상 일이라는 것이 늘 그 일의 전체를 알 수는 없거든. 김성수 씨가 왜 그런 격문을 발표했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지만, 생각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아."


"뭘 생각하지?"


"자본가였던 그가 돈도 별로 안 되는 조선인 학생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일본 정부의 기관지도 아닌 신문사를 창간하면서 골치 아프게 살 필요가 있었을까? 많은 자본을 가지고 일본에 처음부터 부역했으면 훨씬 더 편하게 권력 맛도 좀 보면서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일본의 마지막 발악이 진행 중이던 일제 강점기 말기에 강압에 못 이겨 그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면 어떨까? 학교도 신문사도, 그리고 경성방직등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몰수해 버린다고 했으면?"


"그게 바로 현실과의 타협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는 당시 많은 지식인들의 행동이었다는 것 아니냐? 그래서 윤동주 시인이 오늘 나에게 해준 말이 그것이지. 그런데 그것이 타협이 아니었고 윤동주 시인과 같이 다른 방식의 저항이었다고 하는거야?"


"데이비드, 네 말도 맞아. 하지만 저항이라고 하기 보다는 전략적 후퇴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 일본제국주의와 조선이 전쟁 중이었다고 보면 말이야. 그런 환경에서 만약에 당시의 모든 여성들에게 모두들 떨쳐 일어나 유관순 누나가 돼라 하고, 모든 남자들에게 안중근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글을 썼다면, 아니 조선인 모두가 실제로 유관순 누나이자 안중근 의사였다면 살아남은 조선인은 한 명도 없었을 거야. 게다가 김성수 씨가 학도지원병을 고무하고 징병제 참여를 독려하던 1940년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던 시절이었고, 물자가 부족했던 일본은 조선인들의 젓가락 하나까지 모두 빼앗아 갔다고."


"젓가락 하나 까지라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지? 실제로 젓가락을 가져가서 뭘 할 수 있나?"


"정말로 젓가락과 밥그릇까지 다 빼앗아갔지. 일본이 점점 전쟁에 더 깊게 빠지면서 급기야 1938년에는 국가총동원법이라는 악법을 시행하게 되었거든. 군자금과 무기 확보를 위해서 한국 사람들의 유기그릇까지 긁어가고 사기그릇을 대신 쓰라고 주면서 아주 생색을 냈어요. 그 그릇에는 공출보국(供出保國), 결전(決戰)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공출보국 결전명 식기라고 해. 그런 상황에서 조선인 자본가들은 일본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거야."



이곳에서는 당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이안은 자기가 깔아 놓은 판에서 주고받는 데이비드와 필립의 대화가 즐겁다.


"그러게. 조선인 모두가 독립투사로 총을 들었다면 살아남은 사람이 없겠지. 총 대신 펜을 들었던 윤동주도 결국 살아남지는 못했으니 말이야. 그런데 지금 한국에는 그 사람들이 남겨놓은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있고 결국 그렇게 남겨진 것들이 한국 사람을 진짜 한국인으로 만들어 왔다고 생각되지 않나?"


"그런 차원에서라면 김성수 씨에 대한 판단은 다시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다만,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분별과 처분은 조금 더 확실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늘 논란은 있을거야. 그래도, 내 생각에 진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남대문 시장에 있었지. 그런 사람과 김성수 씨 같은 인물을 하나의 틀에 넣어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이안은 또다시 남대문 시장으로 시간을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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